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8개 크기 초토화…북한이 요즘 대놓고 벌이고 있는 짓, 상황 심상치 않다

북한이 이틀 간격으로 '집속탄두' 시험을 잇따라 공개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전술탄도미사일에 실어 위력을 시험했다. 이번에는 사거리가 훨씬 긴 전략순항미사일에 같은 계열의 탄두를 얹었다. 같은 날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8조원대 가상자산 해킹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한 미국을 향해 "황당무계한 낭설"이라며 날을 세웠다. 무력 과시와 대미 반발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한반도 주변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 뉴스1

■ "축구장 7~8개 면적 초토화"…북한, 순항미사일 '강철비' 시험 현장 공개

조선중앙통신은 3일 "미사일총국은 11월 2일 전략순항미사일 산포전투부 위력평가시험과 수직타격비행특성시험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산포전투부'는 탄두 하나에 소형 자탄(새끼탄) 여러 개를 채워 넣고 목표 상공에서 흩뿌리는 집속탄두를 가리키는 북한식 용어다. 하늘에서 쇳덩이가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서 '강철비'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번 시험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자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인 김정식 대장이 김 위원장 대신 시험을 지도했다.

미사일총국 산하 전투부연구소는 "순항미사일에 장착된 중형 산포전투부로 5∼6정보의 표적 구역을 초강력 밀도로 초토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면적 단위인 1정보는 약 9917㎡로 환산하면 약 4만9600~5만9500㎡가 된다. 국제 규격 축구장(105×68m, 약 7140㎡) 7~8개를 합친 넓이다.

미사일총국장은 "다양한 무기체계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험들은 중요한 시험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전투력"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통신은 미사일 기종과 발사 장소, 비행거리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 합동참모본부도 31일 탄도미사일 발사와 이번 순항미사일 시험에 대해 별도로 공지하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일 전략순항미사일 산포전투부(집속탄 탄두) 위력평가시험과 수직타격비행특성시험을 진행했다고 3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 산 뒤에 숨겨도 머리 위로 꽂힌다…'수직타격'의 노림수

이번 시험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수직타격' 능력이다. 미사일총국 순항미사일체계연구소는 무기체계가 운용될 지역의 자연지리적 특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순항미사일의 말기기동 특성을 향상시킴으로써 대상물에 대한 수직타격 능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수직타격은 순항미사일이 낮게 날아가다 표적 앞에서 급상승한 뒤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는 공격 방식이다. 일반적인 순항미사일은 지면과 비슷한 각도로 접근한다. 이 때문에 산 능선이나 엄폐물 뒤에 숨은 시설을 정확히 때리기 어렵다. 반면 위에서 떨어지듯 공격하면 이런 사각지대가 크게 줄어든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기능이 능선 뒤편의 시설이나 갱도 입구, 건물 지붕을 위에서 타격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지가 많은 한반도 지형을 겨냥한 '맞춤형' 개량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미 군사시설을 노린 재래식 타격 수단을 다양화하고 있다고 본다. 집속탄두는 넓게 흩어진 여러 표적을 한꺼번에 덮치는 데 유리하다. 비행장 활주로, 탄약·유류 저장시설, 병력 집결지 등이 주요 표적으로 꼽힌다.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서로 다른 고도와 방향에서 동시에 날려 보내면 방공망이 떠안는 요격 부담도 커진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시험이 "핵무기 사용 전 단계에서의 재래식 비대칭 타격력 강화로 대남 억제력을 배가하려는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시기도 미묘하다. 이번 시험은 한미 연합공중훈련 '프리덤 플래그'가 진행되는 와중에 이뤄졌다. 홍 연구위원은 사전에 준비된 시험을 훈련 기간에 맞춰 공개해 효과를 극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김 위원장이 31일과 2일 시험에 모두 불참한 점도 주목된다. 홍 연구위원은 무기 개발은 이어가되 김 위원장의 직접 관여는 부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북한이 대외 긴장 수위를 조절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북한, 지난 2일 순항미사일 집속탄두 위력·수직타격 시험 진행 / 조선중앙통신

■ '악마의 무기' 탄도에서 순항까지…연내 실전배치 예고

북한의 집속탄두 시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31일에는 전술탄도미사일용 산포전투부의 전투적용성과 위력을 평가했다. 당시 북한은 '표준2형' 산포전투부로 12~13정보(약 11.9~12.9㏊)를 초토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축구장 약 17~18개 넓이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자탄이 넓은 범위에서 터지는 장면이 담겼다. 항공기 격납고나 탄약고를 본뜬 것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부서지는 모습도 함께 실렸다.

