이란 자폭드론(추정)에 당한 나무호... 정부, 대이란 외교 전면 재검토하나
미상 비행체의 타격으로 피해 입은 나무호의 모습. / 외교부 제공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이던 HMM 나무호가 미상 비행체의 공격을 받은 사실이 정부 합동조사 결과 공식 확인되면서, 한국의 대이란 외교 전략이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정부는 공격 주체를 특정하지 않는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공격의 구체적 정황과 정황 증거들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소행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에 따라 대이란 관계 재정립과 미국 주도 해양 안보 협의체 참여 문제가 동시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지난 8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항에 예인된 나무호에서 폐쇄회로(CC)TV 영상 분석, 선원 증언 청취, 현장 감식 등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4일 오후 3시 30분쯤 미상의 비행체 2기가 나무호 선미 좌현 평형수 탱크 외판을 약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타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타격으로 인해 좌측 선미 외판은 폭 약 5m, 선체 내부로 깊이 약 7m까지 훼손됐고, 1차 타격으로 기관실에서 화재가 발생한 뒤 2차 타격으로 화세가 급격히 확산됐다. 파손 부위가 해수면보다 1~1.5m 높은 위치였다는 점에서 기뢰나 어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정부는 판단했다.

외부 공격이라는 결론은 사실상 이란의 연루 가능성을 가리킨다. 나무호 피격 당일 인근 해역에서 중국 대형 정제유 운반선을 포함해 여러 나라 상선이 공격을 받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란이 미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 즉 호르무즈 해협 내 억류 선박 구출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해협 안의 다수 선박을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장에서 비행체 엔진 잔해가 수거됐고, 전문가들은 이란이 자주 운용해온 자폭드론이 유력한 공격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함미사일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공격 패턴과 파손 형상이 드론 공격 특성에 부합한다는 분석이 더 무게를 얻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공격 주체를 이란으로 특정하지 않은 채 추가 조사 방침을 밝혔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긴급 브리핑에서 비행체의 정확한 기종, 크기, 발사 주체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현장에서 수거한 엔진 잔해 등을 정밀 분석해 공격 수단과 주체를 최종 규명할 방침이다. 국방부도 11일 전문가 파견 등을 통해 후속 엔진 잔해 조사를 지원하겠다고 밝혀 공격 규명 과정에 군이 본격 관여하는 수순이 됐다.

정부의 신중한 기조에도 불구하고 공격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나왔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조사 결과에 '이란'이라는 두 글자가 빠졌다고 비판했고, 송언석 원내대표는 사건 발생 1주일이 다 돼서야 피격 사실을 공식 확인한 것은 늑장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나무호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한국이 중동사태 발발 이후 이란과의 외교 소통에 가장 공을 들여온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정병하 외교장관 특사는 지난달 약 2주 동안 이란에 파견돼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을 만났다. 전쟁 이후 외국 특사가 직접 이란을 찾은 사례는 한국이 유일했다. 나무호 화재가 발생하기 불과 이틀 전에도 양국 외교장관 간 통화가 이뤄졌고, 이란 측은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을 잘 살피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셈이 되면서, 한국의 대이란 외교 전략 전반이 재검토의 대상이 됐다.

외교부는 10일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를 청사로 불러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공식 초치는 아니었으나 사실상 이란 측에 책임을 묻는 성격의 면담이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외교부는 또 미국 주도의 해양자유구상(MFC) 참여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온 정부가 미국 측 제안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정부는 나무호 폭발·화재에 자국 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지난 7일 '실패한 해방 작전'이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미군 지원 아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 했던 한국과 프랑스 소속 선박 최소 두 척이 해당 작전이 진행된 48시간 동안 피격돼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란 국영 매체 스스로 한국 선박 피격 사실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란 내부에서 협상파인 행정부와 강경파인 혁명수비대 간 노선 충돌이 이번 사태의 배경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 행정부가 한국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하면서 안전을 보장했지만, 혁명수비대가 독자적으로 공격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 의회는 혁명수비대의 일부 발언이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등 이란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나무호 피격이 이란의 의도적 공격으로 최종 확인될 경우,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응의 폭은 크게 넓어진다. 이란 대사 공식 초치와 규탄 성명 발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국제사회 문제 제기,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동참, 나아가 독자 제재 검토까지 단계적 옵션이 거론된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에 26척의 한국 운용 선박과 한국인 120여 명의 발이 묶인 상황에서 이란과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하는 조치는 오히려 현지 인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의 파병 요구 문제도 나무호 사건을 기화로 더욱 수면 위로 부상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해협 경색 국면 해소를 위해 한국이 더 나서 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방미길에 오른 상황에서 11일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의 군사 기여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란이 한국 선박을 의도적으로 공격한 것이라면 한국도 '피해 당사국'이 되는 만큼, 해양 안보 기여에 동참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으로 전환 배치하는 방안에 대해 국방부는 현재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는 파병이나 부대 전환 배치를 검토하기에 앞서 공격 주체가 먼저 명확히 확인돼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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