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만 마시는 여행은 끝났다…외국인이 찾기 시작한 한국의 ‘양조장’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전통주 경험이 식당에서 막걸리 한 잔을 주문하는 데서 양조장을 직접 방문해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넓어지고 있다. 여행객들은 쌀과 물, 누룩이 술로 변하는 발효 과정을 배우고 지역별 전통주를 맛보면서, 한 병의 술에 담긴 한국의 농업과 역사, 지역문화를 함께 경험한다.

양조장 여행은 아직 한복이나 고궁, 전통시장처럼 외국인 관광객의 대표 코스로 자리 잡았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통주를 지역관광과 연결하고 외국인을 새로운 소비층으로 지목하면서 하나의 체험형 관광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발효를 마친 술덧을 천에 넣고 눌러 막걸리를 거르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 셔터스톡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3년부터 지역 양조장을 관광·체험 공간으로 육성하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6년 5곳이 새롭게 선정되면서 전국 운영 시설은 69곳으로 늘어났다. 이들 공간에서는 단순한 술 판매를 넘어 양조장 견학과 전통주 만들기, 시음, 지역 농산물 체험 등을 제공한다.

술을 마시는 장소에서 문화를 경험하는 장소로

과거의 양조장은 술을 생산해 유통하는 작업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방문객이 제조 현장을 둘러보고 술의 원료와 발효 원리를 배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부 양조장은 오래된 항아리와 목조 건물, 전통 도구를 보존해 역사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반면, 다른 곳은 현대적인 시음장과 전시 공간을 갖춰 젊은 여행객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

농식품부가 ‘찾아가는 양조장’을 선정할 때도 술의 품질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양조장이 지닌 역사성과 지역사회와의 연계성, 주변 관광자원, 체험 프로그램 운영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 뒤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는 시설을 선정한다.

2024년 선정된 양조장에는 안동소주를 생산하는 경북 안동의 양조장과 충북 영동의 포도 농원, 전남 나주의 전통주 양조장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선정 시설에 체험장과 판매장 개선, 프로그램 개발, 온라인 홍보, 지역관광 상품화 등을 지원하고 있다.

양조장 여행의 매력은 완성된 술을 맛보는 데만 있지 않다. 방문객은 쌀을 찌는 과정에서 퍼지는 곡물 향을 맡고, 발효 중인 술독을 살펴보며, 양조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평소 식당에서 보던 막걸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게 된다. 체험 프로그램에 따라 직접 재료를 섞어 술을 빚거나 술잔을 만들고, 지역 음식과 전통주를 함께 맛보는 과정도 여행의 일부가 된다.

전통주와 증류주 제조에 사용되는 현대식 양조 설비가 전시돼 있다. / 뉴스1

한국 전통주의 핵심은 쌀과 물, 그리고 ‘누룩’

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주 제조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누룩’이라는 독특한 발효 재료 때문이다. 와인은 포도 자체에 들어 있는 당을 효모가 알코올로 바꾸고 맥주는 보리의 전분을 맥아의 효소로 당분으로 바꾸지만, 한국의 곡물주는 전통적으로 누룩을 이용해 쌀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고 발효를 진행한다.

누룩은 밀이나 보리, 쌀 등의 곡물을 빻아 물과 섞은 뒤 일정한 형태로 빚어 미생물이 자라도록 만든 발효제다. 누룩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생물과 효소가 쌀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고, 효모는 만들어진 당을 알코올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유기산과 여러 향미 성분도 함께 형성되기 때문에 사용한 누룩과 발효 온도, 물의 성질, 숙성 기간에 따라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가장 기본적인 쌀 막걸리는 쌀로 지은 고두밥을 식힌 뒤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만든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쌀의 전분이 당으로 바뀌고 다시 알코올로 전환되면서, 처음에는 단맛이 강했던 혼합물에 신맛과 향, 알코올이 더해진다.

발효를 마친 술에는 액체와 쌀 찌꺼기가 함께 남아 있는데, 이를 체에 거칠게 걸러 물과 섞어 마시는 술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막걸리다. 한국관광공사는 막걸리를 찐 찹쌀이나 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뿌연 색의 전통주로 소개하고 있으며, 제품에 따라 알코올 도수와 제조법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발효 술덧에서도 어떤 부분을 사용하고 이후 어떤 공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술이 만들어진다. 술덧을 가만히 두면 위쪽에는 비교적 맑은 액체가 떠오르고 아래쪽에는 탁한 침전물이 남는데, 맑은 부분을 떠서 여과하면 약주나 청주 계열의 술이 된다. 발효주를 증류기에 넣어 알코올과 향 성분을 모으면 안동소주와 같은 증류식 소주로 이어진다.

따라서 막걸리와 약주, 청주, 증류식 소주는 완전히 분리된 술이라기보다 쌀과 누룩을 이용한 발효를 공통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여과와 숙성, 증류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양조장 관계자가 항아리에서 발효 중인 막걸리를 떠서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같은 쌀로 만들었는데 맛이 모두 다른 이유

한국 전통주는 같은 쌀을 사용해도 양조장마다 맛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술을 한 번만 빚는 단양주 방식이 있는가 하면, 발효 중인 술에 쌀과 누룩을 다시 넣는 이양주와 삼양주 방식도 있으며, 재료를 여러 번 나누어 넣으면 일반적으로 발효 기간이 길어지고 맛과 향의 구조도 복잡해진다.

