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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선 힘을 못 썼다. 누적 관객 수는 68만 명에 머물렀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까지 걸린 이 영화는 한때 “기대보다 아쉬웠다”는 평가 속에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곧바로 TOP5에 올라서며 다시 존재감을 터뜨리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영화 ‘귀공자’다.
24일 넷플릭스 코리아에 따르면 ‘귀공자’는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영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극장 흥행에서는 기대 이하 성적에 그쳤던 작품이 OTT에선 공개 직후 상위권에 안착한 것이다. 같은 날 순위는 1위 ‘신명’, 2위 ‘마녀 Part2. The Other One’, 3위 ‘행복의 나라’, 4위 ‘올빼미’, 5위 ‘귀공자’, 6위 ‘워 머신: 전쟁 기계’, 7위 ‘피키 블라인더스: 불멸의 남자’, 8위 ‘소울메이트’, 9위 ‘다시, 서울에서’, 10위 ‘발레리나’ 순으로 집계됐다. 상위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귀공자’가 TOP5에 올라섰다는 점은 분명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귀공자’는 2023년 6월 21일 개봉한 박훈정 감독 작품이다. 복싱 선수 출신 소년이 정체불명의 인물들에게 쫓기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액션 누아르 영화로, 러닝타임은 118분이다. 미스터리, 액션, 스릴러 장르를 한데 묶은 이 작품은 빠른 전개와 강한 추격전, 잔혹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로 주목받았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세다. 필리핀에서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며 병든 어머니와 살아가는 복싱 선수 ‘마르코’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입국과 동시에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뒤틀린다. “난 단 한 번도 타깃을 놓쳐 본 적이 없거든”이라는 대사처럼, ‘귀공자’는 마르코의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무섭게 조여온다.

여기에 ‘마르코’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재벌 2세 ‘한이사’, 필리핀에 이어 한국에서도 다시 마주치는 미스터리한 인물 ‘윤주’까지 가세한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단 하나의 타깃을 향해 몰려들고, 사건이 반복될수록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도 서서히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한 추격극을 넘어 혼란, 광기, 생존 본능이 뒤엉킨 액션 스릴러로 폭주한다. 끝까지 누가 왜 쫓는지, 무엇이 진짜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분명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귀공자’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로는 배우 김선호의 존재감도 빼놓기 어렵다. 이 작품은 김선호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모두의 타깃이 된 복싱 선수 ‘마르코’ 주변을 휘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귀공자’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포마드 헤어스타일에 말끔한 수트 차림, 여유롭지만 무자비한 태도는 캐릭터를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카체이싱, 와이어, 총격 액션까지 더해지며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김선호를 비롯해 강태주, 김강우, 고아라가 주연으로 나섰고 허준석, 정라엘 등이 힘을 보탰다. 특히 강태주는 하루아침에 거대한 추격전 중심에 놓인 ‘마르코’ 역으로 극을 끌고 갔고, 김강우와 고아라는 긴장감을 더하는 축으로 기능했다. 감정을 과하게 설명하지 않고 캐릭터의 기운과 속도로 밀어붙이는 연출도 작품의 개성을 더했다.
개봉 당시만 해도 기대감은 적지 않았다. ‘신세계’와 ‘마녀’ 시리즈, 넷플릭스 ‘낙원의 밤’까지 직접 쓰고 연출하며 자신만의 장르 세계를 구축해온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귀공자’는 한국 영화 예매율 1위, 해외 34개국 선판매 등 개봉 전부터 흥행 기대작으로 불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신세계’부터 ‘마녀’ 시리즈까지 승승장구해온 박훈정 감독으로서도 아쉬운 결과였다.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마녀’ 시리즈와 ‘낙원의 밤’, ‘브이아이피’ 등 박훈정 감독 전작들과 결이 비슷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결국 ‘귀공자’는 스타일은 강했지만 대중적 흥행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작품으로 남았다. 박훈정 감독 커리어에서도 데뷔작 ‘혈투’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기대작이었던 만큼 더 뼈아픈 결과였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른 뒤 OTT에서 다시 반응이 붙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극장에서는 외면받았지만, 집에서 가볍게 보기 시작한 시청자들 사이에선 오히려 영화의 속도감과 추격 서사가 더 잘 먹히고 있는 분위기다. 24일 오전 기준 네이버 평점은 7.65점이다. 숫자 자체가 압도적이진 않지만, 실제 관람객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관람객들은 “나는 재밌다에 한 표. 특히 중반부부터 김선호, 김강우 연기와 추격씬, 액션씬에 많이 집중할 수 있었다”, “김선호 연기 액션 외모 그냥 미침”,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잘 만들어서 정신없이 보고 나왔어요”, “블랙코미디와 누아르 액션의 절묘한 조합에 신선한 영화”, “중반부 들어가면서 속도감 있는 추격신이 좋습니다. 시원한 영화네요, 여러모로”, “박훈정 영화 중 가장 시원하고 재치 있는 영화”, “선과 악의 경계 없이 누아르를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력과 연출이 압권이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귀공자’는 김선호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이 영화로 제59회 대종상영화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수상 당시 그는 “영화가 처음이다. 작품을 만들 때의 노고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2023년 제32회 부일영화상 신인남자연기상, 제44회 청룡영화상 청정원 인기스타상을 받으며 스크린 데뷔작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결국 ‘귀공자’의 현재 성적은 분명한 반전이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 참패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3년 뒤 넷플릭스에선 공개 직후 TOP5에 오르며 다시 살아났다. 극장에서는 놓쳤던 관객들이 OTT에서 뒤늦게 이 영화를 발견하고 있는 셈이다. 68만 명에 머물렀던 ‘19금’ 한국 영화가 이번엔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지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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