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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지폐, 미국 수도의 이름, 워싱턴 DC의 가장 높은 탑. 미국이 조지 워싱턴에게 바친 것들이다. 왜 미국은 이 한 사람에게 이토록 집착하는가. 그가 이긴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내려놓은 권력 때문이었다.

좌) 1달러 지폐 속 조지워싱턴의 그림 / 우) 워싱턴 기념탑 이미지.
1754년,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 연대장으로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 참전했다. 전투를 치르고 돌아올 때마다 코트에 총알 구멍이 두세 개씩 박혀 있었다. 모자에도 총알 구멍이 있었다. 타고 있던 말이 두 마리나 총에 맞아 죽었는데 정작 워싱턴은 멀쩡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최전방에 뛰어들었고, 수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이 전쟁을 통해 워싱턴의 이름은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어쩌다인문학/프렌치 인디언 전쟁.
1775년, 렉싱턴 콩코드에서 첫 총성이 울렸다. 미국이 영국에 맞서 독립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민병대를 이끌 사령관이 필요했다. 모든 미국인이 같은 이름을 떠올렸다. 조지 워싱턴이었다.
워싱턴은 1775년 6월 대륙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상대는 세계 최강의 영국 정규군이었고, 워싱턴의 군대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민병대였다. 정면 승부 대신 치고 빠지는 전략, 숨어서 기습하는 전략을 택했다. 영국군은 이 전술을 두고 "늙은 여우 같다"고 했다. 욕이었지만 별명이 됐다.
결국 1783년, 영국은 굴복했다. 미국은 독립을 쟁취했다.

어쩌다인문학/렉싱턴-콩코드 전투.
그때 워싱턴이 놀라운 선택을 했다. 사령관직을 내려놓고 버지니아 농장으로 돌아간 것이다.
영국 국왕 조지 3세가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전쟁에서 이기고도 왕이 되지 않고 권력을 내려놓는다면, 조지 워싱턴은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 적국의 왕이 먼저 경악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를 '아메리칸 킨키나투스'라고 불렀다. 킨키나투스는 로마를 위기에서 구하고 홀연히 농부로 돌아간 로마의 독재관이었다. 권력을 쥐었다가 스스로 내려놓은 사람, 역사에서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어쩌다인문학/킨키나투스.
독립은 했지만 나라는 혼란스러웠다. 13개 주가 서로 싸우며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1787년, 헌법을 만들기 위한 제헌의회가 열렸다. 의장이 필요했다. 또 같은 이름이 나왔다.
농장으로 돌아가 있던 워싱턴은 처음에 거절했다. "농장이 평온하고 너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새 나라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결국 응했다.
제헌의회에서 워싱턴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의장직을 묵묵히 수행했을 뿐이다. 그래도 1789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만장일치로 대통령이 됐다.
당시 대통령 임기 제한은 없었다. 3번, 4번, 종신 연임도 가능했다. 모든 사람이 워싱턴의 연임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두 번째 임기가 끝나자 워싱턴은 또 권력을 내려놨다. 미국인들이 다시 한번 놀랐고, 유럽이 또 한번 경악했다. 사령관직도 내려놓더니,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도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이 선례가 지금도 살아 있다. 미국 헌법이 대통령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하게 된 뿌리가 여기에 있다. 워싱턴의 이 선례는 관습으로 이어지다가 1951년 수정헌법 22조로 명문화됐다.
전투에서 이겨서가 아니었다. 권력을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옴으로써 민주공화정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줬다. 그것이 조지 워싱턴이 1달러 지폐에 남아 있는 이유다.

어쩌다인문학/조지 워싱턴.
다음 편에선 독립 선언 당시 울리지도 않았던 종이 어떻게 미국 자유의 상징이 됐는지, 그리고 그 종이 한국 땅에도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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