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대역전극 펼치며 당선 확정… 브라질 첫 4선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1차 투표 2위의 열세를 결선에서 뒤집고 네 번째 임기를 확정했다. 1985년 군사독재가 끝난 이후 1차 투표에서 2위에 그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룰라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자유당(PL) 상원의원을 꺾었다. 브라질 고등선거법원(TSE) 집계에서 개표율 99.83% 기준 룰라 대통령의 득표율은 51.76%(6411만7109표)였다. 보우소나루 의원은 48.24%(5975만5615표)를 얻었다. 개표가 끝났을 때 두 후보의 표차는 약 440만표였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7월 27일(현지시각) 브라질 대통령관저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 뉴스1

지난 4일 1차 투표에선 보우소나루 의원이 47.03%(5610만4503표), 룰라 대통령이 45.16%(5387만9538표)를 기록했다. 당시 표차는 약 220만표였다. 룰라 대통령은 결선 레이스를 주요 여론조사에서 약 6%포인트 뒤진 채 시작했다. 막판까지 수치상 열세였지만 개표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개표 과정도 엎치락뒤치락했다. 이날 투표는 오후 5시에 끝날 예정이었다. 크리스치아누 자닌 연방대법관은 마감 3분 전 투표 시간을 오후 7시까지 2시간 늘렸다. 룰라 대통령 측은 상파울루와 살바도르의 버스 운행 차질을, 보우소나루 의원 측은 남부 지역의 폭우와 정전을 이유로 각각 연장을 요청했다. 고등선거법원도 이 결정을 받아들였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당선 확정 후 올린 사진. / 룰라 대통령 X

개표는 오후 7시에 시작됐다. 초반에는 룰라 대통령이 앞섰다. 개표율 13.65%를 기록한 오후 7시45분쯤 보우소나루 의원이 역전했다. 룰라 대통령은 개표율 50.12%가 된 오후 8시26분 1만3414표 차로 재역전했다. 이후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기권율은 19.21%로 1차 투표 21.08%보다 낮아졌다.

룰라 대통령은 당선 확정 뒤 앙드레 자노네스 하원의원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한 생중계에서 "이번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은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싸움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어려운 싸움은 브라질 국민의 이익에 맞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표는 상파울루의 한 호텔에서 호잔젤라 다시우바 여사와 함께 지켜봤다.

보우소나루 의원은 타르시지우 지 프레이타스 상파울루 주지사 등 측근들과 함께 선거캠프에서 개표를 지켜봤다. 캠프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보우소나루 의원은 쿠데타 모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가택연금 상태인 부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이어 첫 부자 대통령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는 친트럼프 성향의 우파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거침없이 비판해 온 좌파 현직 대통령의 대결로 치러졌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중남미 곳곳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우파 후보들이 잇따라 집권했다. 하지만 중남미 최대 경제국 브라질은 좌파 정권을 이어가게 됐다. 이에 따라 중남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두 나라인 브라질과 멕시코가 모두 중도좌파 정부를 유지하게 됐다. 룰라 대통령은 유세에서 브라질의 주권을 내세웠다. 보우소나루 의원이 집권하면 미국이 브라질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표일 백악관을 나서며 지지 후보를 묻는 취재진에게 "그 문제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선거전의 핵심 쟁점은 물가와 치안이었다. 보우소나루 의원은 강력한 범죄 대응과 식료품 가격 인하를 앞세웠다. 룰라 정부는 저소득층 현금 지원 제도인 보우사 파밀리아 지급액을 15.04% 인상했다. 자노네스 의원이 1차 투표 다음 날 개설한 왓츠앱 채널 '룰라의 군대'는 구독자가 결선 당일 1100만명에 이를 만큼 지지층 결집에 앞장섰다.

이번 당선으로 룰라 대통령은 직선제로 대통령에 네 번 뽑힌 첫 브라질 정치인이 됐다. 그는 1989년 첫 대선 도전 이후 1989년, 1994년, 1998년에 낙선했다. 이어 2002년, 2006년, 2022년, 2026년에 당선돼 7차례 도전에서 4승 3패를 기록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두 차례 집권했고 2023년 다시 대통령에 올랐다. 부패 혐의로 580일간 수감됐다가 연방대법원이 담당 판사의 편향성을 인정하면서 석방된 이력도 있다.

1945년생인 룰라 대통령은 27일 81세 생일을 맞는다. 새 임기는 내년 1월 5일 시작한다. 그는 미셰우 테메르 전 대통령(취임 당시 75세)이 갖고 있던 기록을 넘어 브라질 역대 최고령으로 취임하는 대통령이 된다. 이번 임기를 마치면 룰라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모두 16년이 된다.

이웃 나라 정상들의 축하도 이어졌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민주주의 만세, 브라질 국민이 승리했다. 룰라 대통령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도 "국민의 안녕을 위해 계속 함께 일하겠다"고 밝혔다.

룰라 대통령의 재선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이어 온 각별한 관계도 계속될 전망이다. 두 정상은 지난해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나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나누며 가까워졌다. 이 대통령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룰라 대통령은 학교를 그만두고 땅콩을 팔고 구두를 닦았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승리를 축하하며 성공적인 임기를 기원한다"는 글을 남겼다.

이재명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7월 27일(현지시각) 브라질 대통령관저에서 열린 양해각서 서명식에 입장하고 있다. / 뉴스1

룰라 대통령은 지난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을 국빈 방문했다. 브라질 대통령의 한국 국빈 방문은 20여년 만이었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2026∼2029년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낸 메시지에서 "어린 노동자의 삶에서 출발해 언제나 한 걸음 앞서 걸어온 당신의 인생과 정치 여정은 나의 여정과 깊이 공명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당신의 진실함과 결단력, 꺾이지 않는 용기로 브라질은 계속 번영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도 했다. 그는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룰라 대통령과의 포옹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27일 답방 형식으로 브라질리아를 국빈 방문했다. 한국 정상의 브라질 국빈 방문은 11년 만이었다. 룰라 대통령은 공동 언론발표에서 "우리 둘은 가난에서 왔다"며 "우리는 둘 다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말했다. 양국은 교육과 산업기술 분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국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무역협정 협상을 가속하기 위한 실무그룹도 꾸렸다. 이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과 엄지와 검지를 엇갈려 하트를 만드는 '손가락 하트'를 함께 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튿날에는 상파울루로 이동해 경제계 인사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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