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입장료가 '9900원'…길 잃어도 마냥 즐거운 '우리나라 최초' 이색 공원

낯선 길 위에서 잠시 길을 잃는 일은 여행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 중 하나다. 제주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과 김녕사굴 사이의 한적한 길목으로 들어서면 이런 기분 좋은 방황을 온전히 허락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사계절 내내 싱그러운 초록빛을 머금은 랠란디(Leylandii) 나무들이 촘촘하게 수벽을 이루는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로공원, '김녕미로공원'이다.

제주 김녕미로공원 전경 / 김녕미로공원 홈페이지

정문을 지나 미로 입구에 서면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나무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인위적인 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가 만들어낸 길은 깊은 숲길을 걷는 듯한 해방감을 주며, 잠시 일상의 소음을 멀리하고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게 한다.

김녕미로공원의 출발점에는 제주를 각별히 아꼈던 한 외국인 학자의 진심이 있다. 제주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미국인 더스틴 교수는 1983년부터 세계적인 미로 디자이너 에드린 피셔와 함께 공원의 밑그림을 그렸다.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국제 전화와 우편을 수없이 주고받으며 약 3년에 걸쳐 설계를 진행했고, 1987년부터는 랠란디 나무 묘목을 직접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8년의 준비 끝에 1995년 문을 연 이곳은,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설립자의 의지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김녕미로공원 / 김녕미로공원 홈페이지

미로를 이루는 랠란디 나무는 상록수 특유의 향을 품고 있어 걷는 내내 상쾌한 분위기를 더한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발 아래 붉은빛이 도는 흙길이 눈에 띄는데, 이는 제주 화산지형의 특징인 천연 화산석 ‘송이’다. 송이길은 공기 정화 등에 도움이 된다고도 알려져 있어, 제주다운 자연의 결을 더 가까이서 체감하게 한다. 나무 향기를 맡으며 붉은 송이길을 밟다 보면 제주의 기운이 차분히 전해지는 듯하다. 설령 길을 잘못 들어 막다른 곳에 다다르더라도, 되돌아오는 과정까지 미로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조급함보다 여유가 앞선다.

이곳의 매력은 단순히 출구를 찾는 재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로 내부에는 제주의 지형과 문화를 상징하는 장치들이 숨어 있어 하나씩 발견하는 즐거움이 크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존은 여행의 기록을 남기기에 충분하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시설도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히 인기다. 또 공원에서 함께 지내는 고양이들 덕분에 ‘고양이들의 천국’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며 교감하는 체험은 소박하지만 따뜻한 추억을 남긴다. 또한 설립자의 나눔 정신을 이어가고자 운영 수익금을 제주대학교를 비롯한 지역사회로 환원하고 있다.

김녕미로공원 입장요금표 / 김녕미로공원 홈페이지

김녕미로공원은 인근 만장굴과 연계해 둘러보기 좋은 위치에 있어 제주 동부권 여행 코스로 함께 묶기 좋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폐장 시간은 5시 50분이다. 다만 계절이나 기상 상황에 따라 마감 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1만 원 이하의 합리적인 입장료 또한 방문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요소다. 누군가에게는 아이와 함께 즐기는 체험형 산책로로, 누군가에게는 연인과 나란히 걷는 고즈넉한 숲길로 남을 김녕미로공원은 오늘도 변함없는 초록빛 수벽 사이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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