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면 꼭 찍는다…외국인이 빠진 ‘네 컷 사진’의 시작

홍대와 성수, 명동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을 걷다 보면 작은 포토부스 안에서 포즈를 맞추는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 네 컷 사진은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를 한 날 가볍게 남기는 기록에 가깝지만,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실제로 즐기는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여행 코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도 즉석 네 컷 사진을 한국의 새로운 만남 문화로 소개하고 있다. 국내 무인 네 컷 사진관 수는 2023년 1006곳에서 2024년 3000곳 이상으로 늘었으며, 이용자의 80% 이상이 10대와 20대로 조사됐다. 이제 포토부스는 단순히 사진을 인화하는 기계가 아니라 패션과 팬덤, 여행, 소셜미디어가 결합된 생활문화가 된 셈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식 네 컷 사진을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한국 포토부스의 시작은 1990년대 ‘스티커사진’

한국에서 사진부스 문화가 처음 유행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다. 당시 번화가와 오락실에는 사진을 찍은 뒤 화면에서 글씨와 그림을 추가하고, 결과물을 작은 스티커 형태로 출력하는 기계가 빠르게 늘어났다. 친구들과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여러 표정을 지은 뒤 사진을 잘라 휴대전화나 다이어리에 붙이는 방식이 청소년과 대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스티커사진은 일본에서 발전한 ‘프리쿠라’의 영향을 받은 형태였다. 프리쿠라는 사진을 찍은 후 화면에서 다양한 꾸미기 기능을 이용해 스티커로 출력하는 일본의 즉석 사진기였으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기계가 확산됐다. 1990년대 말 한국의 주요 번화가에는 수백 대의 즉석 사진부스가 설치될 만큼 열풍이 컸다.

1990년대 후반 학생들이 오락실에서 스티커사진을 꾸미고 있다.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그러나 디지털카메라와 카메라폰이 보급되면서 스티커사진의 인기는 점차 줄었다. 휴대전화로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고 직접 보정할 수 있게 되자 별도의 기계에 돈을 넣어 사진을 뽑아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2000년대에는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을 스티커로 인화하는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스티커사진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중심적인 놀이문화로 남지 못했다.

2017년, 한국식 ‘네 컷 사진’이 등장했다

지금의 한국 포토부스 문화를 만든 전환점은 2017년이다. 인생네컷은 그해 4월 대구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초기에는 지하철역에 설치된 증명사진 자판기와 비슷한 단독 기계 형태로 운영됐다. 이후 2018년 첫 직영점이 문을 열면서 촬영 부스와 소품, 거울을 갖춘 무인 사진관 형태로 확장됐다.

과거 스티커사진과 달리 네 컷 사진은 꾸미기 기능보다 촬영 자체에 집중했다. 이용자는 제한된 시간 안에 네 번의 포즈를 정하고, 촬영이 끝나면 세로로 길게 배열된 사진을 바로 받는다. 지나치게 큰 눈이나 하얀 피부를 만드는 보정보다 비교적 자연스러운 인물 사진을 제공한 것도 한국형 포토부스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방식은 스마트폰 시대와 오히려 잘 맞았다. 휴대전화에는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되지만, 실제로 인화해 보관하는 사진은 많지 않다. 네 컷 사진은 몇 분 만에 촬영과 인화가 끝나고 같은 사진을 두 장 이상 출력해 함께 찍은 사람들이 나눠 가질 수 있다. 디지털 파일은 QR코드나 앱을 통해 저장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종이 사진을 남긴다는 점이 젊은 소비자의 수요를 끌어냈다.

인생네컷을 시작으로 포토이즘, 포토그레이, 하루필름 등 여러 브랜드가 등장했고, 사진관은 번화가뿐 아니라 대학가와 쇼핑몰, 관광지까지 빠르게 확산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무인 네 컷 사진관은 전년보다 약 3배 늘어 3000곳을 넘어섰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촬영 전 머리띠와 소품을 고르고 있다.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외국인이 한국에서 포토부스를 찾는 이유

외국인 관광객이 네 컷 사진에 관심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 매장에 들어가 머리띠와 안경을 고르고, 짧은 시간 안에 포즈를 맞추며, 촬영 직후 사진이 나오는 전 과정이 하나의 놀이가 된다. 가격도 전문 사진관보다 낮고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도 화면 안내에 따라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외국인의 한국 여행 방식이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서 한국인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 대상 관광 플랫폼 업체들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사진관과 셀프 촬영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인기 있는 사진관을 예약하거나, 네 컷 사진을 찍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활동을 ‘한국인처럼 여행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의 무인 포토부스에서 화면을 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포토부스는 언어 장벽이 낮다는 점에서도 여행 콘텐츠로 적합하다. 식당이나 미용실에서는 직원과 대화해야 하지만, 무인 사진관에서는 결제와 촬영, 인화까지 화면을 보며 진행할 수 있다. 짧은 여행 중에도 별도의 예약 없이 체험할 수 있고, 완성된 사진은 부피가 작아 기념품으로 가져가기 쉽다.

