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간다는 '산벚꽃·겹벚꽃' 명소…지리산 품에 안긴 고즈넉한 '무료' 사찰

봄이 깊어 가는 4월, 지리산은 유난히 따스한 기운을 머금는다. 도시의 소음이 닿지 않는 깊은 산세 속,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의 한 사찰은 이맘때면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둔 듯 평온한 풍경을 보여준다.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이 감싸안은 이곳에는 도심의 봄꽃 축제와는 결이 다른, 정갈하고 깊이 있는 봄 풍경이 찾아온다.

산벚꽃 핀 벽송사 / 함양군 김용만 제공-뉴스1

벽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그 역사는 신라 말이나 고려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찰 뒤편에 묵묵히 서 있는 보물 제474호 삼층석탑이 그 오랜 세월의 흔적을 전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전하지 않지만, 1520년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이곳은 조선 시대 불교의 맥을 잇는 중요한 도량이었다. 서산대사 휴정 이전에 한국 선맥을 계승한 벽계정심과 부용영관을 비롯해 환성지안, 서룡상민 등 선교를 빛낸 8명의 조사가 이곳에서 정진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순탄치 않았던 민족의 역사도 이 사찰의 기둥마다 새겨져 있다. 1704년 화재로 소실된 뒤 환성지안 대사가 중건했고, 이후 1850년 서룡상민 대사가 다시 중수하며 사찰의 면모를 갖췄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 다시 한번 잿더미로 변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벽송사의 모습은 1960년 원응 구한 스님이 가람을 다시 세우며 일궈낸 소중한 결실이다.

산벚꽃 핀 벽송사 / 함양군 김용만 제공-뉴스1

4월 중순에 접어들면 벽송사는 일 년 중 가장 화사한 모습으로 바뀐다. 경내를 가득 채우는 산벚꽃이 만개하기 때문이다. 가로수로 흔히 보는 왕벚나무와 달리 지리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산벚꽃은 잎과 꽃이 함께 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연분홍빛 꽃송이 사이로 돋아나는 연두색 새잎은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채색화를 떠올리게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꽃잎은 사찰의 기와지붕과 돌계단 위에 내려앉아 봄의 정취를 더한다.

이곳의 산벚꽃은 인위적인 화려함보다 자연 그대로의 수수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이른 아침 산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가운데 만나는 벚꽃길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안긴다. 많은 이들이 이 시기 벽송사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꽃구경 인파에 휩쓸리는 번잡함 대신, 산새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온전히 봄 풍경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은 “지리산의 기운과 분홍빛 꽃그늘이 만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라며 만족감을 전한다.

벽송사 겹벛꽃 / 함양군 김용만 제공-뉴스1

벽송사를 방문했다면 인근의 서암정사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벽송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암정사는 자연 암반에 새겨진 정교한 불상과 조각들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리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인간의 예술혼이 만난 이곳은 벽송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또한 사찰 아래 흐르는 칠선계곡은 지리산 3대 계곡 중 하나로 꼽히며, 맑은 물줄기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산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함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지역의 향토 음식이다. 지리산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산채를 활용한 비빔밥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별미로 꼽힌다. 고사리와 취나물 등 향긋한 나물에 직접 담근 고추장과 참기름을 곁들인 한 끼는 건강하면서도 깊은 맛을 전한다. 또한 함양은 지리산 흑돼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돋보이는 흑돼지 구이는 여행길의 허기를 달래기에 좋다. 2026년 현재 함양군은 지역 특산물인 양파와 산삼을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도 선보이고 있어 기념품으로도 눈길을 끈다.

함양 벽송사 / ⓒ한국관광콘텐츠랩

벽송사는 연중 운영되며,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다. 관람 시간은 일출 시부터 일몰 시까지로 제한되므로 방문 전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천 방면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도보나 택시로 접근할 수 있다. 산사로 향하는 길이 다소 가파를 수 있으나, 길목마다 펼쳐지는 지리산의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연분홍 꽃그늘 아래에 닿게 된다.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벽송사는 올해 봄에도 변함없이 산벚꽃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요란하지 않게 피어나 묵묵히 봄을 전하는 이곳의 꽃들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은 이들에게 차분한 시간을 건넨다. 연분홍 꽃비가 내려앉은 산사의 마당에 서서, 지리산의 봄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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