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
[공식발표] 홍명보호, 16강 진출 시 2억 받는다! 북중미 월드컵 '성과 비례형 체계' 포상금 제도 확정

위키트리
데뷔 58년 차에도 무대를 이어가다가 2024년 은퇴를 선언한 나훈아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오래 정상을 지킨 가수로 꼽힌다.

그런데 팬들이 기억하는 나훈아는 노래만이 아니다. 공연 중간중간 툭 던지는 말들, 인터뷰에서 모난 듯 솔직하게 내뱉는 발언들이 수십 년간 사람들 마음에 박혔다.
특히 2020년 추석 특집 공연 '대한민국 어게인'에서 세월과 나이를 주제로 쏟아낸 발언들은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 광범위하게 회자됐다. 화려한 수식 없이 직선으로 날아오는 그의 말들이 나이 든 세대에게 특별하게 닿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2020년 추석 특집 공연 '대한민국 어게인'에서 나훈아는 무대 위에서 직접 "이왕에 세월이 가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된다.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가야하는데 이렇게 끌고 가려면 안 하던 일을 하셔야 세월이 늦게 간다.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예순 살이 넘은 나이에도 새 앨범을 내고 무대에 서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이 말이 특별히 크게 울린 이유는 나이를 핑계로 스스로를 줄이는 삶에 대한 정면 반박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60대 이후는 암묵적으로 '이미 늦었다'는 시선이 깔려 있다.
엘렌 랭어는 저서 '마음챙김'에서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 자체가 실제로 신체 노화를 가속시킨다"고 밝혔다. '나는 늙었다'는 생각을 반복하는 사람이 그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더 빨리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세월을 끌고 간다는 것은 낭만적 표현이 아니다. 삶의 속도와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나훈아는 긴 커리어 동안 언론 노출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방송 출연도 거절하고 인터뷰도 선택적으로만 응했다. 그 자체가 이 말을 실천하는 삶이었다. 남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보다 스스로 결정한 방식을 끝까지 유지했다.

50대 이후 삶에서 '자기 이름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데이터가 보여준다. 직장 은퇴 이후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는 비율이 60대 남성에서 특히 높게 나타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1년 이내에 우울 증상을 경험하는 비율이 40%에 달했다. 직함이 사라지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역할로 자신을 규정해온 결과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서 "남의 인생을 살다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훈아의 이 말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외부 보상이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내적 동기에서 행동할 때 사람은 더 오래 지속하고 더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인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저서 '자기결정이론'에서 "자율성을 잃은 삶은 서서히 동기를 잃는다"고 명시했다. 자기 이름으로 산다는 건 철학이 아니라 삶의 지속 가능성의 문제다.
나훈아는 수십 년간 무대에서 관객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이 먼저 채워져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년간 공백기를 가진 것도 그 맥락이었다. 소진된 상태로 무대에 서는 대신 채울 시간이 필요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말은 비단 예술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배우자로서 파트너에게, 직장 선배로서 후배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충만한 상태여야 한다. 소진된 상태에서 주려는 시도는 관계를 소모시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고갈(Emotional Exhaustion)'이라 부른다. 비행기 안전 안내에서 "비상시 타인을 돕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빅터 프랭클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은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타인을 도울 수 있다"고 썼다. 꿈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나훈아의 말은 자기중심적 태도가 아니다. 오래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50대 이후 번아웃이 급증하는 세대에게 이 말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삶의 구조를 바꾸라는 조언에 가깝다.
나훈아가 긴 세월 동안 TV 출연을 거부하고 언론 노출을 최소화한 것은 이 말의 실천이었다. 흔하게 노출될수록 가치가 낮아진다는 철학을 삶으로 보여줬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희소성이 가치를 만든다.

이 원리는 관계와 자기 관리 모두에 적용된다. 모든 것을 공개하고 언제나 접근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삶은 단기적으로는 주목을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가치를 소진시킨다. SNS 시대에 자기 노출이 일상화된 지금, 오히려 자신을 아끼고 필요한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이 더 귀해지고 있다.
경제학에서 '희소성의 원리'는 공급이 제한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 원리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작동한다. 쉽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보다 자신만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상대에게 더 오래 특별하게 남는다.
로버트 그린은 저서 '권력의 법칙'에서 "너무 쉽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당연한 것은 금방 사라진다"고 썼다. 자신을 지키는 것은 고집이 아니라 오래 남는 방법이다.
나훈아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남긴 말의 핵심이었다. 최정상에서 물러나는 것, 아직 더 할 수 있을 때 멈추는 결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까지 버티는 것보다, 기억되는 장면에서 떠나는 것이 훨씬 어렵고 용기 있는 선택이다.

인생 전반에서 이 원칙은 관계에도 적용된다. 대화에서도, 모임에서도, 관계에서도 가장 좋은 순간에 여운을 남기고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 오래 기억된다. 과도하게 오래 머물다 지루해지는 것보다 아쉽게 남기는 편이 상대에게 더 강하게 남는다. 나훈아가 수십 년간 팬들에게 '다시 보고 싶은 가수'로 남을 수 있었던 데는 이 감각이 작동했다.
세네카는 저서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에서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지배한다"고 썼다. 나훈아의 이 말은 미련 없음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아는 사람의 태도에서 나왔다. 언제 멈출지 아는 것도 인생에서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세월에 끌려가며 나이를 핑계로 스스로를 줄이고, 남의 기준으로 살며, 비어있는 상태로 무언가를 주려 하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의 가치를 소진하다가 박수가 사라진 뒤에야 멈추는 사람이 있다.
반면 세월을 이끌고 자기 이름으로 선택하며 먼저 자신을 채우고 필요한 거리를 지키다가 아직 빛날 때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 나훈아가 58년의 무대에서 남긴 말들은 그 두 삶의 차이를 단 몇 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지침이 거기에 있다.

관심 없음
{카테고리}에 관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