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루마니아인 한국생활] “왜 내 눈을 피하지?”…루마니아인이 한국에서 당황한 사소한 습관 3가지

한국과 루마니아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고 예의를 표현하는 방식도 상당히 다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거대한 문화유산이나 매운 음식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아주 작은 행동들이었다.

상대가 대화 중 내 눈을 오래 바라보지 않는 것, 내가 말하는 동안 계속 “어”, “그래”, “맞아”라고 소리를 내는 것, 사무실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모습이었다.

한국인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루마니아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상대가 나를 피하거나 말을 끊고, 공공장소에서 지나치게 편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문화 충격은 특별한 전통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눈을 어디에 두는지, 대화를 얼마나 조용히 듣는지, 실내에서 무엇을 신는지가 더 큰 혼란을 만든다.

루마니아에서는 눈을 봐야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

루마니아에서 대화할 때 눈맞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의 눈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행동은 자신감과 관심, 존중을 보여준다.

상대가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 다른 곳을 보면 집중하지 않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루마니아의 일반적인 인사법 역시 악수와 직접적인 눈맞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소개된다. 술잔을 부딪칠 때는 이 습관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노록!”이라고 건배하면서 잔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마시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부 루마니아 문화 안내에서도 건배할 때 눈을 맞추지 않는 행동을 피해야 할 예절로 설명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처음 건배했을 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과 술을 마실 때 한국인들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식 기준으로 보면 상대에게서 시선을 피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였다. 그 행동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장자나 윗사람에게 예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눈을 피하는 것이 항상 무례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눈맞춤 자체를 불편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그것이 너무 단순한 해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인도 친구나 연인, 동료와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눈을 맞춘다. 젊은 세대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행동이 무례한 것도 아니다.

차이는 관계와 상황에 있었다.

연장자나 상사처럼 위계가 분명한 사람을 너무 오래 똑바로 응시하면 도전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로 느껴질 수 있다. 인사를 위해 고개를 숙일 때도 계속 눈을 마주치기보다 시선을 조금 낮추는 것이 존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루마니아에서는 상대의 눈을 보지 않으면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시선을 조금 낮추는 행동이 “당신의 위치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같은 눈동자의 움직임이 한 문화에서는 무관심으로, 다른 문화에서는 예의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눈맞춤 문화를 이해하려면 “눈을 보느냐, 보지 않느냐”보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를 먼저 봐야 한다.

내가 말할 때마다 “어, 그래”라고 한 이유

한국인과 대화하며 두 번째로 당황했던 것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짧은 반응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대는 중간중간 이런 소리를 냈다. “어.” “응.” “그래.” “맞아.” “아, 진짜?” 처음에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줄 알았다.

루마니아에서는 누군가가 길게 이야기하는 동안 비교적 조용히 듣는 사람이 많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표정으로 반응할 수는 있지만, 문장 중간마다 계속 소리를 내면 말을 끊거나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특히 내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는 더 혼란스러웠다.

상대가 “어”라고 말할 때마다 내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뜻인지, 이제 그만 말하라는 뜻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실제 의미는 거의 반대였다. 그 사람은 내 말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계속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화 중 사용하는 “응”, “어”, “그래”, “맞아” 같은 표현은 언어학에서 ‘맞장구’ 또는 ‘백채널’이라고 부른다. 한국어 대화 속 맞장구는 상대의 발언권을 가져오는 완전한 대답과 다르다. 상대가 계속 말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이야기를 이해하거나 공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국어 대화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어”, “아”, “음”, “응” 등의 반응은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동의와 감정적 공감을 표현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맞아”, “그래”, “그렇지” 역시 한국어 구어 대화에서 다양한 담화 기능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맞장구 표현이다.

한국인에게 아무 반응 없이 가만히 있는 사람은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루마니아 사람은 조용히 듣는 것으로 충분히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쪽은 소리를 내야 적극적으로 듣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말을 끊지 않아야 제대로 듣는 것이다.

둘 다 상대를 존중하려는 행동이지만 표현 방식이 다르다.

