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키트리
월요일 아침 전국 대부분 '영하권'...낮 최고기온 10∼16도

위키트리
"열쇠를 어디 뒀더라." "그 사람 이름이 뭐였지." 나이가 들면서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면, 그건 뇌가 늙어서가 아닐 수 있다. 기억력이 나빠지는 진짜 원인이 머릿속이 아닌 뱃속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탠퍼드대 의대와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소재 아크연구소(Arc Institute) 연구진이 나이에 따른 기억력 저하가 뇌 자체의 노화가 아니라, 장내 미생물 변화가 유발하는 염증이 뇌와 장을 연결하는 신경 경로를 손상시킨 결과라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지난 3월 1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주저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생 티모시 콕스(Timothy Cox)이며, 교신저자는 스탠퍼드대 병리학과 크리스토프 타이스(Christoph Thaiss) 교수와 마얀 레비(Maayan Levy) 교수다.
장과 뇌는 '미주신경'이라는 신경 다발로 연결돼 있다. 쉽게 말해 장과 뇌 사이를 잇는 전화선 같은 것이다. 장은 이 전화선을 통해 뇌에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는 이 신호를 받아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연구진은 나이가 들면서 이 전화선이 끊기다시피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문제는 장 속에 사는 세균에서 시작됐다. 사람의 장 안에는 수백 종의 세균이 살고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구성이 바뀐다. 연구진이 쥐 실험을 통해 추적한 결과, 나이 든 쥐일수록 '파라박테로이데스 골드스테이니(Parabacteroides goldsteinii)'라는 세균이 크게 늘어났다. 이 세균이 문제였다.
연구진이 어린 쥐의 장에 이 세균만 집어넣자 멀쩡하던 어린 쥐의 기억력이 나이 든 쥐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반대로 항생제로 이 세균을 없애자 나이 든 쥐의 기억력이 다시 살아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 세균은 장 속에서 특정 지방 성분을 만들어낸다. 이 지방 성분이 장 주변의 면역세포를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고, 그 염증이 장과 뇌를 잇는 미주신경의 신호 전달을 방해한다.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뇌의 기억 중추도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실험에서는 노령 쥐와 어린 쥐를 한 우리에 함께 살게 했더니 배설물 등을 통해 세균이 교환되면서 어린 쥐의 기억력도 나이 든 쥐처럼 나빠졌다. 이는 기억력 저하가 단순한 뇌의 노화가 아니라 장내 세균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과정이 되돌려진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문제의 세균만 골라서 없애는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를 투여해 기억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비만 치료제 오젬픽·위고비와 같은 계열의 약물을 노령 쥐에게 투여했더니, 끊겨 있던 장-뇌 신호가 되살아나면서 기억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으로 미주신경을 자극했을 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요컨대 뇌에 직접 손대지 않고, 장 환경을 바꾸거나 장-뇌 신호를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기억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타이스 교수는 "노화 관련 인지 저하가 장-뇌 소통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이 정도 수준까지 역전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위장관의 조성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기억 형성과 뇌 활동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장은 뇌를 위한 일종의 리모컨"이라고 했다. 레비 교수도 "위장관은 입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장내 환경을 조절하는 것은 뇌 기능을 제어하는 매력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 연구는 동물실험 단계다. 인간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지 확인하려면 추가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현재 이 세균이 실제 사람에게서도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지, 그리고 인지 기능과 연관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간질이나 뇌졸중 치료에 쓰이는 미주신경 자극술을 받은 환자들에서 인지 기능이 향상됐다는 보고가 이미 있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기대에 무게가 실린다.
100세까지 머리가 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50대부터 기억력이 급격히 나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 차이의 열쇠가 뇌가 아닌 장에 있을 수 있다. 기억력 저하를 '뇌의 숙명'으로만 여기던 시각이 흔들리고 있다.

관심 없음
{카테고리}에 관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