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임산부 미국 입국 전면 차단 검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뉴스1

미국 연방대법원이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임신한 외국 여성의 입국 자체를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일(현지시각)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 보도에 따르면 전날 대법원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 보좌진과 핵심 지지층을 일컫는 '마가'(MAGA) 세력은 임신한 외국 여성의 입국을 막는 새로운 방안으로 신속하게 방향을 틀었다. 악시오스는 이 방안이 "임신과 여행, 시민권을 둘러싼 새로운 논쟁을 불러올 것이며, 논의의 초점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권리 문제에서 누구를 입국시킬지의 문제로 옮겨 놓을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 바버라' 사건에서 6대 3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지난해 1월 20일 서명한 행정명령을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다수의견을 집필했고, 소니아 소토마요르·엘리나 케이건·에이미 코니 배럿·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이 수정헌법 제14조 위반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헌법이 아니라 연방법 위반이라는 별도 의견을 냈고, 클래런스 토머스·새뮤얼 얼리토·닐 고서치 대법관은 반대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의견에서 "수정헌법 제14조를 만든 이들은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의 약속을 확대했고, 우리는 오늘 그 약속을 지킨다"고 밝혔다. 문제의 행정명령은 부모 가운데 최소 한 명이 미국 시민이거나 영주권자인 경우로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관광·학생·취업 비자로 미국에 머무는 부모나 불법 체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시민권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민정책연구소(MPI)는 이 명령이 시행됐다면 매년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 약 25만5000명이 시민 자격을 잃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하급심이 지난해 1월 서명 직후 잇따라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이 명령은 미국 어디에서도 실제로 시행된 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유감을 표하면서도 헌법 개정 없이 위헌 판정을 받은 자신의 행정명령과 비슷한 효과를 낼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키라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길고 복잡한 헌법 개정은 필요하지 않다"며 "의회가 오늘부터 출생시민권 문제에 착수해야 한다"고 적었다. 다만 다수의견이 수정헌법 제14조 자체를 근거로 삼은 만큼, 단순 입법으로는 위헌 시비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부의 대응은 곧바로 산모의 입국을 겨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비록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이제 누가 미국에 들어오는지를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시민권을 얻는 만큼 입국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친트럼프 성향의 보수 매체 '페더럴리스트' 창립자 숀 데이비스도 임신한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같은 주장을 폈다. 악시오스는 이런 구상이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 사이에서도 제기됐다고 전했다.

법 집행 차원의 압박도 이미 시작됐다. 미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외국인이 자녀의 미국 시민권을 노리고 입국 목적을 속인 채 들어와 아이를 낳는 이른바 '원정 출산' 사건을 최우선으로 수사해 기소하라고 연방 검찰에 지시했다. 콜린 맥도널드 법무부 차관보는 전 직원에게 보낸 메모에서 이런 행위를 비자 사기, 자금 세탁, 신분 도용, 전신환 사기 등의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는 앞서 4월 수사 인력을 투입하는 '출산 관광 이니셔티브'를 가동했다.

하지만 외국인 임신부의 입국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을 두고는 비판이 나온다. 케이티 오코너 미 전국여성법률센터 연방 낙태정책 선임국장은 악시오스에 "누가 임신했는지, 임신 상태가 어떤지에 관한 데이터가 연방 정부, 나아가 주(州) 정부로 넘어갈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위험한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오코너 선임국장은 "입국 심사에서 단순히 임신 여부를 묻는 수준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이 행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원정 출산의 실제 규모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미 행정부는 외국인 방문객이 낳은 아기 수를 따로 집계하지 않지만, 외부 추정치는 연간 2만~2만6000명 수준이다. 악시오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가 360만명이라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통계를 인용해 출산 관광이 상대적으로 드문 사례라고 전했다.

악시오스는 아울러 북중미 월드컵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미국 축구대표팀의 핵심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 등 여러 선수가 출생시민권이 없었다면 미국 대표로 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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