K팝 아이돌과 함께 찍는 사진이 됐다

한국식 포토부스가 해외 팬들의 관심을 끈 또 다른 이유는 K팝과의 결합이다. 포토부스 브랜드들은 아이돌과 배우, 캐릭터의 이미지를 넣은 기간 한정 프레임을 출시한다. 팬은 실제 아티스트를 만날 수 없더라도 화면 속 이미지 옆에서 포즈를 취해 함께 사진을 찍은 듯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인생네컷 운영사에 따르면 K팝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프레임을 본격 도입한 후 해외 매출 성장률이 크게 높아졌다. 2024년 초 기준 인생네컷은 미국과 일본,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 16개국에서 195개의 해외 매장을 운영했으며, 전년 대비 새로 문을 연 해외 매장 수가 K팝 프레임 도입 이후 크게 늘었다.

포토이즘 역시 아이돌의 생일이나 앨범 발매 일정에 맞춘 프레임을 선보이며 사진을 팬 굿즈로 확장했다. 일반 일반적인 K팝 포토카드가 완성된 이미지를 구매하는 방식이라면, 포토부스 사진은 팬이 직접 촬영에 참여해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사진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팬이 아티스트와 연결됐다고 느끼게 하는 체험 상품이 된다.

일본식 스티커사진과 다른 한국형 포토부스

사진부스 문화는 한국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일본의 프리쿠라는 한국보다 먼저 발전했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자동 사진부스가 운영됐다. 다만 현재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식 포토부스는 기존 사진기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일본 프리쿠라가 큰 눈과 매끈한 피부, 얼굴형 보정과 화려한 꾸미기 기능을 강조했다면, 한국의 네 컷 사진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배경과 자연스러운 인물 표현에 집중한다. 일본에서도 과도한 보정에 부담을 느끼는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한국식 포토부스가 대안으로 주목받았으며, 포토이즘은 이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한국식 포토부스에서는 이용자가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촬영 전에 옷과 소품을 고르고, 네 장에 어떤 포즈를 넣을지 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보다 함께 찍은 사람과 자연스러운 순간을 남기는 데 초점을 맞춘 방식이다.

한국에서 시작해 해외로 다시 수출되는 문화

네 컷 사진은 현재 한국 여행 중에만 경험할 수 있는 문화는 아니다. 인생네컷과 포토이즘을 비롯한 국내 브랜드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인생네컷은 2024년 국내외 약 650개 매장을 운영했고 해외 진출국도 26개국으로 늘어났다. 국내외 매장의 월평균 방문자는 19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에는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런던 뉴몰든의 한국식 포토부스를 방문하면서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당시 인생네컷은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런던 소호 매장은 한 달 매출이 1억 원 이상 발생한 것으로 보도됐다.

한국의 네 컷 사진은 일본의 스티커사진과 서구의 전통 포토부스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무인 매장과 자연스러운 촬영, 즉석 인화, K팝 프레임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발전했다. 이후 한국에서 만들어진 방식이 다시 해외로 확산되면서 ‘K-포토부스’라는 독립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여행지보다 평범한 하루를 남기는 사진

외국인이 한국에서 네 컷 사진을 찍는 이유는 경복궁이나 남산처럼 특정 관광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친구와 쇼핑한 날, 콘서트를 본 뒤, 성수동이나 홍대에서 시간을 보낸 순간을 한국 젊은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남기려는 것이다.

관광 기념사진이 장소를 증명하는 기록이라면 네 컷 사진은 그날 함께한 사람과 분위기를 담는 기록에 가깝다. 촬영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지만, 소품을 고르고 네 번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포즈를 바꾸는 과정이 여행의 한 장면으로 남는다.

1990년대 스티커사진에서 시작된 한국의 사진부스 문화는 카메라폰 시대에 한 차례 사라지는 듯했지만, 2017년 네 컷 사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꼭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일상 문화이자, 해외로 수출되는 K콘텐츠의 한 형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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