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보였다” 문세광 유언…사형집행 직전 남긴 말
문세광 모습.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충격을 남긴 비극적인 테러 사건이다. 당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는 제2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리고 있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단상에서 기념사를 읽어 내려가던 도중 행사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당시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고 곧바로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당일 오후 사망했다. 현장에서 즉시 체포된 범인은 당시 22세의 재일교포 청년 문세광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에서 배우 박정민이 극중 인물 문태광으로 출연해 문세광을 연기했다. / KTV 제공(KTV 아카이브)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했다. 일각에서 역사 왜곡 논란도 제기되는 가운데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과 중심 인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배우 박정민이 문세광을 모티브로 한 극중 인물 '문태광'을 맡아 연기를 펼치면서 문세광의 실체와 사건 전말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문세광이 사형 집행 직전 남긴 유언은?

당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범행 이후 문세광은 어떤 과정을 거쳐 단죄됐을까. 또 그가 사형대에 올라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었을까. 당시 신문기사와 수사 및 집행 기록 등을 토대로 문세광이 사형 집행 직전 남긴 최후 진술(유언)을 정리했다.

문세광은 195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였다.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관계자들과 접촉했고 이들의 사상적 영향과 공작에 깊이 포섭됐다.

조총련 간부의 교사 및 협조 아래 대한민국 정부 요인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문세광은 일본 파출소에서 권총을 도난해 밀반입하는 등 사전에 철저히 범행을 준비했다.

문세광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 비표를 위조해 침입한 뒤 단상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박 대통령은 화를 면했으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된 뒤 끝내 숨을 거두었고 현장에 있던 합창단원 고 장봉화 양도 목숨을 잃었다.

당시 현장에서 체포된 문세광은 대검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조사를 받았다. 초기에는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허위 진술을 하며 저항했으나 수사관들의 추궁 끝에 조총련의 지시를 받고 대한민국의 핵심 요인을 암살하려 했다는 범행 전모를 자백했다.

1974년 12월 20일 서울구치소서 문세광 사형 집행

법정에 선 문세광은 신속하게 재판을 받았다. 1심과 2심을 거쳐 사건 발생 4개월 만인 1974년 12월 17일 대법원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이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판결 사흘 뒤인 12월 20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문세광 모습.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충격을 남긴 비극적인 테러 사건이다. 당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는 제2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리고 있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단상에서 기념사를 읽어 내려가던 도중 행사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당시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고 곧바로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당일 오후 사망했다. 현장에서 즉시 체포된 범인은 당시 22세의 재일교포 청년 문세광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에서 배우 박정민이 극중 인물 문태광으로 출연해 문세광을 연기했다. / KTV 제공(KTV 아카이브)

문세광은 사형 집행 당일 아침 집행장으로 끌려오면서도 당일 바로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문세광은 구치소장이 판결문을 공식 낭독하고 최후로 남길 말이 있느냐고 묻자 당황한 기색으로 "지금부터 집행하는 것입니까?"라고 확인했다. 마침내 자신의 죽음을 직면한 문세광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했고 일본어로 최후 진술(유언)을 남겼다.

문세광 "나는 바보였습니다, 사형을 당해도 당연합니다"

당시 언론 보도와 구치소 기록에 따르면 문세광의 최후 진술은 자신을 향한 자책과 피해자들을 향한 사죄로 시작됐다.

문세광은 "나는 바보였습니다. 조총련에 속아서 이러한 엄청난 과오를 범한 나는 바보였으므로 사형을 당해도 당연합니다"라며 범행이 타인의 공작과 사상적 선동에 휘말린 결과였음을 뒤늦게 깨달았음을 고백했다.

문세광은 이어 "박 대통령께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십시오. 국민들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십시오. 육 여사와 죽은 여학생의 명복을 저승에 가서도 빌겠습니다"라며 고인이 된 육영수 여사와 희생된 장봉화 양,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원수에게 깊은 사죄의 뜻을 전했다.

문세광은 재일교포라는 자신의 신분적 처지와 환경에 대한 회한도 밝혔다. 그는 "내가 만약 한국에서 자랐다면 그들에게 속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일동포로서 국가에 무엇 하나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탄식했다.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이 작품에서 배우 박정민이 극중 인물 문태광으로 출연해 문세광을 연기했다. 문세광은 신속하게 재판을 받았다. 1심과 2심을 거쳐 사건 발생 4개월 만인 1974년 12월 17일 대법원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이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판결 사흘 뒤인 12월 20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문세광은 일본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부탁의 말도 남겼다. 그는 연로한 어머니를 향해서는 "자식의 불효와 기대에 어긋난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전해주십시오. 형제들에게도 미안합니다"라며 사과했다. 홀로 남겨질 아내와 어린 자식을 향해서는 "아내에게는 아직 젊으니 재혼해 제2의 인생을 걸어가라고 전해주고 두 살 된 장남은 형님 부부가 맡아주길 부탁합니다"라고 전했다.

문세광은 아내를 향해서는 "될 수 있으면 육 여사의 묘소를 참배하도록 전해주십시오"라는 당부를 덧붙여 지은 죄의 무게를 가족이 조금이나마 씻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십시오"라는 말도 남겨

문세광은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십시오"라며 가족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표현했다. 유언을 마친 후 오전 7시 30분경 문세광의 형 집행이 완료됐다.

문세광 사형 선고 관련 대한뉴스 기록 영상 / 유튜브, KTV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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