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만든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봤더니... 뭔가 좀 살벌하다

북한이 만든 스마트폰엔 어떤 기능이 내장돼 있는 걸까. 북한에서 밀반출된 스마트폰을 뜯어봤더니 금융 결제와 택시 호출 같은 일상 편의 기능은 두루 갖췄지만 스마트폰의 핵심 기능인 인터넷 연결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겉모습은 평범한 스마트폰이지만 사용자의 입력과 시청 기록을 당국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감시·검열 장치가 깊숙이 심어져 있었다.

북한 스마트폰 / 월스트리트저널 유튜브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각) 입수한 북한 스마트폰 '해양 701'을 분석한 내용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이 매체의 기자는 북한군 출신 탈북민과 함께 기기 내부를 살펴봤다. 서울의 한 북한 전문 매체가 분석에 쓸 기기를 제공했다.

해양 701은 2023년에 생산된 중간 사양 제품이다.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는 물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도 깔려 있다. 중국 '알리페이'와 비슷하게 QR코드로 물건값을 결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송금할 수도 있다. 송금 화면이 '내화'와 '외화'로 나뉘어 있어 달러화 송금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금융 앱에는 택시를 부르는 기능까지 들어 있다.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등장하는 '국제축구 연맹전'이 대표적이다. 다만 경기에서 고를 수 있는 나라 목록에 한국과 미국은 빠져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와 비슷한 아이콘의 '사무처리' 앱도 눈에 띈다.

북한 스마트폰 / 월스트리트저널 유튜브

북한이 만든 스마트폰의 가장 큰 특징은 '통제'다. 이름은 스마트폰이지만 전 세계 인터넷에는 접속할 수 없다. 와이파이 버튼을 눌러도 무선인터넷이 켜지지 않는다. 대신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내부 인트라넷에만 연결된다.

이 폐쇄망은 '광명망'으로 불린다. 광명망은 북한 내나라정보쎈터가 운영하고 정보산업성의 검열·감독을 받는 전국 규모의 인트라넷이다. 이용자는 광명망에서 노동신문을 읽거나 '만물상'·'옥류' 같은 전자상거래 서비스로 물건을 주문할 수 있다. 외부 인터넷과는 철저히 차단돼 있다.

글을 쓸 때도 검열이 따라붙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굵은 글씨체로 바뀐다. 다른 단어에는 없는 반응이다. '대한민국'이라고 치면 곧바로 '(금지어)'라는 표시로 대치된다. 줄임말 '남친'을 입력하면 즉시 '남자친구'로 바뀐다. '남친'이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 영상물이나 미국 콘텐츠는 이 스마트폰으로 볼 수 없다. 북한 법에 따르면 한국·미국 콘텐츠를 보다 적발되면 5년의 노동교화형(징역형)에 처해진다. 이런 콘텐츠를 퍼뜨린 사람은 총살된다.

북한 스마트폰 / 월스트리트저널 유튜브

감시 기능은 더 은밀하다. 이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무엇을 보는지 자동으로 화면을 갈무리해 '화면이력' 폴더에 저장한다. 기능을 끄거나 저장된 캡처 파일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 캡처가 이뤄지는지, 어떤 파일이 저장되는지도 사용자는 알 수 없다.

이런 감시 장치는 이번 기기에서만 확인된 것이 아니다. 영국 BBC는 지난해 밀반출된 북한 휴대전화를 분석해 5분마다 화면이 자동으로 캡처되고 특정 단어가 자동 검열된다고 전했다. '오빠'는 '동무'로, '남한'은 '괴뢰지역'으로 바뀌는 식이다. 미국 워싱턴의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북한 스마트폰에 화면을 무작위로 캡처하는 감시 앱이 필수로 깔려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 국가보위성이 휴대전화 통신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고 명시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파일도 막힌다. 북한 스마트폰에는 자체 인증 체계가 들어 있어 당국의 디지털 서명이 없는 파일은 실행이 차단되고 삭제된다. 주민들이 SD카드 등으로 외부 영상물을 들여와 보는 길을 원천 차단하려는 장치로 풀이된다.

북한 스마트폰 / 월스트리트저널 유튜브

이런 스마트폰을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상에 출연한 북한군 출신 탈북민 류성현씨는 북한 암시장에서 이런 기기가 약 250달러(약 34만5000만원)에 팔린다고 전했다. 북한 군 장교의 한 달 급여가 1달러에 못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비싼 값이다. 류씨는 "북한에서는 부자들만 이런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의 10%가량만 스마트폰을 가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런 스마트폰을 자체 기술로 만든다고 선전해 왔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해 평양 만경대구역의 '진달래손전화기공장'을 두고 정밀도와 생산성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액정 접합 공정의 청정도가 국제 기준에 맞는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진달래를 비롯해 아리랑·푸른하늘·마두산·삼태성 등 여러 브랜드도 내세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이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마틴 윌리엄스 미국 크림슨센터 연구원이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북한에서 팔리는 스마트폰은 사실상 모두 중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다. 북한은 이를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들여온다. 액정과 메인보드, 카메라 모듈 같은 핵심 부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공급된다. 북한 공장이 맡는 일은 완제품 제조라기보다 부품 조립과 포장, 검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운영체제도 구글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하되 외부 콘텐츠를 막고 감시 기능을 심도록 손질한 형태다.

북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 월스트리트저널 유튜브

기술 수준을 두고는 평가가 박하지만 스마트폰 자체는 북한 사회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 윌리엄스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가 풀리면서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고 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휴대전화 가입자가 650만~7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확보한 자료로는 2022년 말 기준 가입자가 635만명이다. 북한 인구의 30%가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마트폰 사용이 평양을 넘어 북한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용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국가가 설정한 한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기자는 이번 기기가 2023년 제품인 만큼 그사이 북한 내부에 어떤 새 기술이 적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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