사무실에서 신발을 벗는 사람들

세 번째 문화 충격은 한국 사무실에서 경험했다. 처음 출근했을 때 일부 직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모습을 봤다. 누군가는 책상 아래에 운동화나 구두를 두고 실내화 차림으로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자리에서는 슬리퍼마저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사무실은 집과 구분되는 공적인 공간이다. 아무리 편안한 회사라도 신발을 벗는 행동은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비전문적으로 보일 수 있다. 맨발이나 양말만 보이는 상태라면 위생과 냄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루마니아 사람들도 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는 경우가 많다. 방문객에게 실내화를 제공하는 가정도 흔하다. 따라서 충격의 핵심은 한국인이 집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사실이 아니다.

집에서 하던 행동이 사무실과 일부 병원, 학원, 식당의 좌식 공간처럼 여러 실내 장소로 확장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실내화 문화는 바닥과 가까이 생활해온 주거방식과 연결돼 있다. 한국 가정에서는 바닥에 앉거나 식사하고, 아이들이 바닥에서 놀기도 한다. 외부에서 신던 신발을 집 안에 들이는 것은 실내 바닥을 오염시키는 행동으로 인식된다.

이런 습관은 일부 직장에도 이어졌다. 오랜 시간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근무하는 대신 사무실 전용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 발이 편하고, 외부의 흙이나 빗물을 실내로 가져오는 것도 줄일 수 있다. 한국의 사무실 슬리퍼 문화를 다룬 설명에서도 편안함과 실내 청결이 주요 배경으로 언급된다.

한국인에게 슬리퍼는 옷을 완전히 벗어 던지는 것과 같은 무례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은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생활공간”이라는 인식에 가깝다. 하지만 모든 한국 회사가 신발을 벗는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나 호텔, 고객을 자주 만나는 직장처럼 복장 규정이 엄격한 곳에서는 구두를 계속 착용한다. 중요한 회의나 외부 손님을 만날 때는 슬리퍼를 신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이 역시 눈맞춤과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루마니아인에게는 편안함보다 공적인 모습이 먼저다

루마니아에서는 사무실에서 편안함을 느끼더라도 공적인 외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신발은 전체 복장의 일부다. 셔츠와 바지를 제대로 입고도 슬리퍼를 신으면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집과 직장의 경계를 흐리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오랜 시간 한 공간에 머무르는 직원들이 책상 주변을 자신의 작은 생활공간처럼 꾸미기도 한다. 담요와 쿠션, 칫솔과 슬리퍼를 두고 사용한다. 루마니아인의 시선에는 회사가 지나치게 집처럼 보일 수 있다.

한국인의 시선에는 하루 종일 불편한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불필요한 고생처럼 보일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예의 바르거나 올바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적인 공간에서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다를 뿐이다.

한국인은 무례했던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몇 가지 행동을 잘못 해석했다. 눈을 오래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불편해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어”,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꾸 말을 끊는다고 느꼈다. 사무실에서 신발을 벗는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지나치게 편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행동 뒤에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선을 낮추는 것은 관계에 따라 존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짧은 맞장구는 내 말을 계속 듣고 있다는 신호였다. 실내화는 게으름보다 편안함과 청결을 위한 선택이었다. 문화 충격은 상대가 이상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게 익숙한 해석을 다른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할 때 생긴다.

한국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이런 차이는 여행 안내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경복궁에서 절하는 방법보다 대화 중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가 더 자주 필요하다. 김치를 먹는 법보다 상대의 “응”이 동의인지 단순한 경청 신호인지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신발을 벗어야 할 장소와 계속 신어야 할 장소를 구분하는 것도 일상의 일부가 된다. 이제 나는 한국인과 이야기할 때 상대의 눈만 보지 않는다.

표정과 말투, 나이와 관계까지 함께 살핀다. 맞장구가 들려도 말을 끊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의 발부터 확인한다. 반대로 루마니아 사람을 만날 때는 눈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상대가 말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리려고 한다.

한국과 루마니아의 차이는 단순히 동양과 유럽의 차이가 아니다. 두 나라 모두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다만 한국인은 때때로 시선을 낮추고 소리를 내며 듣고, 루마니아인은 눈을 바라보고 침묵하며 듣는다.

행동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의외로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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