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라칼럼] '짱구 엄마' 강희선이 남긴 것
이해를 돕기 위해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영상 콘텐츠가 중심이 된 시대에는 얼굴을 기억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스마트폰만 켜도 인플루언서와 연예인들의 얼굴이 끊임없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이번 기사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듣는 목소리의 주인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7월 4일,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에서 봉미선(짱구 엄마)의 목소리를 맡았던 강희선 성우가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접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린 시절 TV 앞에서 웃고 떠들던 시간이었지만, 기사를 다 읽고 난 뒤에는 또 다른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강희선 성우는 봉미선뿐 아니라 맹구의 목소리를 연기했고, 외화 전성기에는 샤론 스톤과 줄리아 로버츠 등 해외 배우들의 한국어 더빙을 맡았다. 여기에 서울과 부산 지하철 안내방송까지 담당했다는 사실은 이번 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분의 목소리를 거의 매일 듣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TV에서, 지금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말이다. 그런데도 정작 그 이름은 이번 부고를 통해서야 제대로 기억하게 됐다. 몇 년 전 건강 문제로 봉미선의 목소리가 잠시 바뀌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이 아쉬움을 표현했던 일이 있다. 그때는 단순히 익숙한 목소리가 바뀌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그리워했던 것은 '봉미선'이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오랫동안 그 캐릭터를 완성해 온 강희선 성우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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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선 성우를 이야기하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병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지하철 안내방송을 녹음했다는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에게는 몇 초 스쳐 지나가는 안내방송일 뿐이지만, 그 짧은 목소리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한 사람의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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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성우라는 직업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배우는 얼굴로 기억되지만, 성우는 목소리로 기억된다. 그래서 우리는 캐릭터는 오래 기억하면서도, 그 목소리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성우란 자신의 존재보다 작품과 캐릭터를 먼저 기억하게 만드는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부고가 더 아쉽게 다가왔다. 우리는 어린 시절 그분의 목소리와 함께 웃었고, 지금도 일상 속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너무 익숙했던 나머지,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강희선 성우는 우리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아니었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의 유년과 일상의 한 부분을 함께 만든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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