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뭘 받을지도 모르는데 산다고?” 외국인이 놀란 한국의 랜덤 굿즈 문화
랜덤 키링과 블라인드박스, 캐릭터 굿즈가 가득한 한국식 랜덤 굿즈 매장에서 외국인이 놀라는 모습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소비문화가 있다. 바로 랜덤 키링, 랜덤 포토카드, 랜덤 피규어처럼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상품을 사는 문화다. 유럽에서도 블라인드박스 유행은 번졌지만, 한국처럼 랜덤 소비가 일상 쇼핑 곳곳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모습은 꽤 낯설었다.

처음 한국에서 랜덤 상품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내가 뭘 받을지도 모르는데 왜 돈을 내지?”

유럽에서도 랜덤 피규어나 블라인드박스 제품은 있다. 최근에는 라부부, 소니엔젤, 스미스키 같은 캐릭터 피규어가 SNS에서 유행하면서 유럽에서도 랜덤 박스를 사는 사람들이 늘었다. 스페인과 영국 등에서도 팝마트나 미니소 같은 매장에서 블라인드박스 인기가 커졌고, 해외 매체들도 성인 소비자들이 장난감과 수집품에 다시 빠지는 ‘키덜트’ 소비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본 랜덤 소비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특정 피규어 브랜드를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취미가 아니었다. 포토카드, 키링, 캐릭터 굿즈, 문구류, 편의점 한정 상품, 아이돌 앨범, 팝업스토어 굿즈까지 랜덤 요소가 너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었다.

유럽에도 블라인드박스는 있지만 한국은 훨씬 일상적이다

유럽에서도 랜덤 박스 트렌드는 분명히 있다. 특히 라부부나 소니엔젤 같은 캐릭터는 SNS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언박싱 영상을 올리고,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면 자랑하고, 중복이 나오면 교환하거나 되판다. 중국 브랜드 팝마트가 유럽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런던 등 주요 도시에서 수집 열풍을 만든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런 문화가 아직 비교적 특정 취미층이나 트렌드 소비에 가까운 느낌이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열심히 모으지만, 모두가 일상적으로 랜덤 굿즈를 사는 분위기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훨씬 넓게 퍼져 있다. 팬덤 문화에서는 앨범을 사면 랜덤 포토카드가 들어 있고, 팝업스토어에 가면 랜덤 키링이나 랜덤 캔뱃지가 있다. 편의점과 문구점에서도 랜덤 스티커, 랜덤 피규어, 랜덤 캐릭터 상품을 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판매 방식일 수 있지만, 외국인에게는 신기하다. 유럽에서 블라인드박스가 “요즘 뜨는 장난감 트렌드”라면, 한국에서는 랜덤이 이미 팬덤과 캐릭터 소비의 기본 문법처럼 느껴진다.

랜덤 포토카드는 외국인에게 가장 신기한 세계다

외국인에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랜덤 소비 중 하나는 아이돌 포토카드다. 앨범을 사면 내가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가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도 원하는 카드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이 구조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원하는 멤버가 있다면 그냥 그 멤버의 카드를 고르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한국 팬덤 문화에서는 랜덤 포토카드가 단순한 부록이 아니다. 그것은 기대, 교환, 수집, 거래, 인증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문화다.

포토카드를 뽑는 순간의 긴장감이 있고, 원하는 카드가 나왔을 때의 기쁨이 있다. 중복이 나오면 친구와 교환하거나 온라인에서 거래한다. 어떤 카드는 희소성 때문에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K팝 팬덤을 통해 랜덤 포토카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K팝 포토카드 랜덤팩은 해외 완구 시장에서도 유통이 확대되고 있으며, 팬들이 어떤 아이돌 카드를 얻을지 모른다는 점이 트레이딩 카드나 블라인드박스와 비슷한 재미를 만든다는 설명도 나온다. 즉, 한국의 랜덤 포토카드는 이제 한국 안에서만 통하는 문화가 아니다. K팝을 따라 해외로 퍼진 랜덤 소비 방식이다.

랜덤 포토카드와 아이돌 굿즈를 정리하던 외국인이 원하는 카드를 발견하고 놀라는 모습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왜 사람들은 모르는 걸 사는 걸까

외국인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왜 사람들은 확실한 상품보다 랜덤 상품에 더 끌릴까?”

이유는 단순히 물건 때문만은 아니다. 랜덤 상품은 구매 순간에 작은 게임을 만든다.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르는 기다림, 포장을 뜯는 순간의 긴장감, 원하는 것이 나왔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이 재미가 된다. 한국에서는 이 재미가 소비문화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한정판, 시즌 상품, 굿즈, 인증샷, 교환 문화에 익숙하다. 랜덤 상품은 이 모든 요소를 한 번에 담고 있다.