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과일, 꽃, 약재를 활용하는 것도 한국 전통주의 특징이다. 제주에서는 감귤이나 오메기떡과 연결된 술을 만날 수 있고, 문경에서는 오미자, 영동에서는 포도, 예산에서는 사과를 활용한 술이 생산된다. 안동소주와 한산소곡주, 경주 교동법주처럼 특정 지역과 오랜 역사를 공유하는 술도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경주 교동법주와 한산소곡주, 안동소주 등을 지역의 전통 방식이 이어진 대표적인 술로 소개한다. 양조장을 방문한다는 것은 술 한 종류를 시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의 농산물과 물, 기후, 역사적인 제조법이 한 병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보는 경험이 된다.

충북 충주의 중원당은 청명주 제조 전통을 4대째 이어오면서 양조 시연과 교육, 전통주 만들기, 술잔과 사발 꾸미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명주는 재래종 통밀과 찹쌀을 사용해 낮은 온도에서 약 100일 동안 발효·숙성하는 술로 소개되고 있어, 짧은 시간에 완성되는 공산품과 다른 전통주의 시간성을 보여준다.

한 양조장 내부에 술의 발효와 저장에 사용되는 대형 탱크들이 설치돼 있다. / 뉴스1

외국인 관광객에게 양조장이 흥미로운 이유

한국 전통주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에게 막걸리는 대체로 희고 걸쭉한 ‘쌀로 만든 술’로 보이지만, 양조장을 방문하면 그 안에 예상보다 복잡한 제조 과정과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쌀과 물, 누룩이라는 단순한 재료에서 새콤한 막걸리와 맑은 약주, 높은 도수의 증류식 소주가 모두 만들어진다는 점은 제조 과정 자체를 여행 콘텐츠로 만든다. 발효 중인 술의 향을 직접 맡고, 양조 도구를 살펴보며, 제조자의 설명을 들은 뒤 완성된 술을 비교해 보는 경험은 식당에서 술만 주문했을 때보다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다.

외국어가 가능한 프로그램과 사전예약 시스템이 확대된다면 양조장 여행은 언어 장벽도 비교적 낮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제조 과정을 눈으로 보고 향과 맛을 직접 경험하는 활동은 긴 설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양조장은 서울에 집중된 기존 관광 동선을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포천이나 양평을 찾고, 안동소주를 배우기 위해 안동을 방문하며, 지역 와인을 경험하기 위해 영동이나 예산으로 이동한다면 전통주가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재 외국인 관광객의 양조장 방문 규모를 전국적으로 보여주는 통합 통계는 제한적이므로, 양조장이 이미 외국인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정부와 업계가 외국인 대상 관광 콘텐츠로 적극 육성하는 단계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양조장 직원이 탭을 이용해 갓 만든 수제 맥주를 잔에 따르고 있다. / 뉴스1

정부도 전통주를 ‘K-미식 여행’으로 키운다

정부는 전통주를 단순한 주류 제품이 아니라 지역관광과 수출을 연결할 수 있는 K-푸드 콘텐츠로 바라보고 있다. 농식품부는 2025년 전통주 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생산 역량 강화와 국내 판로 확대, 해외시장 개척 등을 주요 전략으로 제시했으며, 2026년에는 외교부와 함께 전통주를 해외에 알리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해외 홍보 과정에서 한국 전통주 전체를 ‘K-Sool’로 브랜드화하고 막걸리는 ‘Makgeolli’, 약·청주는 ‘Yakju’, 과실주는 ‘Fruit Wine’, 증류주는 ‘K-Soju’로 분류해 영문 명칭을 정리했다. 2026년에는 미국과 중국, 독일, 태국 등 주한 외교단 관계자를 대상으로 전통주와 한식을 함께 소개하는 행사도 열었다.

서울 동대문에도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 소비자가 전통주를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시음과 전통주 칵테일, 지역 양조장 팝업을 운영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농식품부는 앞으로 전통주 갤러리와 찾아가는 양조장, 철도, 공항, 면세점 등을 관광자원과 연결해 전통주를 ‘K-미식 여행’의 핵심 콘텐츠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술 한 병보다 그 술이 태어난 장소를 기억하는 여행

한국의 양조장 여행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술의 맛뿐 아니라 술이 만들어진 장소와 사람, 시간을 함께 보여준다는 데 있다. 마트에서 구입한 막걸리는 하나의 제품으로 보이지만, 양조장에서는 지역의 쌀을 씻고 찌는 과정부터 누룩을 섞어 발효시키고 술을 거르는 과정까지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오래된 술독과 발효실, 지역에서 재배한 쌀과 과일,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제조법을 직접 확인하면 전통주는 더 이상 단순히 식사에 곁들이는 음료가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지역의 역사를 담은 문화로 다가온다.

한복을 입고 궁궐을 걷거나 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보는 것이 한국을 경험하는 방법이라면, 양조장에서 누룩 향을 맡고 발효 중인 술을 살펴보는 것도 한국의 오래된 미식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여행 방식이 될 수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음 목적지는 유명한 카페나 전망대가 아니라, 쌀과 누룩이 천천히 술로 익어가는 지역의 작은 양조장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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