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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겸 모델 나스타샤 킨스키(65)가 청소년 시절 촬영한 데뷔작이 반세기 만에 관객들과 만남을 잠시 멈춘다. 미성년자 시절 찍은 노출 장면이 현대 사회의 윤리적 감수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연출을 맡았던 감독이 상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결과다.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빔 벤더스 감독은 지난 3일(현지 시각) 공식 발표를 통해 1975년 제작된 영화 '빗나간 동작(Falsche Bewegung)'의 상영과 송출을 보류해 달라고 각 스트리밍 플랫폼, 방송사, 유통사에 요청했다.
벤더스 감독은 당시 미성년자였던 킨스키를 한층 엄격하게 보호했어야 했다고 인정하며 킨스키를 향해 조건 없는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그는 킨스키와 직접 소통해 원만하게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대로 상영을 재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동시에 현대 사회가 지난 20세기의 갈등적이고 논쟁적인 예술 작업을 어떻게 수용하고 다뤄야 할지 적절한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된 영화에는 제작 당시 13세에 불과했던 킨스키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성적인 행위를 암시하는 장면이 약 2분 동안 등장한다. 최근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Z)과의 인터뷰에서 킨스키는 해당 노출 장면을 들어내 줄 것을 벤더스 감독에게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청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촬영 당시 13세의 어린 나이라 세상사를 온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그 같은 요구와 촬영이 잘못된 일이라는 점만큼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벤더스 감독은 지난달 29일 개최된 독일영화상 시상식 현장에서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과거 시대적 상황의 맥락에서 창작 활동을 수행했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일방적으로 질타할 수만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연기자에게 고통을 주는 장면이라고 해서 이미 완성돼 존재하는 영화를 훗날 임의로 편집하는 행위가 정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 문제를 영화계가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본인의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지 않으려는 태도라는 지적을 낳았다.
킨스키의 법률대리인 측은 벤더스 감독이 오랜 기간 피해 당사자인 킨스키와의 직접적인 대화를 회피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영화의 연출 방식이 어린 시절 킨스키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처사라고 주장하며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킨스키가 유년 시절 촬영한 노출 장면을 두고 배급과 방송 금지를 요구한 일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15세 때 출연했던 공영방송 ARD의 1977년작 드라마 '졸업증서'를 대상으로도 재방송 금지 청구 소송을 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학생 역을 맡았으며, 방영 당시 시청률 67%를 기록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킨스키는 '테스'(1979), '파리, 텍사스'(1984), '원나잇 스탠드'(1997) 등 굵직한 작품에 주연으로 등장하며 할리우드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독보적인 독일계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벤더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킨스키가 출연한 '파리, 텍사스'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상영이 일시 보류된 영화 '빗나간 동작'은 독일 영화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룬 예술 영화다. 이 작품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기념비적인 고전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현대 서독 사회를 배경으로 삼아 전면적으로 재해석해 각색한 영화다. 각본은 훗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거장 작가 페터 한트케가 집필했으며 빔 벤더스 감독 특유의 정적이고 고독한 연출 스타일과 결합해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초기 예술 세계를 대변하는 이른바 '로드 무비 3부작'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벤더스 감독은 '도시의 앨리스'(1974), '빗나간 동작'(1975), '시간의 흐름 속으로'(1976)로 이어지는 연작을 통해 현대인의 소외와 소통 단절, 그리고 전후 독일 사회가 겪던 정체성 방황을 도로 위를 떠도는 주인공들의 여정 속에 녹여냈다.
영화는 작가 지망생인 주인공 빌헬름 마이스터(루디거 보글러 분)가 창작 활동을 위한 새로운 경험과 영감을 찾아 고향인 글뤽슈타트를 뒤로하고 서독 전역을 여행하는 궤적을 쫓아간다. 빌헬름은 함부르크, 본,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독일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산에 닿기까지 길 위에서 기이하고 쓸쓸한 배경을 가진 동반자들과 조우한다. 여배우 테레제(한나 쉬굴라 분), 떠돌이 시인 란다우(페터 케른 분), 그리고 과거의 묵직한 업보를 짊어진 노인과 그의 곁을 지키는 말 없는 동반자인 어린 소녀 미뇽(나스타샤 킨스키 분) 등이 그 여정을 함께 채운다.
주인공 빌헬름은 이들과 함께 움직이며 타인과의 의미 있는 소통과 예술적 완성을 이뤄내려 분투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끝내 자신만의 깊은 외로움과 소통 불가능성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마침내 여정의 종착지인 추크슈피체산의 웅장한 안개 속에서 빌헬름 역시 타인과 완벽하게 융합하지 못한 채 철저히 고립되며 쓸쓸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 종결부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회화인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스크린 위에 오마주해 완벽한 미장센으로 재현해 낸 명장면으로 영화 애호가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다.
작품의 비주얼을 책임진 이는 벤더스 감독의 오랜 협력자이자 거장 촬영감독인 로비 뮬러다. 뮬러는 황량하면서도 공허한 서독의 풍광과 외로운 인간 군상의 심리를 섬세한 구도와 빛의 조율을 통해 카메라에 정밀하게 담아내 영화의 미학적 품격을 끌어올렸다.
'빗나간 동작'은 1975년 개봉 즉시 독일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극찬을 이끌어내며 당대 영화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열린 독일 영화상 시상식에서 최고 감독상(빔 벤더스), 최고 각본상(페터 한트케), 최고 촬영상(로비 뮬러)을 비롯해 편집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아울러 주연인 루디거 보글러와 한나 쉬굴라, 한스 크리스티안 블레히는 물론이고 대사 없이 시각적 이미지로만 역할을 수행했던 13세의 나스타샤 킨스키까지 영화의 주역 전원이 단체 연기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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