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대신 한국 가방 산다”…외국인이 찾는 K패션 잡화 브랜드

서울 성수동과 한남동의 패션 매장을 걷다 보면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어 보고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휴대전화 화면 속 제품과 매장에 진열된 가방을 비교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과거 외국인의 한국 쇼핑이 면세점에서 구입하는 해외 명품이나 화장품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한국 젊은 세대가 실제로 사용하는 가방과 모자, 안경 같은 패션 잡화까지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 잘 알려진 명품 로고가 없는 대신 한국에서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남길 수 있고, 의류보다 사이즈 선택이 자유로워 짧은 여행 중에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K패션 잡화의 강점으로 꼽힌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가방을 손에 든 모습. / 셔터스톡

다만 외국인이 명품백을 더 이상 사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2026년 상반기 국내 주요 백화점의 외국인 매출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으며, 원화 가치와 관광객 증가 등의 영향으로 명품 소비도 이어지고 있다. 달라진 점은 외국인의 장바구니가 명품 하나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중가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넓어졌다는 데 있다.

성수에서 발견하고 명동에서 구매한다

외국인의 K패션 소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롯데멤버스가 발표한 ‘외국인 관광객 소비 트렌드 리포트’에서도 확인된다. 롯데멤버스는 2025년 4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엘포인트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 관광객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브랜드 정보를 얻고 성수동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한 뒤 명동이나 백화점에서 실제 구매하는 흐름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에서 외국인이 많이 구매한 상위 15개 브랜드 가운데 약 27%는 성수동에서 인기가 높은 국내 패션 브랜드였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구매를 조사한 통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특정 유통 채널에서는 해외 명품과 대형 글로벌 브랜드만 찾던 소비 방식이 국내 브랜드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수동이 새로운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발견의 공간’이 된 데에는 팝업스토어와 플래그십 매장이 큰 역할을 한다. 관광객은 한 매장만을 찾아가는 대신 골목을 걸으며 여러 브랜드와 카페, 전시 공간을 함께 둘러보고, 매장에서 본 제품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거나 가격과 해외 배송 가능 여부를 검색한다.

명동과 백화점은 여러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결제와 면세 절차를 비교적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는 구매 공간으로 기능한다. 외국인의 K패션 쇼핑이 ‘유명 브랜드를 미리 정해 방문하는 방식’에서 ‘서울을 여행하며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한 여성이 패션 매장에서 빨간색 가방을 살펴보고 있다. / 셔터스톡

옷보다 가방이 먼저 해외로 나가는 이유

가방과 모자, 안경 같은 잡화는 의류보다 해외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쉽다. 옷은 국가마다 체형과 사이즈 기준이 다르고 계절의 영향도 크게 받지만, 가방은 사이즈에 대한 부담이 적고 여행이 끝난 뒤에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디자인을 통해 한국 패션의 분위기를 보여주면서도 한복이나 전통 공예품처럼 한국적인 상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제품에 한글이나 전통 문양이 없어도 서울의 매장에서 직접 골랐다는 경험을 통해 이를 한국 여행의 기념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2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는 한국 문화 콘텐츠를 접한 뒤 1년 안에 한국 패션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66.2%로 집계됐다. 한국 패션에 호감을 느끼는 이유로는 디자인과 스타일이 좋다는 응답이 42.1%로 가장 많았고, 품질이 우수하다는 응답이 30.8%로 뒤를 이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를 인용한 업계 보도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방한 외국인의 관광 지출에서 쇼핑이 차지한 비중은 51%였으며, 패션 소비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23.4%, 액세서리 소비는 약 33% 증가했다. 화장품과 식품에서 시작된 외국인의 K브랜드 소비가 패션과 잡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흐름을 뒷받침하는 수치다.

베이지색 정장 차림의 여성이 갈색 숄더백을 들고 있다. / 셔터스톡

해외 패션 매체가 주목한 한국 가방 브랜드들

한국 가방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국내 관광 상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 패션 매체 패셔니스타는 2025년 오소이와 마지셔우드, 스탠드오일을 소개하며 차세대 ‘잇백’ 브랜드가 한국에서 나올 가능성을 다뤘다.

