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펼쳐진 조선의 산수화…숲·강·정자가 조화를 이룬 '명승'

물길이 감싼 예천 내성천 변에는 오래된 정자와 숲, 넓은 모래밭이 함께 있다. '선몽대'는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풍류를 이어온 조선 선비들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정자와 강, 소나무 숲이 맞물린 풍경은 예천 여행의 한 장면을 차분하게 완성한다.

선몽대 일원 풍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신선의 꿈에서 비롯된 정자

경상북도 예천군에 자리한 선몽대는 4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공간이다. 예천읍지에 수록된 기록을 바탕으로 볼 때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 문화와 지역의 학문 전통이 깃든 장소로 평가된다. 정자는 퇴계 이황의 조카이자 기린도 찰방을 지낸 이굉이 1563년에 처음 세웠고, 그의 아들인 우암 이열도가 물려받아 정비를 이어갔다. 우암 이열도는 퇴계 이황의 종손자이기도 하다.

선몽대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상서로운 꿈을 바탕으로 이름을 짓고, 자연 속에서 학문과 수양을 이어가고자 한 선인들의 뜻이 담겨 있다. 정자는 내성천의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 위에 놓였다. 강의 흐름과 백사장, 숲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다.

선몽대 일원 풍경 / ⓒ한국관광콘텐츠랩

건립 이후 이곳에는 많은 문인이 찾아와 학문을 논하고 시를 지었다. 선몽대는 속세를 벗어나 자연 안에서 마음을 닦고 학문에 힘쓰려 한 유학자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굉과 이열도는 이곳을 중심으로 가문의 학문 전통을 이어갔고, 지역 사회의 문화적 기반을 다지는 데도 역할을 했다. 대를 이어 관리되고 보존된 선몽대는 오늘날 국가 명승으로 보호되고 있다. 소박하고 단아한 정자 건축은 주변 경관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 안에 스며드는 조선시대 건축 미감을 보여준다.

정자의 규모나 장식은 화려함을 앞세우지 않는다. 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몸을 낮추듯 놓인 건축은 주변 숲과 바위, 모래사장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어준다. 이러한 배치는 선비들이 자연을 감상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생활과 학문, 수양의 배경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선몽대의 역사적 무게는 건물 자체보다 그 안팎에 쌓인 사람들의 시간에서 더 선명해진다.

선몽대 대문채 / 국가유산청-공공누리

현판과 시판에 남은 문인의 흔적

선몽대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면에 걸린 현판이다. ‘선몽대’ 세 글자는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 힘이 있으면서도 단정한 필체는 정자의 품격을 더한다. 정자 내부에는 조선시대 석학들이 남긴 시가 목판으로 걸려 있다.

퇴계 이황을 비롯해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있다. 이 목판들은 영남학파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이곳에서 교류하고 자연을 노래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현재 친필 목판의 원본은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되어 있으며, 정자에는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목판이 유지되고 있다.

선몽대 대문채 현판 / 국가유산청-공공누리

한정된 정자 공간 안에 당대 문인들의 사상적 교류와 문학적 성취가 모여 있다는 점도 선몽대의 가치를 높인다.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문인들이 이곳에서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한 일은 영남 지역 유교 문화의 확산과도 맞닿아 있다. 정탁과 류성룡 등이 남긴 시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사대부로서 지녔던 책임 의식도 배어 있다. 선몽대는 문인들이 생각과 학문을 나눈 영남의 문화 거점이자 당시 문학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현장이다.

현판과 시판은 선몽대가 경치를 즐기는 정자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곳은 학문적 인연이 이어지고 문학적 교류가 남은 장소였다. 이름난 인물들의 글씨와 시가 한 공간에 모인 까닭에, 선몽대에서는 건축과 풍경뿐 아니라 조선 지식인 사회의 학문적 교류도 함께 읽힌다.

내성천이 만든 산수의 풍경

선몽대 일원의 풍경은 내성천이 빚은 지형과 맞물려 완성된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평사낙안형 형국으로 불린다. 기러기가 내성천에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쉬는 모양을 뜻한다. 예천에서 안동 방향으로 흐르는 내성천의 맑은 물과 십리에 이른다는 넓은 백사장은 정자,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한국 전통 산수미를 드러낸다.

내성천 / 국가유산청-공공누리

완만한 물줄기는 오랜 시간 고운 모래를 쌓아 올렸고, 그렇게 형성된 백사장은 정자 앞을 부드럽게 감싼다. 바위 언덕 위 정자와 넓은 모래사장, 흐르는 강물이 함께 보이는 풍경에는 자연을 정원의 일부로 받아들인 전통 조경의 감각이 담겨 있다. 인위적인 장식을 앞세우기보다 지형과 물길, 숲의 흐름을 살린 점이 특징이다.

내성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맑은 수질과 고운 모래로 이름난 강이다. 선몽대는 이 강물이 오랜 시간 깎고 다듬은 지형 위에 자리한다. 계절에 따라 물빛과 숲의 색이 달라지며, 넓은 백사장은 햇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낸다. 선몽대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것은 이러한 경관적 가치와 지형적 특성이 함께 반영된 결과다.

