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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찜을 시켜놓고 젓가락으로 뒤지다 보면 어느 순간 만나는 그 녀석. 툭 건드렸다가 국물이 홱 튀어서 셔츠를 버린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 미더덕이다. 아귀찜 속 조연 같지만 실은 그 요리의 국물 맛을 좌우하는 숨은 주인공. 그 미더덕이 올봄 풍년을 맞았다. 창원 진동만 양식장에선 그물망이 올라올 때마다 미더덕이 빼곡히 쏟아지고 있다. 어장 환경이 개선되면서 수확량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고 상태도 좋다. 생산자들은 내년엔 더 늘어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다만 문제가 있다. KNN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시큰둥하다고 한다. 수확은 넘쳐나는데 소비가 따라붙지 못하면서 양식 어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건 소비자에게 기회다. 풍년에 가격은 낮아지고, 품질은 한창 좋은 제철이다. 봄의 미더덕, 지금 아니면 언제 먹겠나.
세계에서 한국인만 먹는 것으로 유명한 식재료인 미더덕이라는 이름은 물의 옛말인 '미'와 '더덕'이 합쳐진 것으로, 물에서 나는 더덕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생김새가 더덕을 닮았고, 껍질을 벗겨 먹는다는 점도 비슷하다. 강새해초목 미더덕과에 속하는 피낭동물로, 손가락만 한 몸통에 자루가 달려 있으며 이 자루로 바위나 그물 등에 달라붙어 산다. 남해안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특히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생산된 진동 미더덕은 지리적 표시제 수산물로 등록돼 있을 만큼 지역 명물이다.
미더덕의 가장 큰 특징은 '신티올'이라는 불포화 알코올 성분에서 나오는 독특한 향이다. 씹으면 톡 터지며 퍼지는 시원하고 향긋한 바다 내음은 해물탕이나 아구찜 국물에 들어갔을 때 요리 전체를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멍게처럼 쓴맛이 없고 달콤 쌉쌀한 편이라 해산물 요리 입문자에게도 비교적 친근하다. 제철은 3월에서 5월 사이로, 지금이 딱 한창이다. 봄에 살이 오르고 영양도 최고조에 달하며 불포화지방산인 EPA와 DHA가 풍부해 동맥경화와 고혈압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칼로리가 낮고 엽산, 비타민 C·E, 철분, 타우린, 아스파라긴산 등 각종 영양소도 가득하다.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한 미더덕이 실은 미더덕이 아닐 수 있다. 식당에서 먹은 미더덕찜의 그 녀석도 따지고 보면 오만둥이였을 가능성이 꽤 있다. 미더덕과 오만둥이는 외형도 비슷하고 요리해서 나오면 더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학교 급식에서도 비싼 미더덕 대신 오만둥이를 미더덕이라고 표기해 쓴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 정도다.
오만둥이의 정식 명칭은 '주름미더덕'이다. 이름의 유래는 재미있다. '오만 곳에 붙어서 산다'고 해서 오만둥이, 오만득이, 만디, 만득이 등 지방마다 다양하게 불린다.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루를 보는 것이다. 미더덕은 긴 타원형에 한쪽 끝에 자루가 달려 있고 대부분 겉껍질을 벗겨낸 황갈색의 매끈한 상태로 유통된다. 오만둥이는 자루가 없고 원형에 가까운 울퉁불퉁한 모양에 표면이 오돌토돌한 돌기로 덮여 있다. 한마디로 매끈하면 미더덕, 오돌오돌하면 오만둥이다.
맛의 차이도 분명하다. 미더덕은 향이 훨씬 강하고 속에 체액이 많아 톡 터지는 맛이 일품이다. 오만둥이는 체액이 적어 향과 맛이 미더덕보다 약하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오도독한 씹는 식감이 좋아 찜이나 해물탕에 많이 쓰인다. 오만둥이라고 무조건 하위호환은 아니다. 그냥 맛 자체가 다른 별개의 식재료로 보는 것이 맞다. 제철도 다르다. 미더덕은 봄(3~5월), 오만둥이는 가을·겨울(9~12월)이 주 생산 시기다. 오만둥이는 양식이 까다롭지 않아 사실상 연중 구할 수 있다.
미더덕 요리에서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게 손질이다. 그냥 넣었다가 짠맛이 요리 전체를 망치거나, 먹다가 뜨거운 체액이 홱 튀어 당황한 경험이 있다면 손질을 제대로 안 한 것이다.
