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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 일본 중앙부처가 몰려 있는 이곳에서는 매년 봄 인사철이 되면 승진자 명단이 발표된다. 국가공무원 종합직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관료들에게 과장과 실장 승진은 오랫동안 성공의 상징이었다. 더 큰 권한, 더 넓은 집무실, 더 많은 정책 결정권이 따라왔다. 하지만 최근 가스미가세키에서는 승진 소식을 들은 공무원들이 먼저 계산기를 두드린다. 승진하면 월급이 얼마나 오르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내용의 최근 니혼게이자이 보도는 일본 관료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38세 독신 과장보좌급 공무원이 한 달에 80시간의 근무를 할 경우 연봉은 1295만엔에 달한다 한화로 약 1억2238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이 공무원이 이듬해 실장급으로 승진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연봉이 1125만엔(약 1억633만원)으로 떨어진다. 승진했는데 오히려 170만엔(약 1600만원)이나 줄어든다. 일본 언론이 최근 '연봉 절벽(年収の崖)'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노동환경 개선이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란 말이 나온다. 가스미가세키는 오랫동안 일본 사회에서 가장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현장 가운데 하나였다. 국회가 열리면 각 부처 공무원들은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 자료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질문은 밤늦게 도착했다. 답변은 다음 날 아침까지 만들어야 했다. 장관이 국회에 출석하기 전까지 수십 장 분량의 예상 질의응답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법안 심사가 시작되면 관련 통계와 검토 문서를 밤새 수정하는 일도 반복됐다. 그러나 이들이 일한 시간만큼 수당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스미가세키에서는 오랫동안 '서비스 잔업'이 관행처럼 존재했다. 실제로는 자정까지 일했지만 예산 한도 때문에 일부 시간만 초과근무로 인정되는 일이 흔했다. 각 부처가 잔업 예산을 부서별로 나눠 배정하는 구조였고, 경비 한도와 실제 노동 사이 괴리가 워낙 커 서비스 잔업이 온상처럼 고착됐다. 이른바 '블랙 가스미가세키'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21년이었다. 고노 다로 당시 행정개혁 담당상은 2021년 1월 22일 기자회견에서 "테레워크를 포함해 엄밀히 일한 시간을 전부 기록하고, 잔업 수당을 전액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그는 "야라나이, 야라세나이, 미노가사나이(하지 않고, 하게 두지 않고, 눈감지 않겠다)"를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각 부처는 잔업 시간을 이전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젊은 관료들의 소득이 급증했다.
국회 대응이 많은 부처에서는 월 수십 시간에서 100시간 안팎의 초과근무가 발생했다. 예전에는 기록되지 않았던 노동이 급여로 연결되면서 과장보좌급과 계장급 직원들의 실수령액이 크게 늘어났다. 첫 월급날 소셜미디어에는 "지금까지 3만엔이던 잔업 수당이 30만엔이 됐다"는 글이 잇따랐다.
문제는 관리직은 달랐다는 점이다. 일본 공무원 급여 체계상 과장과 실장 등 관리직은 초과근무수당 대상이 아니다. 실무자 시절에는 야근 수당을 받았지만 승진하는 순간 수당이 사라진다.
예전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부하 직원들도 수당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당이 정상 지급되기 시작하면서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부하 직원이 상사보다 돈을 더 받는 상황이다.
실제 니혼게이자이가 소개한 중앙부처 간부는 실장 승진 후 연봉이 100만엔(약 945만원)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특히 불만이 집중되는 집단은 현재 40~50대인 취업빙하기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일본 장기 불황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취업문은 좁았다. 임금 상승도 제한적이었다.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중앙부처에 남았지만 정작 초과근무수당 정상화의 혜택은 후배들이 가져가고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내각부의 한 간부는 이번 상황을 두고 "또 빙하기 세대가 독박을 쓰게 됐다"는 취지로 반응했다.

일본 정부도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인사원(공무원 인사에 관란 사무를 담당하는 내각총리대신 직속기관)은 지난해 8월 인사원 권고를 통해 본부성업무조정수당 지급 범위를 확대했다. 기존에는 주로 과장보좌급 이하 직원이 대상이었지만, 개정으로 본부성 간부·관리직원에게도 월 5만1800엔(약 49만원)을 지급하게 됐다. 아울러 50세 본부성 과장에게는 연간 약 100만엔을 증액하고, 초임급(수당 포함)도 30만엔(약 283만원)대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현장에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봉이 100만엔에서 170만엔씩 줄어드는 사례를 생각하면 손실을 모두 메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관리직이 되면 업무 부담은 오히려 늘어난다. 실무를 직접 처리하는 대신 부서 전체를 관리해야 하고, 국회 대응과 대외 조정 책임도 커진다. 인사 평가와 예산 관리도 맡아야 한다. 책임은 늘고 보상은 줄어드는 구조다. 가스미가세키 내부에서 최근 "관리직은 벌칙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정부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다. 승진 기피 현상이다. 이미 가스미가세키의 인재 유출은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해 봄 국가공무원 종합직 시험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11.6% 줄어든 1만2028명이다. 현행 시험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채용 후 10년 미만에 퇴직한 종합직 공무원도 2022년도에 177명으로 현행 제도 이후 최다였다. 2014년도에 채용된 종합직 공무원 약 600명 가운데 23%가 10년 안에 퇴직했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민간기업들이 임금을 빠르게 올리는 가운데 국가공무원 지원자는 과거보다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승진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인식까지 확산되면 중견 인력의 이탈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가스미가세키에서는 승진장이 곧 축하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수백만엔 규모의 연봉 감소 통지서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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