세 브랜드는 서로 디자인과 소재, 가격대가 다르지만 유럽 명품보다 접근하기 쉬운 중간 가격대와 소셜미디어에서 알아보기 쉬운 형태를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대한 로고를 전면에 배치하기보다 가방의 곡선이나 잠금장치, 비율과 색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제품이 많아, 명품 로고보다 자신의 취향을 보여주고 싶은 젊은 소비자와 연결되기 쉽다.

2018년 시작한 스탠드오일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와 일상적인 활용성을 앞세운 가방을 선보여 왔으며, 운영사 코자는 2025년 58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보다 25.4% 성장한 것으로 보도됐다. 일본과 태국, 홍콩 등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에 플래그십 매장을 열면서 해외 오프라인 유통도 확대했다.

마지셔우드와 오소이 역시 해외 편집숍과 팝업스토어를 통해 미국 소비자와 접점을 넓혀 왔다. 패셔니스타에 따르면 마지셔우드는 뉴욕에서 팝업을 운영하며 현지 고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방을 개발했고, 오소이는 한국 플래그십 매장을 찾는 미국인 방문객과 미국 주문이 늘어난 것을 해외 확장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마뗑킴처럼 의류에서 출발해 가방과 지갑, 모자 등의 잡화로 영역을 넓힌 브랜드도 외국인 소비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회사가 공개한 자료를 인용한 뉴스1 보도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국내 마뗑킴 매장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2% 증가했다. 이는 특정 브랜드가 발표한 자체 매출 자료이므로 전체 K패션 시장의 성장률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국내 매장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관심이 의류와 잡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 브랜드가 모든 외국인 관광객에게 공통으로 인기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매출과 방문객 수치도 각 기업이나 유통사가 집계한 범위 안에서 봐야 한다. 다만 여러 국내 브랜드가 해외 팝업과 현지 매장을 확대하고 해외 패션 매체가 한국 가방을 하나의 독립적인 흐름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밝은 배경 앞에 비슷한 디자인의 갈색 가방 두 개가 놓여 있다. / 셔터스톡

K팝보다 먼저 보이는 ‘일상 패션’

K패션 잡화가 해외 소비자에게 알려지는 과정에서는 광고보다 일상적인 착용 장면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이돌이 공식 무대 의상으로 제품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공항이나 연습실 출근길, 개인 소셜미디어처럼 비교적 자연스러운 장면에서 가방과 모자가 노출되면서 제품 정보가 빠르게 공유된다.

관심을 가진 해외 팬은 브랜드 이름을 검색하고, 한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성수나 한남의 매장을 일정에 추가한다. 과거에는 드라마나 K팝을 통해 한국 패션을 간접적으로 보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서울에 도착해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착용하고 구매하는 데까지 소비 경험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가방은 의류보다 따라 하기 쉬운 아이템이 된다. 연예인과 체형이 다르더라도 같은 가방을 들 수 있고, 평소 입던 옷에 하나만 더해도 한국적인 스타일을 경험했다는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고보다 ‘서울에서 발견한 브랜드’가 중요해졌다

명품 가방은 오랫동안 가격과 로고, 브랜드의 역사로 가치를 증명해 왔다. 반면 최근 성장하는 한국 가방 브랜드는 서울의 특정 동네와 매장, 소셜미디어에서 발견한 과정 자체를 제품의 일부로 만든다.

관광객에게 성수의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매장이나 한남동 골목의 작은 쇼룸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다. 매장에 들어가 제품을 착용하고 사진을 찍으며, 한국의 젊은 소비자가 무엇을 사용하는지 살펴보는 과정까지 하나의 문화 체험이 된다.

외국인이 한국 가방을 찾는 현상은 명품의 인기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여행에서 구매할 수 있는 패션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과거에는 세계 어디에서나 알아볼 수 있는 유명 로고가 중요한 기념품이었다면, 이제는 아직 자국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서울에서 먼저 발견했다는 경험도 가치가 되고 있다.

화장품과 식품으로 시작된 K브랜드 쇼핑이 의류를 거쳐 가방과 모자, 안경 같은 잡화로 확장되면서 외국인의 한국 여행은 관광지를 보는 일뿐 아니라 한국인의 현재 취향을 직접 찾아가는 과정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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