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에 대한 국민들 속마음, 여론 조사로 드러났다

“호르무즈 해협에 군을 보내는 데 반대한다”는 국민이 찬성한다는 응답보다 9%포인트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을 파병하는 방안을 두고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란과 미국을 둘러싼 중동 정세가 긴장된 가운데 한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가 국내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을 파병하는 방안에 대해 45%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6%였다. 파병 여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거나 답하지 않은 응답자는 19%로 집계됐다.

프랑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재명 대통령, 김혜경 여사 / 뉴스1

찬반 격차는 9%포인트였다. 파병에 반대하는 응답이 찬성보다 높았지만, 전체 응답자의 약 5명 중 1명은 찬반을 결정하지 않았거나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한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실시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이 세계 각지로 이동하는 주요 해상 통로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닷길이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해상 통로로, 중동에서 생산되는 에너지 자원이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길목 가운데 하나다.

폭이 넓은 대양과 달리 좁은 해협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군사적 충돌이나 선박 공격, 기뢰 설치 등으로 항행이 방해받으면 국제적인 물류와 에너지 공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역시 중동산 원유와 해상 운송에 일정 부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은 국내 경제와도 관련이 있다. 국제 유가와 해상 운임, 보험료 등이 움직이면 국내 산업과 물가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한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관련 역할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전투병력만 거론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제시된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도 각각 역할이 다르다.

해상초계기는 바다 위를 장시간 비행하면서 선박과 해상 상황을 감시하는 항공기다. 넓은 해역에서 선박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이상 징후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군수지원함은 함정이나 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연료와 식량, 물자 등을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함정과 달리 장기간 해상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연령대별 조사 결과에서는 파병에 대한 인식 차이가 나타났다.

40대에서는 54%가 파병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 응답은 32%였다. 50대에서는 반대가 59%로 더 높았고 찬성은 27%에 그쳤다.

반면 20대 이하에서는 찬성 응답이 40%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대는 35%였다. 60대에서도 찬성 응답이 42%로 반대 38%보다 높았다.

30대에서는 반대와 찬성 의견이 비교적 팽팽하게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장년층에서는 파병 반대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고, 20대 이하와 60대에서는 찬성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징이 나타났다.

연령별 차이는 파병의 필요성을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세대별로 찬반 비율에 일정한 차이가 확인됐다.

지지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 지지층과 국민의힘 지지층의 의견 차이가 비교적 뚜렷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파병 반대가 55%로 과반을 차지했다. 찬성은 31%였다.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24%포인트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보다 찬성 응답이 많았다. 찬성이 46%, 반대가 40%로 나타났다. 두 응답의 격차는 6%포인트였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응답자 등에서는 정당 지지층과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정당 지지 성향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정치적 이념 성향에 따른 차이도 확인됐다.

진보층에서는 60%가 파병에 반대했다. 찬성 응답은 26%였다. 반대가 찬성보다 34%포인트 높았다.

보수층에서는 정반대 양상이 나타났다. 파병 찬성이 53%로 과반이었으며, 반대는 35%였다.

중도층에서는 파병 반대가 43%, 찬성이 35%로 나타났다. 진보층과 보수층 사이에서 반대 응답이 찬성보다 높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조사에서는 정당 지지 성향보다 이념 성향에 따른 찬반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 진보층에서는 파병 반대가 가장 높았고, 보수층에서는 찬성 응답이 가장 높았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결정할 때는 단순히 군대를 보내느냐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전력을 얼마나 보내고, 어떤 임무를 맡길 것인지에 따라 파병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해상초계기를 투입한다면 넓은 해역을 감시하고 선박의 안전과 해상 상황을 파악하는 임무가 중심이 될 수 있다. 군수지원함을 보낸다면 해상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인력과 장비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이 추가된다.

파병 규모와 임무 범위가 커질수록 우리 군이 위험 지역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주변은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는 지역인 만큼 한국군이 어떤 임무에 참여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거론된다.

파병 반대 시위를 진행하는 시민 단체 / 뉴스1

반대로 파병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한국 선박과 에너지 수송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한국도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제시될 수 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중동의 군사적 충돌에 한국군이 직접 관여할 경우 우리 장병의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한국이 분쟁 당사자로 인식될 가능성 등을 우려할 수 있다.

이번 NBS 조사에서는 이런 여러 쟁점을 둘러싼 국민의 현재 인식이 수치로 나타났다. 파병 반대가 45%로 찬성 36%보다 높았지만, 19%는 모름·무응답으로 남았다.

여론조사에서 파병 반대 의견이 더 높게 나왔다고 해서 정부의 파병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는 조사 시점에 응답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다.

실제 파병을 추진할 경우에는 파병 대상과 임무, 병력 규모, 작전 지역, 장병 안전 대책, 국제사회와의 협력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파병이라면 관련 절차도 거쳐야 한다.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이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15.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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