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에게 레드카드 꺼냈던 심판…돌연 은퇴 선언하며 한 말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파울루 벤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퇴장을 명령했던 잉글랜드 출신 심판 앤서니 테일러가 20년간 잡아온 휘슬을 내려놓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른 경기 종료 선언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다가 레드카드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테일러는 22일(한국시간) 은퇴 성명을 내고 심판 생활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16강전이 통산 831번째이자 마지막 경기가 됐다.

그는 “최고 수준의 경기에서 심판을 맡은 것은 큰 영광이었다”며 “그러나 압박은 거셌고 끊임없이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함께한 부심과 동료 심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심판 생활로 인한 희생을 묵묵히 감내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교도관 출신인 테일러는 2006년 프로 심판으로 첫발을 뗐다. 2010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심판으로 승격한 뒤 16시즌 동안 432경기를 맡았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그가 주관한 경기는 668경기에 달한다.

2015년 리그컵 결승과 커뮤니티 실드를 비롯해 2017년과 2020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결승 등 주요 경기에서도 휘슬을 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심판으로는 14년간 활동하며 국가대표팀 간 경기 163경기를 진행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유로 2020과 유로 2024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도 참가했다.

벤투 감독과 손흥민에게 꺼낸 레드카드

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 마지막 코너킥 상황에 종료 휘슬을 분 앤서니 테일러 주심에게 벤투 감독이 강력히 항의하자 레드카트를 꺼내고 있다. / 뉴스1

테일러는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심판이다. 그는 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과 가나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주심을 맡았다.

당시 한국은 2-3으로 뒤진 채 후반 추가시간 막판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국의 슈팅이 가나 수비수를 맞고 골라인 밖으로 나가 코너킥이 예상됐지만 테일러는 곧바로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한국 선수들과 코치진이 강하게 항의했으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테일러는 항의를 이어가던 벤투 감독에게 레드카드를 꺼냈다. 이로 인해 벤투 감독은 조별리그 최종전인 포르투갈전을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한국은 포르투갈을 2-1로 꺾고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

테일러는 EPL에서도 손흥민과 악연을 맺었다. 2019년 12월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상대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와 충돌하자 비디오판독(VAR)을 거쳐 퇴장을 명령했다. 토트넘은 징계가 과하다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리뉴와 충돌…에릭센 살린 신속한 판단

주요 경기를 자주 맡았던 만큼 판정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2022-2023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서는 AS로마와 세비야의 경기를 진행했다. 승부차기 끝에 패한 AS로마의 조제 무리뉴 감독은 테일러의 판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뒤 주차장에서 테일러를 기다렸다가 막아 세운 뒤 폭언을 퍼부으며 판정을 따졌다. UEFA는 이후 무리뉴 감독에게 유럽대항전 4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반면 위기 상황에서 내린 신속한 판단으로 호평받기도 했다. 유로 2020 덴마크와 핀란드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덴마크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즉시 경기를 중단했다.

의료진은 곧바로 그라운드에 들어가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테일러는 덴마크 선수들이 에릭센 주변을 둘러싸 외부 시선을 차단할 수 있도록 현장을 정리했다. 빠른 경기 중단과 대응은 에릭센이 제때 치료받는 데 도움을 준 모범적인 판단으로 평가받았다.

잉글랜드 프로심판기구(PGMOL)의 하워드 웹 최고심판책임자는 테일러가 오랜 기간 국내외 축구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큰 경기에서 보여준 전문성과 후배 심판들을 지원한 자세가 축구계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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