이때 미사일총국장은 "우리는 산포전투부를 특수용도와 표준형 4가지 부류로 구분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안에 모든 전투부를 작전 목적과 표적 특성에 맞게 부대들이 골라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연내 실전배치를 예고한 셈이다. 홍 연구위원은 '표준2형', '중형' 같은 명칭에 비춰 볼 때 미사일 종류에 따라 탄두의 크기와 위력을 규격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련 시험은 올해 들어 꾸준히 이어졌다. 북한은 4월 6~8일 '화성포-11가'형 산포전투부 시험발사를 했다. 같은 달 19일에는 개량형 '화성포-11라'형 5발로 12.5~13㏊ 면적을 강타했다고 주장했다. 4월 시험 때는 김 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현장을 찾았다.

북한이 31일과 2일 시험 소식을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으로만 내보낸 점도 눈에 띈다. 주민들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대내 매체에는 싣지 않았다. 내부 선전보다 바깥을 향한 메시지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 / 뉴스1

집속탄은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로 꼽힌다. 공중에서 흩어진 자탄 상당수가 터지지 않고 땅에 남는다. 이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민간인이 피해를 입는다. 1960년대 집속탄이 대량으로 투하된 라오스에서는 자탄의 약 30%가 불발탄으로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국제 감시단체 '집속탄 모니터'가 각국 추정치를 합산한 전 세계 누적 사상자는 5만5000명이 넘는다. 2006년 국제 구호단체 핸디캡인터내셔널의 조사에서는 기록된 사상자의 98%가 민간인이었다.

이에 2008년 5월 107개국이 집속탄의 사용·생산·비축·이전을 전면 금지하는 '집속탄금지협약(CCM)'을 채택했다. 협약은 2010년 8월 발효됐고, 현재 당사국은 112개국이다. 하지만 미국·러시아·중국·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주요 군사 강국은 가입하지 않았다. 남북한도 모두 비당사국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얀마, 이란, 태국이 집속탄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 김여정 "황당무계한 낭설"…8조원대 해킹 배후설에 이례적 담화

같은 날 북한은 '사이버 전선'에서도 미국과 정면으로 맞섰다. 최근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약 63억달러(약 8조4000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빠져나갔다. 단일 해킹으로는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현지시간 지난달 31일 북한 해킹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를 배후로 지목했다. FBI가 지난해 바이비트에서 약 15억달러를 탈취한 사건 때 지목한 조직과 같은 이름이다.

김여정 총무부장은 2일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를 '사이버범죄국'으로 매도하려고 기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장은 황당무계한 낭설이며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세계 곳곳의 사이버 사기 행위를 북한 소행처럼 몰아가는 것은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고도 주장했다.

김 부장은 오히려 미국을 배후로 암시하기까지 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압수한 가상자산을 국가 전략비축분으로 쌓겠다고 발표한 사실을 거론했다. 이어 탈취된 자금이 회수되면 결국 누구 손에 들어갈지를 따져보면 배후에 대한 단서가 나올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담화에서 가장 무게가 실린 대목은 "여러 측면에서 재고해볼 문제들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다. 북한이 가상자산 해킹 배후로 지목될 때마다 부인해 온 것은 맞다. 다만 김 부장이 직접 담화를 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이 발언을 두고 북미대화 등과 전략적으로 연계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미국 국무부는 2일(현지 시각) 북한이 최근 몇 년간 제재를 피하고 대량살상무기·탄도미사일 개발 자금을 마련하려고 사이버 범죄에 갈수록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사일 시험과 대미 담화가 같은 날 쏟아져 나오면서 북한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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