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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 카드를 꺼내 들자 정부가 강경 경고와 대화 촉구를 함께 내놨다. 북한이 실제로 방송을 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확성기 방송 재가가 현실화하는 순간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내놓은 긴장 완화 조치가 1년 4개월 만에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정부 셈법이 복잡해졌다.

국방부는 20일 대변인실 입장문을 내고 김 부장의 담화에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우리 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이 북한군의 군사분계선(MDL) 침범을 막고 침범 병력을 물러나게 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고 반박했다. 이어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단호히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영승 합동참모본부 의장도 이날 중부전선을 맡은 5군단 사령부를 찾은 자리에서 김 부장의 담화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대응은 결이 달랐다. 통일부는 같은 날 대변인실 명의 입장에서 "일방적인 경고와 위협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MDL 일대에서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북측 행위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남북이 MDL에 대한 입장을 일치시키고 평화적 관리를 위한 소통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확성기 방송이 재개될 경우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국방부 등과 협의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내놨다.
정치권도 반발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군·해병대 국정감사에서 "사과는 못 할망정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은 김 부장의 담화를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김 부장이 전날 발표한 담화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숫자다. 김 부장은 우리 군이 8월 1일부터 지난 17일까지 경고방송을 2870차례, 경고사격을 201차례 했다고 주장했다. 15~17일 사흘 사이에만 경고방송이 350여 차례, 경고사격이 60여 차례에 달했다며 해당 사단 이름까지 거론했다. 북한군이 우리 군의 대응을 일일이 세고 있었다는 뜻이다.

북한은 2024년부터 MDL 일대에 철책과 대전차 방어시설을 세우는 이른바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최대 7000여 명을 이 작업에 동원했다. 8~9월에만 북한군의 MDL 침범이 50차례 넘게 파악됐다. 경고방송이 울리거나 경고사격이 이뤄지면 작업 인력은 일시적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땅이 얼어붙는 겨울이 오기 전에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북한으로선 우리 군의 대응이 공정을 늦추는 걸림돌이다. 확성기 카드를 실행 예고라기보다 우리 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멈추게 하려는 압박 수단으로 보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북한이 먼저 확성기 방송을 튼 전례가 없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군 당국은 2000년대 이후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선제적으로 예고한 사례는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가장 적대적인 행위로 규정하며 비난해 왔다. 스스로 먼저 방송을 틀면 이런 주장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방송을 재개하면 우리 측의 맞대응에도 대비해야 해 접경지 작업에 부담이 커진다. 김 부장이 담화에서 '검토'와 '고려'라는 표현을 쓰고 구체적인 시점을 밝히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럼에도 정부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건 확성기가 현 정부 대북정책의 상징과 맞닿아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해 6월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를 지시했다. 북한도 이튿날 대남 소음방송을 멈췄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소음 피해에서 벗어나면서 이 조치는 정부 긴장 완화 기조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로 꼽혀 왔다.
북한이 실제로 방송을 재개하면 정부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맞대응 방송에 나서면 이 대통령이 내세운 긴장 완화 기조의 상징을 스스로 거두는 셈이 된다. 대응을 자제하면 북한의 위협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뢰 폭발 사고 대응책으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방안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 안에서도 국방부와 통일부의 메시지 온도 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 부장이 이 정부를 전임 정부보다 더 적대적이라고 몰아세운 것도 정부로선 뼈아프다. 김 부장은 담화에서 "집권 초기부터 '화해'와 '평화'를 제창하며 '유화적인 모습'을 연출하던 리재명 정부의 반공화국 대결 책동이 오히려 노골적으로 반공을 고취하던 악질 보수정권인 윤석열 정부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 3명이 다친 뒤에도 북한은 책임을 부인하며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갈등의 뿌리에는 MDL 인식 차이가 있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MDL을 따라 세운 표지판 1292개 가운데 상당수가 유실되면서 육지에서 경계를 식별하기 어려워졌다. 우리 군과 유엔군사령부, 북한군이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MDL을 판단하다 보니 북한이 '월선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지점에서 우리 군은 침범으로 보고 경고사격을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국방부가 이번 입장문에서 북측에 MDL 인식 차이 해소 노력에 호응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미 대화의 동력이 약해지는 흐름도 정부로선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동안 김 총비서와의 회동 가능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온 것과 비교하면 한발 물러선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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