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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서 자란 내게 친구 사이는 꽤 분명하게 드러나는 관계였다. 오래간만에 만나면 자연스럽게 꼭 안고, 팔짱을 끼고 걷고, 반가운 마음을 볼에 가볍게 키스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정말 아끼고 반가워한다면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루마니아에서는 친구 사이의 따뜻함이 비교적 눈에 잘 보인다. 반가우면 바로 드러내고, 보고 싶으면 바로 표현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친구를 찾는다. 친구는 단순히 같이 노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고민을 가장 먼저 나누는 대상에 가깝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가장 먼저 느낀 차이는 바로 신체적인 거리감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친한 친구들끼리 팔짱을 끼는 모습은 자주 보였다. 하지만 루마니아에서처럼 자연스럽고 깊은 포옹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 포옹을 하더라도 느낌이 꽤 달랐다.
루마니아에서의 포옹이 상대를 꽉 끌어안는 가깝고 진한 표현이라면, 한국에서의 포옹은 조금 더 짧고 가볍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등을 톡톡 두드리며 금방 끝나는 식의 포옹이 많았고, 처음에는 그 차이가 꽤 낯설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동안은 “혹시 내 친구들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기대한 만큼의 따뜻함이 바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차이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한국에서는 신체적인 접촉보다 개인 공간을 조금 더 중요하게 여기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꼭 많이 안아주거나 감정을 크게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를 챙기고 배려하는 행동 속에서 충분히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기억해 주거나, 집에 잘 들어갔는지 먼저 메시지를 보내주거나, 아플 때 약을 챙겨주거나, 피곤해 보인다고 먼저 알아차리는 식이다. 루마니아에서는 애정이 더 직접적으로 눈에 보인다면, 한국에서는 조금 더 조용하고 세심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 크게 놀랐던 건 친구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느냐였다. 루마니아에서는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일이 정말 흔하다. 친구 집에 가는 것도 자연스럽고, 서로의 가족을 아는 경우도 많고, 어릴 때뿐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뒤에도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일이 크게 이상하지 않다. 친한 친구라면 그 사람의 집을 알고, 그 집의 분위기까지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게는 친구 관계가 자연스럽게 사적인 공간으로 이어지는 것이 너무 익숙했다. 친구를 집에 데려오고, 가족이 친구를 알고, 친구와 집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관계가 깊어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예상보다 훨씬 달랐다. 많은 친구들이 주로 카페, 식당, 학교, 직장 근처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 만났다. 친한 친구끼리도 서로의 집에 자주 놀러 가는 문화는 내가 익숙했던 것보다 훨씬 약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건, 내 한국 친구 중 한 명이 자기 베스트 프렌드조차 집에 와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어떻게 가장 친한 친구인데도 집을 보여준 적이 없을 수 있지?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가족이 그 친구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더 신기했다.
루마니아에서는 친구가 집 안까지 들어오는 것이 친밀함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면, 한국에서는 우정이 꼭 사적인 공간으로까지 확장되지 않아도 충분히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내게 꽤 크게 남은 말도 있다. 한 한국 친구가 힘든 일이 있어도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너무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괜히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자란 환경에서는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친구에게 바로 전화하고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우정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친구란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까지도 같이 버텨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적어도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친한 친구라고 해서 무조건 내 힘든 감정을 다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아픔을 조금 덜어 말하거나, 혼자 정리한 뒤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역시 일종의 배려라는 걸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됐다.
물론 모든 루마니아인이 다 감정 표현이 크고, 모든 한국인이 다 조심스러운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관계마다 다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내가 느낀 건 한국의 우정이 루마니아보다 조금 더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그 거리감이 차갑게 느껴졌고, 관계가 덜 깊은 것처럼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것이 꼭 덜 친한 관계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루마니아식 우정이 “가까이 와”라고 말하는 관계라면, 한국식 우정은 “내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하는 관계에 더 가까웠다. 하나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온기가 크고, 다른 하나는 섬세한 배려 속에서 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내게 우정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우정이란 당연히 자주 안아주고, 집에 초대하고, 힘든 일을 가장 먼저 털어놓는 관계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방식이 아니어도 깊고 진지한 우정이 충분히 가능했다.
지금도 나는 루마니아식 우정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래 보고 싶었던 친구를 꼭 끌어안는 순간, 별다른 약속 없이 집에 놀러 가던 분위기,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친구를 찾던 감각은 여전히 내게 익숙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운 우정 역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말이 많지 않아도 챙겨주고, 자주 안아주지 않아도 세심하게 기억해 주는 방식의 우정 말이다.
결국 한국에서 내가 배운 건, 우정이 꼭 내가 익숙한 모양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우정이 크게 표현되고, 어떤 곳에서는 조용히 쌓인다. 그리고 나는 그 두 방식 모두가 결국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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