미더덕 손질은 간단하다. 칼로 껍질 한쪽을 살짝 갈라 내장과 뻘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가볍게 씻어주면 끝이다. 찌개나 탕에 넣을 때는 이렇게 속을 빼내고 쓰는 것이 짠맛을 잡는 방법이다. 다만 그 톡 터지는 느낌을 즐기는 쪽이라면 내장만 살짝 빼내고 껍질째 사용해도 된다. 뜨거운 요리에 미더덕을 통째로 넣으면 속의 체액이 천천히 식어 화상 위험이 있으니 씹을 때 주의해야 한다. 앞사람에게 국물이 튀는 불상사도 조심할 것. 오만둥이 손질은 더 간단하다. 소금을 넉넉히 뿌리고 박박 문지르거나 솔로 껍질의 이물질을 씻어낸 뒤 맑은 물로 서너 번 헹궈주면 된다.
좋은 미더덕을 고르는 기준은 황갈색이 선명하고 크기는 작아도 몸통이 통통하며 향이 강한 것이다. 오만둥이는 껍질이 단단하고 탄력이 있으면서 알이 굵고 크기가 큰 것을 고르면 된다.
미더덕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게 쓸 수 있다. 해물탕이나 아구찜에 넣는 것만 알고 있다면 절반만 아는 셈이다.
미더덕 된장찌개는 남해안 사람들에게 된장찌개의 기본이나 다름없다. 멸치나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어 끓이다가 애호박·양파·두부를 넣고 거의 다 익을 때쯤 손질한 미더덕을 넣는다. 마지막에 청양고추와 대파를 넣고 한소끔 끓여내면 완성이다. 미더덕의 시원한 향이 된장의 구수함과 어우러지면서 국물 맛이 한 단계 올라간다.
미더덕찜은 마산·창원 지역의 대표 향토 요리다. 콩나물을 깔고 손질한 미더덕, 조개류, 버섯 등을 올린 뒤 고춧가루·간장·다진 마늘·생강·맛술로 만든 양념을 끼얹어 센불에 볶듯이 끓이다가 뚜껑을 닫고 쪄준다. 5분 정도 쪄낸 뒤 참기름과 통깨로 마무리하면 된다. 매콤한 양념과 미더덕 특유의 향이 어우러지는 조합이 일품이다.
미더덕 비빔밥은 마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짜 향토 음식이다. 신선한 생 미더덕을 다져서 밥 위에 올리고, 채소와 날치알 등을 곁들여 비벼 먹는다. 고추장이나 간장을 따로 넣지 않고 미더덕의 짭조름하고 향긋한 체액만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 특징이다. 미더덕 선도가 생명인 요리인 만큼 산지에서 당일 수확한 것을 쓰는 것이 원칙이다.
미더덕 무침은 가장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손질한 미더덕에 고추장·식초·설탕·다진 마늘·참기름을 넣어 버무리면 밥 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훌륭하다. 젓갈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경상도 마트 반찬 코너에서 간혹 보이는 미더덕 젓갈은 감칠맛이 상당하다는 평이다.
창원 진동만의 미더덕 어민들은 올봄 풍년에도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KNN 보도에 따르면 수확량은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지만 소비가 따라붙지 않아 판매량이 줄었다. 손질이 까다롭고 특유의 맛과 향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 탓이다. 멍게나 피조개 같은 다른 남해안 수산물도 비슷한 처지다. 지역 축제가 줄고 홍보 창구도 좁아지면서 판로 확보 자체가 힘들어졌다.
기후 위기의 영향도 변수다. 수온 상승과 함께 빈산소수괴 현상이 겹치면서 대량 폐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장기적으로 국내 해역에서 미더덕 양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문가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는 어장 환경이 일시적으로 회복된 덕에 풍년을 맞았지만, 이런 호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어렵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금이 절호의 타이밍이다. 풍년에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낮아진다. 제철인 봄에 살이 통통히 올라 품질은 최고다. 구하기는 쉽고, 값은 착하고, 맛은 정점이다. 아귀찜 속 조연으로만 알았던 미더덕을 올봄에는 주인공으로 불러내 볼 만하다. 된장찌개에 한 줌 넣는 것만으로도 국물이 확 달라진다. 진동만 어민들의 시름을 덜어줄 방법이 있다면, 이번 주말 미더덕 된장찌개 한 냄비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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