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이준석당'인데... '창당 후 최대 위기' 맞닥뜨린 개혁신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경기 화성을에서 거대 양당 후보를 모두 제치고 단일화 없이 원내에 진입했던 2024년 봄의 장면은 제3지대 정치의 가능성을 상징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금 개혁신당은 당의 얼굴이자 사실상 유일한 구심점이던 이 대표가 스스로 대표직을 내려놓는 상황에 몰렸다. 당의 정체성과 지지 기반이 이 대표 개인에게 쏠려 있던 만큼 그의 퇴장은 지도부 교체를 넘어 당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뉴스1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 이후 석 달 남짓 당의 자강과 쇄신을 위한 고민과 제안을 해왔지만 당 안에서 충분한 호응을 얻지 못했다"며 "설득해내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대표인 저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우리 앞에는 미룰 수 없는 정치 일정이 놓여 있다. 정치의 시간은 누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며 "방향에 대한 합의 없이 그 일정을 맞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 대표의 결심에 따라 지도부도 함께 무너졌다. 이주영 정책위의장과 김정철·김성열 최고위원이 동반 사퇴 뜻을 밝히면서 지도부는 사실상 총사퇴 수순을 밟게 됐다. 당헌·당규에 별도의 비상대책위원회 규정이 없는 까닭에 개혁신당은 당분간 천하람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는 체제로 운영된다. 당은 60일 이내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계획이다.

초라한 성적표…저비용 선거 실험의 한계

사퇴의 표면적 배경은 6·3 지방선거 참패다. 개혁신당은 광역·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에 후보 192명을 냈지만 경기 화성시의원 1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며 저비용 선거를 전면에 내걸었던 실험은 전국 단위 성적표 앞에서 초라해졌다. 광역·기초단체장 단 한 자리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존재감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 뉴스1

여기에 후보 검증 실패 논란이 겹쳤다. 부산시장에 출마했던 정이한 전 후보가 선거 기간 피습을 당한 것처럼 꾸민 이른바 '음료 테러 자작극'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범행에 가담한 헬스 트레이너 1명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후보가 인지도를 끌어올리려 자작극을 연출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당 지도부가 후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진짜 뇌관은 '총선 출마지'…어긋난 대표의 큰 그림

표면적 책임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사퇴의 실제 뇌관이었다는 관측이 많다. 2028년 총선을 겨냥한 지도부의 출마 지역 조율 과정에서 이견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수도권 세 확장을 위해 주요 인사들을 경기 남부에 배치하는 이른바 '경기 남부 벨트' 구상을 제시했다. 반면 천하람 원내대표는 전남 순천,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서울 송파, 이기인 사무총장은 경기 성남 분당을 각각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의 밑그림과 개별 인사들의 지역 기반이 서로 어긋나면서 조율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 대표가 사퇴의 변으로 "방향에 대한 합의 없이 정치 일정을 맞을 수 없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리더십으로 당내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다면 자리를 비우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기인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의 진로와 방향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었지만 갈등 수준은 아니었다"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다들 의욕이 없었고 대표가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당 초기의 긴장감이 느슨해졌다는 진단도 당 안에서 나온다. 거대 양당 체제에 균열을 내겠다는 목표보다, 향후 정계개편 국면을 지켜보며 각자 진로를 저울질하는 기류가 커졌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부진 이후 국민의힘과의 통합이나 보수 진영 재편 상황을 확인한 뒤 거취를 정하자는 목소리가 당 일부에서 형성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퇴 이틀 전부터 심상찮았다… 김민석 회동 돌연 취소

사퇴 조짐은 지난 24일부터 감지됐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4일 취임 인사차 개혁신당을 찾아 이 대표와 천 원내대표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개혁신당은 회동을 두 시간여 앞두고 '당 내부 사정'을 이유로 일정을 취소했다. 이 대표는 같은 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내 상황이 이런데 여당 대표를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정치 일정을 이어가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8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지나치고 있다. / 뉴스1

이 대표는 이미 지난 23일 당 핵심 관계자들에게 처음 사퇴 뜻을 내비친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같은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는 만류했지만 결심을 되돌리지 못했다.

간판 잃은 '이준석당'…독자 생존 물음표

개혁신당이 맞은 위기의 본질은 리더십 공백 그 자체다. '이준석당'이라 불릴 만큼 당의 인지도와 지지가 대표 개인에게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22대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자는 이 대표가 유일했다. 개혁신당은 지역구 1석과 비례 2석을 얻어 원내 3석으로 출발했다. 지난해 21대 대선에서도 이 대표가 8.34%(291만7523표)를 득표했지만 선거비 보전 기준선인 10%를 넘지 못했다. 간판을 잃은 당이 독자 정당으로 계속 갈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개혁신당의 궤적은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려왔다. 이 대표는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해 이듬해 초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창당 직후에는 10% 안팎의 지지율로 제3지대 대표주자 기대를 모았지만, 이낙연 전 대표가 이끌던 새로운미래와의 빅텐트 합당과 결별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다. 정치적 배경이던 유승민 전 의원이 국민의힘에 잔류한 것도 확장의 발목을 잡았다.동탄 이변이라는 상징적 승리로 출발했지만 대선 선거비 보전에 실패한 데 이어 지방선거에서마저 참패하면서 당의 성장 동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합당설엔 '사실무근'… 범보수 지형도 요동

이 대표의 퇴장은 범보수 지형 변화 가능성과도 맞물린다. 당장 국민의힘과의 합당이나 소속 의원 개별 합류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개혁신당은 이런 관측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못 박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개혁신당과 굳이 합당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함께 존재한다. 통합이든 독자 노선이든 어느 쪽도 선명한 답을 내놓기 어려운 국면이다.

당장의 과제는 지도부 재정비와 차기 전당대회 준비다. 차기 당권 주자로는 조응천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새 인물을 영입해 대표로 세우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천 원내대표를 비롯한 남은 인사들이 흔들린 조직을 추스르고 2028년 총선까지 당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가 관건이다. 지도부 승계 방식과 전당대회 룰을 둘러싼 신경전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한 사람의 당원으로, 동탄2신도시의 국회의원으로 제자리에서 할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은 60일 안에 새 지도부를 뽑아야 하고, 그 사이 당의 진로를 둘러싼 내부 논의를 마무리해야 한다. 천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맞는 첫 시험대가 곧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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