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다시 열렸지만…600척 유조선 발목 잡은 뜻밖의 변수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가려던 유조선들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장기간 바다 위에 묶여 있는 동안 선체 바닥에 따개비와 홍합, 해조류가 달라붙으면서 정상 운항을 위해 대대적인 청소 작업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유조선 자료 사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미 CNN 방송은 24일 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페르시아만에 정박해 있던 대형 유조선들이 선체에 붙은 해양 생물 때문에 운항 재개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면서 원유 수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선박 하부 청소라는 또 다른 병목이 생긴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의 핵심 통로다. 이 해협을 지나는 에너지 물량이 워낙 큰 만큼 통항 차질은 국제 유가와 운송비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 최근 해협 재개방 움직임으로 선박들이 다시 항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수개월 동안 따뜻한 페르시아만 해역에 멈춰 있던 선박들은 바로 출항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유조선 붙잡은 뜻밖의 복병

문제의 핵심은 선체에 해양 생물이 달라붙는 ‘생물오손’ 현상이다. 생물오손은 따개비와 홍합, 조개, 해조류, 미생물막 등이 선체 표면이나 프로펠러, 흡입구에 달라붙어 쌓이는 현상을 말한다. 선박이 계속 움직일 때보다 한곳에 오래 정박해 있을 때 더 빠르게 진행된다. 특히 페르시아만처럼 수온이 높고 햇빛이 강한 해역에서는 해양 생물이 선체에 달라붙고 자라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따개비는 바위나 선박 표면에 단단히 붙어 사는 갑각류다. 겉보기에는 작고 단순한 생물처럼 보이지만 선박에는 골칫거리다. 한번 붙으면 접착력이 강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무리 지어 선체 표면을 뒤덮는다. 따개비와 해조류가 선체 바닥에 쌓이면 배가 물을 가르고 나아갈 때 저항이 커진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선체 저항이 커지면 같은 속도를 내기 위해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 결국 운항 비용이 늘고 탄소 배출도 증가한다. 프로펠러에 부착물이 심하게 끼면 추진 효율이 떨어지고 진동이나 고장 위험도 커진다. 해수 흡입구가 막힐 경우 냉각 시스템이나 기관 운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단순히 보기 흉한 오염이 아니라 선박 안전과 운항 경제성을 동시에 흔드는 문제다.

CNN은 대형 유조선 한 척의 선체 하부 청소 면적이 약 1만 4000㎡에 달한다고 전했다. 축구장 2개에 가까운 넓이다. 초대형 유조선은 길이가 300m를 넘고 폭도 40m 이상인 경우가 많아, 바닥 전체와 프로펠러 주변을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청소 작업은 주로 잠수부들이 맡는다. 5~6명으로 구성된 작업팀이 선박 아래로 들어가 손 긁개와 고압 세척 장비를 사용해 따개비와 해조류를 떼어낸다. 선박 한 척을 처리하는 데만 4~5시간이 걸릴 수 있다. 부착 정도가 심하거나 프로펠러 쪽에 생물이 깊게 끼어 있으면 일부 부품을 분리해 청소한 뒤 다시 설치해야 할 수도 있다.

600여 척 몰리며 청소 병목

글로벌 선박 위치 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에 표시된 25일 낮 12시 기준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 운항 상황. / 마린트래픽 캡처

문제는 청소해야 할 선박이 한두 척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운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장기간 묶여 있던 선박이 수백 척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CNN은 정박 중인 유조선이 600여 척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들 선박이 한꺼번에 운항 재개를 준비하면서 선체 청소 수요가 급증했다.

해저 작업 인력과 장비는 제한돼 있다. 잠수부와 전문 세척 업체가 모든 선박을 단기간에 처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유조선들이 해협 통과 허가나 보험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실제 출항은 줄줄이 늦어질 수 있다. 군사적 봉쇄가 풀려도 물리적인 선박 정비가 끝나지 않으면 원유 수송은 곧바로 정상화되지 않는다.

청소 비용도 뛰고 있다. 선박 하부 청소 서비스 수요가 몰리면서 관련 비용이 선박당 수만 달러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조선 운항사 입장에서는 통항 지연으로 이미 손실이 큰 상황에서 추가 정비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생물 부착은 항만 입항 과정에서도 문제가 된다. 선체에 붙은 생물 중에는 다른 지역 생태계에 해를 줄 수 있는 외래종이 섞여 있을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도 선박의 생물 부착이 침입성 수생 생물 확산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지침을 마련해 왔다. 일부 항만은 선체 오염 상태가 심한 선박에 대해 입항 전 세척이나 검사를 요구할 수 있다.

선체 코팅 손상도 변수다. 대형 선박은 따개비가 달라붙는 것을 줄이기 위해 특수 방오 도료를 바른다. 그러나 장기간 정박과 해양 생물 부착, 반복적인 고압 세척이 이어지면 코팅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코팅이 손상되면 이후 운항 중에도 오염이 더 빨리 진행되고 연료 효율은 더 나빠진다.

호르무즈 정상화, 스위치처럼 안 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가 늦어지는 이유는 따개비만이 아니다. 해협 내 기뢰 제거, 항로 안전 확보, 선박 보험 승인, 임시 통항로 운영, 주변국과의 협의 등 여러 문제가 남아 있다. 일부 선박은 이미 제한적으로 이동을 시작했지만 모든 선박이 전쟁 전처럼 자유롭게 오가는 단계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좁은 수로다. 대형 유조선이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제 항로 폭은 제한적이고, 선박이 한꺼번에 몰리면 충돌 위험도 커진다. 여기에 장기간 정박한 선박들의 선체 상태 점검과 청소가 더해지면서 병목은 더 복잡해졌다.

CNN은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렸다고 해서 석유 시장이 전등 스위치를 켜듯 곧바로 정상화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바닷길은 열렸지만 선박들은 아직 움직일 준비를 끝내지 못했다. 호르무즈의 유조선들은 기뢰와 보험, 항로 문제를 넘어 이제 선체에 달라붙은 따개비까지 떼어내야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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