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만 점' 유물 품었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뜻밖의 '국내 명소'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꼿꼿하게 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집이 있다. 화려한 단청이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 않아도 현대인들의 복잡한 마음을 단숨에 가라앉히는 고즈넉한 기운이 전해지는 이곳은 어디일까?

학남고택.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안동 선비 숨결 담은 학남고택

바로 퇴계 이황 선생의 10대손인 학남 이재건 선생이 거처하던 학남고택이다. 조선 후기인 175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이 가옥은 영남 남인의 학문적 자부심과 검소한 생활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학남고택은 퇴계의 학맥을 잇는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며 학문을 닦고 손님을 맞이한 공간이다. 특히 안동의 수많은 고택 중에서도 그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남(鶴南)이라는 당호는 '학이 남쪽으로 날아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실제 집 뒤편의 산세가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을 하고 있다는 지리적 특징에서 유래했다.

학남고택은 이름에 걸맞게 안동 예안의 선비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로서 지금까지도 이씨 문중의 종택과 같은 엄숙함과 고결함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학남고택.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6일 국가유산청은 안동 학남고택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또 유산청은 문중에 전해 내려온 고서와 고문서, 서화류 등 총 1만360점의 유물 가운데, 학남의 아들 김두흠과 김두흠의 손자 김병황, 김병황의 아들 김정섭 등이 남긴 일기들은 19세기 안동의 선비문화가 변모하는 과정과 풍산김씨 가문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김정섭과 김이섭, 김응섭 형제는 풍산읍 오미마을의 근대화와 항일투쟁·구국 활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들로, 상해 임시정부 법무장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응섭의 ‘칠십칠년회고록’은 일제강점기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로 평가된다.

아울러 국가유산청은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울 금성당 무신도'를 를 지정 예고했다. ‘서울 금성당 무신도’는 나주 금성산의 산신 금성대왕과 조선 세종 임금의 6남인 금성대군을 함께 모신 굿당인 ‘서울 금성당’ 내부에 봉안된 종교화다.

고택 건립 배경

고택의 건립 배경에는 안동 지역의 독특한 가문 문화가 서려 있다. 당시 선비들은 벼슬길에 나가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근거지를 지키며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고, 학남고택은 그러한 유교적 가치관이 물리적 공간으로 형상화된 결과물로 알려졌다.

2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과 근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가문을 지키고자 했던 후손들의 정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영남 가옥의 전형, ㅁ자형 구조

학남고택은 전형적인 영남 지방의 양반 가옥 형태인 'ㅁ자형' 평면 구조를 취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나타나는 사랑채와 안채가 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며 감싸 안는 형태를 보인다.

이 형태는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내부 가족들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보호한다. 건물의 기둥 하나, 서들 하나에도 인위적인 가공보다는 나무 본연의 곡선과 질감을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남아있다.

학남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진 'ㅁ'자형이면서도, 방들이 앞뒤로 배치된 겹집 구조를 띠고 있다. 겹집 구조는 방이 두 줄로 겹쳐져 있는 것을 뜻한다. 이는 추운 산간 지역의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안동 지역 건축의 특징이다.

보통 한옥은 방과 마루가 일렬로 배치되는 홑집 구조를 보이며, 방 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나 외부로 연결된다. 반면 겹집 구조는 평면도로 보면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안에 방들이 꽉 들어차 있는 형태다.

학남고택의 백미는 사랑채인 학남정의 누마루다. 이곳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정원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프레임 안에 들어온다. 창문을 열었을 때 자연경관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경의 원리가 극대화된 공간이다. 또 안채는 아늑하면서도 효율적인 동선을 자랑하며, 겨울철 추위를 막기 위한 폐쇄적인 구조와 여름철 통풍을 고려한 대청마루가 공존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고택 곳곳에는 세월이 묻은 목재의 색감이 깊게 배어 있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으며 검게 빛나는 기둥은 권위와 편안함을 동시에 준다. 지붕의 기와 한 장조차도 주변 산세의 능선과 어우러지도록 세심하게 배치됐으며, 마당에 깔린 흙과 돌담의 조화는 한국 건축의 비대칭 균형미를 보여준다.

학남고택으로 가는 길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31-15에 위치한 이곳은 안동 시내에서도 차로 약 30~4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안동역이나 안동터미널에서 도산서원 방향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다만 배차 간격이 길고 고택까지 직접 연결되는 노선이 드물어 가급적 자차를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활용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안동 IC나 서안동 IC를 통해 진출한 뒤, 35번 국도를 따라 봉화·도산 방향으로 이동하면 된다. 강변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달리다 보면 금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인근 명소 1: 도산서원

도산서원.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학남고택 인근에는 한국 유학의 성지로 불리는 도산서원이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선생의 사후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 합쳐진 공간이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한 곳으로, 조선 시대 교육 기관의 원형을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다.

도산서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시사단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조선 시대 지방에서 치러진 특별한 과거 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단(壇)이다. 서원 내부는 전교당, 상덕사, 광명실 등 서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돼 있다.

인근 명소 2: 청량산과 농암종택

농암종택.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학남고택이 위치한 가송마을은 안동과 봉화의 경계에 걸쳐 있는데, 이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청량산 도립공원이 있다. 청량산은 열두 개의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서원을 감싸고 있는 형상을 띤다.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벼운 산행이 가능하며, 정상 부근의 하늘다리에서는 발아래로 펼쳐지는 아찔한 수직 절벽과 굽이치는 낙동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청량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농암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으로, 낙동강 상류의 절벽인 '분강' 위에 세워져 있어 조망이 가히 독보적이다.

본래 도산면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해 지금의 가송마을로 옮겨졌다. 가송마을 주변은 여름철 래프팅 명소로도 이름을 떨치지만, 조용히 사색을 즐기고 싶다면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이 좋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인 독산과 하얀 모래사장은 한 폭의 동양화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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