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어둡지"...한국의 겨울 패션, 알고 보니 이유 있었다
겨울 롱패딩 패션 / 뉴스 1

이 차이는 생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익숙했던 유럽의 겨울 패션은 날씨가 흐려질수록 오히려 옷으로 분위기를 살리는 쪽에 가까웠다. 컬러풀한 머플러나 패턴이 있는 원피스, 긴 코트 안에 입는 밝은 니트처럼 추운 계절을 조금 덜 칙칙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반대처럼 느껴졌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거리의 옷차림도 점점 더 차분하고 어두운 톤으로 기울어졌다.

처음에는 그 풍경이 어디서나 보였다. 지하철 안에서도, 대학가에서도, 카페에서도, 번화한 거리에서도 마치 모두가 조용히 같은 팔레트를 약속한 것처럼 보였다. 검은 롱코트, 회색 패딩, 베이지 니트, 갈색 가디건, 네이비 바지. 전체적으로는 분명 세련되고 정돈돼 있었지만, 유럽에서 보던 겨울 거리보다 훨씬 더 어두운 인상이었다.

또 하나의 겨울 문화 충격은 바로 롱패딩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목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롱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보니,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모두가 약간 김밥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했고, 다소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겨울을 제대로 겪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기의 추위는 정말 날카롭고 길어서, 롱패딩은 더 이상 과한 옷이 아니라 꼭 필요한 옷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그 모습이 귀엽게까지 보였다. 실용성이 하나의 스타일이 된, 아주 한국적인 겨울 풍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옷 가게에서 롱패딩 / 뉴스 1

흥미로웠던 건 이것이 한국 사람들이 패션에 덜 관심이 있어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패션이 꽤 중요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스타일을 신경 쓰고, 옷차림도 대체로 굉장히 정돈되어 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유럽과 다를 뿐이다. 유럽에서는 색이 스타일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면, 한국에서는 실루엣과 레이어링, 소재감, 전체적인 균형이 더 중요하게 읽히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 차분한 색감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조용한 색만 고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노톤 스타일은 창의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미감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됐다. 대비보다 조화를, 튀는 인상보다 정돈된 인상을, 강한 자기표현보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세련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중성적인 색은 일단 맞추기가 쉽다. 검정은 거의 모든 옷과 어울리고, 회색은 깔끔하며, 갈색과 베이지는 레이어드하기 편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같은 아우터를 반복해서 입게 되는데, 그럴수록 어디에나 무난하게 어울리는 색이 훨씬 실용적이다. 검은 코트 하나면 안에 어떤 옷을 입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고, 무채색 니트는 매일 입어도 부담이 없다.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선 좁은 돌길 거리에서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겨울 옷차림을 한 채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 셔터스톡

한국에서 오래 지낼수록 겨울 패션이 작동하는 방식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유럽에서는 옷으로 겨울의 우울함을 덜어내려는 느낌이 있었다면, 한국에서는 그 계절의 차분함 자체를 스타일로 끌어안는 것 같았다. 밝은 색으로 겨울을 깨기보다는, 무드와 실루엣으로 겨울을 완성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더 절제돼 보이고, 더 미니멀하며, 어떤 면에서는 훨씬 통일감 있는 거리 풍경이 만들어졌다.

물론 한국에 아예 색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있다. 다만 그 색이 유럽에서보다 더 선택적으로, 더 의도적으로 쓰인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오히려 밝은 코트나 강한 색의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더 눈에 띈다. 주변이 대부분 조용한 톤으로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울 겨울 거리의 검은 코트 물결을 봐도 더 이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이 도시만의 시각적 언어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겨울이 도시의 색을 모두 빼앗아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한국은 그저 겨울을 다른 방식으로 입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스타일이 꼭 강한 색에서 나오지 않는다. 때로는 절제된 색감 안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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