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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민사 재판 판결에 따라 피해자인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80억 원대의 배상금을 전액 지급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법원 기록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23년 패소한 민사소송 배상금 500만 달러와 지연이자를 합산한 총 562만 달러(약 84 원)를 캐럴 측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배상금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절차로 인해 법원에 임시 예치돼 있었으나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 측의 상고 요청을 기각함에 따라 캐럴 측으로 지급이 완료됐다. 당초 연방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구체적인 사유나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해당 분쟁은 캐럴이 1990년대 중반 뉴욕 맨해튼의 고급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 탈의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2023년 5월 1심 배심원단은 성폭행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보면서도 성추행 사실은 명백히 인정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500만 달러의 배상 책임을 지게 했다. 이후 항소심 법원 역시 이러한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송 과정 내내 캐럴을 전혀 알지 못하며 피해 주장 자체가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정면 대응해왔다. 대법원의 최종 기각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해당 사건을 가리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여성이 만들어낸 가짜 사건"이라며 법원의 판결을 거세게 비난했다.
아울러 이를 두고 "사법 체계를 정치적으로 무기화한 공격"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에게 이 같은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뉴욕주가 자신을 표적 삼아 수십 년 전 사건에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특별 한시법을 제정했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과 무관하게 캐럴이 제기한 또 다른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막대한 금액의 지급 판결을 받은 상태다. 뉴욕 법원은 2024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비방 발언이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8천330만 달러(약 1천285억 원)의 위자료 지급을 결정했으며 지난해 9월 항소심 법원도 이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승인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 측은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서도 연방대법원에 상고 신청을 해둔 상태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 사건에서 쟁점이 된 성추행은 한국과 미국의 법체계에서 서로 다른 명칭과 구체적인 법적 기준에 따라 정의되고 규율된다.
먼저 한국 법률 체계에서는 성추행이라는 용어가 실정법에 독립된 범죄명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대신 형법 제298조에 규정된 '강제추행'이라는 죄명으로 기소와 처벌이 이뤄진다. 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해 사람에 대해 추행을 저지르는 죄다. 여기서 과거 대법원 판례는 강제추행이 성립하기 위해 행해진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만 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의 항거 곤란 기준을 공식 폐기하며 판단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새로운 판례 기준에 따르면 피해자의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이 행사되거나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수준의 해악이 고지됐다면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인정한다. 이는 단순한 물리력 접촉이나 기습적인 신체 접촉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언어적인 성적 비하나 불쾌감을 주는 행위는 형법상 처벌 대상인 추행과는 별개로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행정 제재나 민사상 배상 책임의 대상이 되는 '성희롱'으로 분류된다. 또한 신체적 접촉이라 하더라도 업무상 지위나 권력 관계를 악용한 경우에는 일반 강제추행보다 가중 처벌을 받도록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별도 규율해 다스린다.
반면 미국의 경우 단일한 형법 체계를 지닌 한국과 달리 각 주 마다 독자적인 형사법 및 민사법 체계를 운영하고 있어 성추행의 정의와 처벌 방식이 보다 다층적이다. 미국 법률에서 한국의 성추행에 부합하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성적 접촉(Sexual Contact)', '성적 학대(Sexual Abuse)', '성적 배터리(Sexual Battery)' 등의 명칭으로 분류된다. 구체적으로 신체적 침입이 없는 비동의적 성적 신체 접촉이나 추행은 각 주법에 따라 성적 배터리나 성적 학대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는다.
더불어 미국 법체계의 특징은 형사 기소와 별개로 피해자가 민사 불법행위 소송을 제기해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적 구제 제도가 매우 활성화돼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미 양국 모두 비동의 성적 접촉을 불법으로 엄단한다는 핵심적 가치는 동일하지만 한국은 형법상 구성요건의 판례 변경을 통해 피해자 보호망을 촘촘히 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고 미국은 주별로 세분화된 법제와 형사 및 민사를 엄격히 분리해 징벌적 배상 제도로 피해를 구제하는 사법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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