상품을 사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뜯고, 확인하고, 사진 찍고, 친구에게 보여주고, 중복이면 교환하고, 희귀한 것이 나오면 자랑한다. 소비가 하나의 놀이가 된다. 한국의 랜덤 소비는 단순한 쇼핑보다 ‘참여형 경험’에 가깝다.

한국에는 랜덤 상품만 모아둔 공간도 있다

외국인에게 더 놀라운 것은 한국에는 이런 랜덤 상품을 한곳에 모아둔 공간이 많다는 점이다. 문구점, 캐릭터숍, 팝업스토어, 굿즈숍, 가챠숍, 피규어 매장에 가면 작은 박스와 캡슐이 진열돼 있다. 어떤 곳은 매장 전체가 랜덤 키링, 랜덤 피규어, 랜덤 스티커, 랜덤 참으로 가득하다.

유럽에도 팝마트나 미니소 같은 매장이 생기고 있고, 블라인드박스 코너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다양한 소비 공간에 랜덤 굿즈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느낌은 더 강하다.

한국에서는 랜덤 상품이 특정 매니아층만의 취미가 아니라, 친구와 놀러 갔다가 하나 사보는 가벼운 놀이가 되기도 한다. 성수 팝업스토어에서, 홍대 굿즈숍에서, 다이소나 편의점에서, 지하상가 캐릭터 코너에서 “하나만 뽑아볼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점이 외국인에게는 굉장히 한국적으로 보인다. 한국은 소비를 단순히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작은 재미와 경험으로 바꾸는 데 능숙한 나라처럼 느껴진다.

귀여움과 수집욕이 만났을 때

한국 랜덤 소비에서 중요한 요소는 귀여움이다. 키링, 캐릭터 피규어, 미니 인형, 스티커, 포토카드는 대부분 작고 귀엽고 들고 다니기 쉽다. 가방에 달거나, 휴대폰에 붙이거나,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유럽에서도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한국에서는 성인들도 귀여운 굿즈를 훨씬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회사원이 가방에 캐릭터 키링을 달고 다니고, 대학생이 랜덤 스티커를 모으고, 아이돌 팬이 포토카드를 카드홀더에 넣어 카페에 가져간다. 이런 문화는 외국인에게 처음엔 조금 놀랍다. 장난감이나 귀여운 굿즈가 꼭 어린아이의 물건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취향을 보여주는 작은 장식품이 된다.

랜덤 소비는 이 귀여움에 수집욕을 더한다. 하나를 사면 다른 것도 갖고 싶고, 시리즈를 완성하고 싶고, 희귀한 제품을 뽑고 싶어진다. 그래서 작은 상품 하나가 계속 다음 구매로 이어진다.

재미와 중독 사이의 애매한 경계

물론 랜덤 소비에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같은 제품을 계속 사게 될 수 있고, 중복이 쌓이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블라인드박스가 도박적 요소와 비슷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부 매체는 라부부나 소니엔젤 같은 블라인드박스 장난감이 성인 소비자에게도 강한 구매 충동과 후회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이 부분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랜덤 상품은 재미있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정확히 고를 수 없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운이 좋으면 한 번에 원하는 것을 얻지만, 운이 나쁘면 여러 번 사야 한다. 특히 어린 소비자나 팬덤 소비에서는 지출이 커질 수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 랜덤 소비가 재미있으면서도 조금 위험해 보일 때가 있다. “하나만 더 사면 나올 것 같다”는 마음이 소비를 계속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랜덤 소비는 놀이와 중독 사이의 경계에 있다. 적당히 즐기면 작은 재미지만, 지나치면 부담이 된다.

외국인도 결국 하나쯤 사보게 된다

처음에는 랜덤 상품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없는데 왜 사는지 이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친구들과 굿즈숍이나 팝업스토어에 가면 결국 나도 하나쯤 사보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상자를 흔들어보고,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예상하고, 포장을 뜯는 순간 모두가 집중한다. 원하는 것이 나오면 기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나오면 웃으면서 다른 사람과 바꾼다. 물건보다 그 순간의 대화와 반응이 더 재미있다.

한국의 랜덤 소비는 혼자 하는 쇼핑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작은 이벤트가 된다. 그래서 외국인도 결국 이 문화에 조금씩 빠진다.

랜덤 소비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그 안에는 수집의 즐거움, 친구와의 교환, 취향 표현, 귀여운 물건을 갖는 기쁨이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랜덤 상품이 팝업스토어, 팬덤 문화, 캐릭터 소비와 결합되면서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됐다.

유럽에서도 이 흐름은 분명히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훨씬 더 빠르고 다양하게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다. 랜덤 키링 하나, 포토카드 하나, 피규어 하나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이 된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랜덤 소비 문화는 처음에는 이상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해되는 문화다.

뭘 받을지 모르는 불확실함이 오히려 재미가 되고, 작은 상자 하나가 친구들과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 랜덤 상품은 단순한 굿즈가 아니다. 소비를 놀이로 바꾸는 한국식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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