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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산업 현장에서 35년을 보낸 안전 전문가가 명리학 책을 냈다. 포스코 출신 정현석씨가 펴낸 '안전이 명리학을 만나다' 얘기다. 제목만 봐도 고개가 갸웃해진다. 안전과 명리학이라니. 뜬금없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저자의 이력을 보면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다. 정씨는 홍익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포항공과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공학도다. 포스코에 입사해선 광양제철소 설비기술부, 포항제철소 제선부, 본사 안전 부문까지 35년을 현장에서 버텼다. 산업안전기사 자격증도 있다. 그런 사람이 명리학을 들고 나왔다.
더 흥미로운 건 정씨가 명리학을 처음부터 좋아했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정씨는 ‘미신’으로 규정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명리학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20년 연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정반대였다. 명리학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도구가 아니라 3000년의 지혜가 응축된 ‘인간 빅데이터’라는 것이다.
책의 출발점은 간단한 통계 하나다. 산업재해의 80% 이상은 인재(人災)라는 것. 설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얘기다. 이는 하인리히 법칙이 오래전에 설파한 명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같은 현장, 같은 조건에서도 누군가는 사고를 내고 누군가는 막는가. 정씨는 이 질문의 답을 소통에서 찾는다. 그리고 소통의 출발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 도구로 명리학을 제안한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기업들은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며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 재해는 줄지 않는다. 정씨는 이 역설을 정면으로 짚는다. 규정을 강화하기 전에 사람을 이해하는 한 단계 깊은 시선이 먼저라는 것이다. 책은 이 지점에서 목차를 따라 하나씩 논증을 쌓아 올린다.
1장에서 저자는 재해의 80% 이상이 인재(人災)임을 데이터로 짚는다. 사고는 우연처럼 찾아오지만 원인은 대부분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설비 결함이나 기술 실패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 소통의 실패라는 시각이다.
2장은 그 인재의 핵심 원인으로 소통 부재를 지목한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재해의 패턴을 들여다보면 결국 누군가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소통의 실패가 곧 사고의 씨앗이라는 주장이다.
3장에서 저자는 소통의 본질로 파고든다. 진정한 소통은 밥 한 번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의 고유한 기질과 성향을 파악해 그 결을 존중하는 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같은 말도 누구에게는 동기부여가 되고 누구에게는 반발심을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장이 이 책의 핵심이다. 사람의 근본을 명리학으로 조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생년월일시로 이뤄진 여덟 글자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수천억 가지 경우의 수를 통해 한 사람의 기질과 판단 구조, 의사결정 방향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 동료가 왜 특정 상황에서 돌발 행동을 하는지, 왜 특정 직무에서는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지, 숙련공조차 설명하지 못했던 그 물음에 명리학이 답을 줄 수 있다고 저자는 본다.
5장에서는 명리학이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례들을 나열한다. 궁합을 보고 결혼하거나, 이사 날짜를 택일하거나,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사주를 보는 관행들이다. 낯설고 비과학적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수천 년에 걸쳐 생활 속에 녹아든 문화적 코드라는 시각이다.
6장은 명리학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명리학이 점술이나 미신으로 낙인찍힌 역사적 맥락을 짚으면서, 본래 명리학이 자연의 패턴과 인간의 기질을 연결한 동양의 경험 과학이었음을 설명한다. 저자 스스로가 회의론자로 출발해 연구자로 전환된 여정이 이 장의 설득력을 높인다.
7장에서는 명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안전 현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오행(五行)의 특성이 각 기질 유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특정 기질을 가진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판단 오류를 일으키기 쉬운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안전 관리자가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명리학을 재가공한 부분이다.
8장은 인공지능(AI)과의 결합을 제안한다. 상업적 목적에 변질돼 온 명리학의 해석을 AI의 객관적 분석으로 복원하면 누구나 자신의 기질 코드를 파악하고 이를 안전 관리의 프롬프트로 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AI가 사주 여덟 글자를 일관성 있게 해석해 주면, 관리자는 그 결과를 토대로 팀원의 성향에 맞는 소통 방식과 직무 배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9장에서는 명리학 외에 활용할 수 있는 부가적인 심리 도구들을 소개한다. MBTI나 에니어그램 같은 현대적 성격 유형론과 명리학을 병행 활용할 때 더 입체적인 인간 이해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차가운 법적 강제성만으로는 무재해를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엄격한 안전 원칙의 토대 위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의 본질을 이해하고 칭찬하며 포용하는 따스한 긍정의 조직문화라는 것이다.
정씨는 포스코 안전소통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스피치 아카데미 동호회 대표 컨설턴트를 지냈다. 저서로는 '스피치 코딩 기술'과 '미소 한 번 지었을 뿐인데'가 있다. 이번 책은 그의 세 번째 작업이자 안전·소통·리더십·조직문화의 문제를 인간 이해라는 하나의 축으로 꿰어내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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