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명예도 아니었다..” 故 현미가 80살 넘어 깨달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1위

고(故) 현미가 생전에 남긴 말이 뒤늦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2020년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 '생생토크 만약 나라면' 코너에서 현미는 '나이 들수록 ○○가 필요해'라는 주제로 전원주, 배영만, 배강민, 팝핀현준, 박애리, 한기범, 최시중, 김홍신 등과 함께 자리해 삶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故 현미 빈소 '큰 별이 지다' / 뉴스1

이날 현미는 출연진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앉아서 보니 출연진들이 전부 다 내 아들, 딸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살아가면서 뭐 있냐. 서로 배려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고 잘하고, 남편에게 잘하고, 자식을 항상 감싸주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올해 84살이 된다. 나같이 살아오면 모든 게 다 후회되고 그런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자"고 전했다. 덧붙여 "나는 어제를 생각하지 않고 이 순간만 생각하고 산다. 누구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지만 다 잊어버리고 씩씩하고 건강합시다"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무대를 지켜온 국민 가수가 스스로의 삶을 두고 후회가 남는다고 고백한 것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 후회에 붙들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겠다는 태도는 긴 세월을 살아낸 사람만이 꺼낼 수 있는 말이었다. 현미가 이날 방송에서 남긴 말들이 왜 지금도 회자되는지, 그 의미를 하나씩 짚어봤다.

고 현미가 방송에서 삶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 KBS 1TV '아침마당'

3위. 오래 살수록 남는 건 결국 사람이다

현미가 84년의 삶에서 꺼낸 말은 돈도 명예도 아닌 사람이었다. 배려하고, 부모님께 잘하고, 자식을 감싸주는 것. 거창한 말이 아니었지만 그 무게는 달랐다. 호주의 완화 치료 간호사 브로니 웨어는 수년간 임종을 앞둔 환자들 곁에서 일하며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을 기록했고, 이를 엮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피플트리, 2013)을 펴냈다.

책에 따르면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한 후회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살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일을 너무 열심히 했다"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더 많이 일했어야 했다거나 더 많이 벌었어야 했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내가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살았느냐였다.

2위. 잘나가도 후회는 누구에게나 남는다

현미는 수십 년간 무대 위에서 살았다. 1962년 '밤안개'로 이름을 알린 뒤 '내 사랑아', '떠날 때는 말없이' 등 히트곡을 이어가며 '국민 가수'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럼에도 "나같이 살아오면 모든 게 다 후회된다"고 했다. 잘나가는 삶을 살았어도 돌아보면 하지 못한 것들,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들이 남는다는 뜻이었다.

미국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토머스 길로비치 교수는 1994년 학술지 '저널 오브 퍼스낼리티 앤드 소셜 사이콜로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행동한 것보다 행동하지 않은 것을 훨씬 크게 후회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젊을 때는 행동한 것들이 후회로 남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뜻이다. 화려한 삶을 살았든 평범하게 살았든 이 감정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1위. 지나간 것에 머물지 않아야 오늘을 살 수 있다

살다 보면 후회되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그 후회를 오래 붙들수록 지금 이 순간이 사라진다. 현미가 "나는 어제를 생각하지 않고 이 순간만 생각하고 산다"고 말한 것은 지나간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었다. 후회가 있어도 거기에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매튜 킬링스워스 박사팀은 2010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 '방황하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A Wandering Mind Is an Unhappy Mind)'에서 사람들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할수록 행복감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지난 일을 되새기거나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데 시간을 쓸수록 지금 이 순간이 흐려진다는 뜻이다.

현미가 "누구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지만 다 잊어버리고 씩씩하고 건강합시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84년을 살아오며 터득한 방식은 결국 지나간 것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가수 현미가 지난 2017년 경북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에서 열린 '청춘음악극 그시절 그노래' 무대에 올라 '서울야곡'과 '밤안개'를 열창하고 있다. / 뉴스1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난 현미는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고,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이어간 현미는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가수의 길을 걸었고, 1962년 '밤안개'를 발표하며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후 '내 사랑아', '떠날 때는 말없이', '보고 싶은 얼굴', '무작정 좋았어요', '애인', '몽땅 내 사랑', '바람', '왜 사느냐고 묻거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현미의 자녀로는 유명 작곡가 고 이봉조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영곤 씨와 이영준 씨가 있다. 첫째 아들 이영곤 씨는 '고니'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한 적이 있으며, 둘째 아들 이영준 씨는 미국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가수 원준희의 남편이기도 하다. 또한 가수 노사연이 현미의 조카다.

고 현미(본명 김명선)는 2023년 4월 4일 오전 9시 4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팬클럽 회장이 곧장 경찰에 신고해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 판정을 받아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향년 85세. 지난 4일 사망 3주기를 맞았다. 생전에 무대 위에서도, 카메라 앞에서도 늘 씩씩했던 현미가 남긴 말들이 3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 이 글은 위키트리 지식·교양 창작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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