이곳의 풍경은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의 인상이 다르다. 정자에 가까이 다가서면 목재와 기와, 현판과 시판의 세부가 눈에 들어오고, 조금 물러서면 강과 숲, 바위 언덕이 한 덩어리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물길과 숲이 시선을 천천히 이끌어 정자에 머무는 시간이 한층 깊어진다. 선몽대가 오래도록 경승지로 여겨진 이유도 이러한 중첩된 경관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을을 지켜온 소나무 숲

정자 뒤편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은 선몽대 풍경을 이루는 또 다른 축이다. 이 숲은 뒤편에 자리한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됐다. 숲을 이루는 소나무들은 수령이 100년에서 200년에 이르는 것으로, 오랜 세월 마을의 방패 역할을 해왔다.

선몽대 숲은 수해방비림이자 방풍림의 기능을 했다. 여름철 홍수와 강한 바람으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지키는 역할이다. 동시에 풍수지리상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물길 등을 막거나 비보하는 수구막이숲, 비보림의 성격도 지닌다. 자연재해를 줄이려는 실용적 목적과 마을의 안녕을 바라는 풍수적 인식이 함께 담긴 숲이다.

선몽대 소나무 숲 / 국가유산청-공공누리

백송리 마을의 선조들은 마을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고 내성천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 자리에 소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세대를 거쳐 관리된 숲은 마을 공동체의 역사와 함께해 온 생태 자산이다. 굽이진 소나무 줄기와 짙은 솔향,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정자 주변에 차분한 분위기를 더한다. 숲은 정자와 내성천, 마을을 이어주는 완충지대로 남아 있다.

선몽대 숲의 의미는 경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을을 보호하려는 현실적 필요와 풍수적 믿음이 한곳에서 만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숲을 지나 정자와 강을 바라보면 선조들이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그 흐름에 맞춰 살아가려 했던 태도가 드러난다.

물길 따라 이어지는 예천 명소

선몽대를 둘러본 뒤에는 내성천과 낙동강 물길을 따라 형성된 예천의 다른 장소로 동선을 이어갈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회룡포다. 회룡포는 선몽대와 같은 내성천 줄기에 자리하며, 강물이 350도 회전하며 육지 속의 섬을 만들어내는 물돌이 지형을 보여준다. 고운 모래사장과 둥글게 감싸는 강줄기는 선몽대와는 다른 산수의 표정을 만든다.

회룡포 / 한국관광공사 (촬영 : 이복현)

내성천과 낙동강, 금천의 세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에는 삼강주막이 있다. 삼강주막은 조선시대 낙동강 유역의 교통 요충지였던 삼강나루터에 세워진 주막이다. 1900년 무렵 건립돼 뱃사공과 보부상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낙동강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막으로, 조선시대 주막의 구조를 간직해 민속학적 가치도 지닌다.

주방 벽면에는 글을 모르는 주모가 막걸리 잔술의 수를 세기 위해 칼로 긁어 표시한 외상 장부 자국이 남아 있다. 이 흔적은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선몽대에서 회룡포, 삼강주막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유교 문화와 서민 문화가 함께 남은 예천의 역사 문화 지도를 이룬다.

예천에서 만나는 향토의 맛

예천의 역사와 자연을 둘러본 뒤에는 지역의 기후와 토양이 길러낸 향토 음식과 특산물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향토 음식으로는 용궁순대가 꼽힌다. 예천군 용궁면 일대에서 유래한 용궁순대는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전통 방식에 따라 만든다. 두툼한 막창을 써 쫄깃한 식감을 살리고, 채소와 선지가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함께 내는 순대국밥은 오래 끓인 사골 육수의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연탄불에 구워 연기 향을 입힌 돼지불고기와 오징어불고기, 석쇠 구이도 용궁순대와 함께 예천을 대표하는 별미로 꼽힌다. 또 다른 향토 음식인 태평추는 메밀묵에 돼지고기, 잘 익은 김치, 김 가루 등을 넣고 국물을 자작하게 끓여낸 음식이다. 메밀의 구수한 맛과 김치의 칼칼함이 어우러져 예천의 향토성을 보여준다.

예천 참기름도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 가운데 하나다. 예천은 배수가 잘되는 사질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을 갖춰 품질 좋은 참깨가 자라기 좋은 조건을 지닌다. 전통 방식으로 짜낸 참기름은 향이 짙고 고소한 맛이 오래간다. 은풍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은풍준시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되던 고유의 곶감이다. 가을에 수확하는 예천 사과는 기온 차가 큰 분지 지형에서 자라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선몽대는 정자 하나에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내성천의 물길, 소나무 숲, 문인의 기록, 마을의 역사까지 함께 읽히는 예천의 문화유산이다. 그 풍경을 따라 이동하면 회룡포와 삼강주막, 지역의 음식과 특산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예천 여행은 물길 위에 쌓인 시간과 사람들의 삶을 차분히 따라가는 여정이 된다. 화려한 장식보다 오래 남은 풍경과 기록이 더 깊게 다가오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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