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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김치는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하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맵고 시고 향도 강한 데다, 거의 모든 식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존재감이 너무 커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맛을 보고 나면, 어떤 이들에게는 그 안에서 의외의 익숙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김치는 분명 처음 접하는 한국의 대표 음식이었지만, 한입 먹었을 때 완전히 새로운 맛처럼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고춧가루와 마늘, 젓갈이 더해진 김치 특유의 강렬한 맛은 낯설었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새콤한 발효 양배추의 풍미만큼은 어딘가 익숙했다. 오히려 “이 맛,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에도 김치와 닮은 음식이 있다. 특히 동유럽과 중부유럽에서는 양배추를 절이거나 발효해 먹는 식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독일의 사워크라우트다. 잘게 썬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음식으로, 특유의 새콤한 맛이 특징이다. 루마니아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양배추를 절여 먹는다. 소금물에 절이는 전통적인 방식도 있고, 식초를 활용해 저장하는 경우도 있다. 조리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발효되거나 절여진 양배추 특유의 시고 익숙한 맛은 김치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물론 김치와 유럽식 절임 양배추가 완전히 같은 음식은 아니다. 김치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 등 다양한 재료가 더해져 훨씬 복합적이고 강렬한 맛을 낸다. 반면 사워크라우트나 루마니아식 절임 양배추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담백한 신맛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효 채소 특유의 산미라는 공통점 덕분에, 일부 유럽인들에게 김치는 예상보다 훨씬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내며 더 놀라웠던 건 김치의 맛 자체보다도, 한국인들이 김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유럽에도 비슷한 음식은 있지만, 한국에서의 김치는 단순한 절임 채소나 반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김치는 말 그대로 한국 식탁의 중심에 가까웠다.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김치는 거의 모든 식사에 함께 올라왔다. 식당은 물론이고 가정식에서도 김치는 빠지지 않는 기본 반찬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그냥 곁들이는 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전, 김치찜처럼 김치를 활용한 요리도 매우 다양했다. 하나의 식재료가 이렇게 많은 방식으로 일상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김치냉장고였다. 한국에서는 김치를 더 오래, 더 맛있게 보관하기 위해 일반 냉장고와는 별도로 김치 전용 냉장고를 두는 경우가 많다. 처음 이 문화를 접했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랐다. 하나의 반찬을 위해 별도의 냉장고를 둔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인들이 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단번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도 사워크라우트나 절임 양배추는 전통 음식으로 사랑받지만, 보통 특정 요리의 재료나 계절 음식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하고 좋아하는 음식일 수는 있어도, 한국의 김치처럼 매일 식탁에 오르고, 전용 보관 가전까지 따로 둘 정도로 생활 전반에 깊이 스며 있는 경우는 드물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의 김치 문화는 훨씬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김치는 내게 단순히 “적응해야 할 한국 음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타지 생활 속에서 예상치 못한 위안을 주는 음식이 됐다. 맛의 결은 분명 다르지만, 발효된 양배추 특유의 새콤한 풍미는 독일의 사워크라우트나 루마니아식 절임 양배추를 떠올리게 했고, 그 익숙함 덕분에 김치는 어느 순간 한국에서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 중 하나가 됐다.
처음에는 가장 낯설 것 같았던 음식이,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집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된 셈이다.
결국 한국의 김치는 유럽의 절임 양배추와 비슷한 점이 분명 있다. 모두 양배추를 저장하고 발효시켜 만든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새콤한 맛 덕분에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김치가 차지하는 위치는 그보다 훨씬 크다.
유럽의 절임 양배추가 ‘비슷한 맛의 전통 음식’이라면, 한국의 김치는 일상과 문화, 식탁의 습관까지 함께 이루는 존재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김치를 만난 경험은 단순히 새로운 음식을 알게 된 일이 아니라, 음식 하나가 한 사회에서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체감한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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