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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건설 "AI 번역 기술로 현장 언어장벽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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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 1타 강사 이지영이 몇 년 전 자신의 강의에서 공개한 인생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며 여전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진 중학교 시절 극단적 선택의 순간, 법대 시절 마주한 충격적인 판결 그리고 수험생들에게 전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 이지영이 말하는 '1가지'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지영은 중학교 3학년 시절, 국어 수업 중 담당 교사에게 "저 죽으러 가요"라는 말을 남기고 20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며 하수도 역류로 필기 노트와 교복, 책을 모두 버려야 했고, 부모님은 동시에 암 투병 중이었다. 사춘기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옥상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이지영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감각과 마주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과 달리, 몸이 미치도록 무서웠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안 무섭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공포스러웠던 그 순간, 이지영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죽으면 모든 게 편해질 줄 알았는데, 왜 죽는 게 무서운 걸까. 내가 정말 죽고 싶었던 게 맞는 걸까.
그 질문이 역설적인 진실을 건드렸다. 삶에 대한 집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작은 시험 실패나 흠집조차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다시 하면 되지"라며 넘겼을 일들이었다.
울면서 옥상을 내려온 이지영은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과거의 이지영은 죽었다. 덤으로 얻은 인생이니 이제 죽기 살기로 독해져서 성공하고, 내가 깨달은 것을 전하는 사람이 되자.'
그 결심은 고등학교 3학년 수험 생활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됐다. 이지영은 하루 3~4시간만 자며 공부했다. 잠을 깨려고 포크로 허벅지를 찌르고, 샤프 끝으로 손등을 찔러 피가 날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 시절 이지영이 스스로에게 남긴 말은 단 하나였다. "이렇게까지 밀어붙여도 난 죽지 않는구나."
한번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나니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감각이 생겼다. 출발선이 불공평하고 핸디캡이 있었더라도, 그 마음가짐이 어떤 고난도 넘을 수 있는 체력을 만들었다. 이지영이 스스로를 '진짜 파이터'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시절, 이지영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장면을 마주했다. 세상에 대한 증오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피고인의 대법원 재판이었다. 모두가 그를 괴물이라 부르며 사형을 요구했다.
판사는 달랐다. 피고인의 비극적인 삶을 헤아린 뒤, 최후 진술 대신 단 하나의 명령을 내렸다.
피고인은 오열하며 법정에서 "자살, 자살..."을 반복했다. 판사는 그가 10번을 다 외칠 때까지 기다린 뒤 말했다.
판사는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참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이지영은 그 판결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완벽주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이들에게, 자신이 중학교 옥상에서 깨달은 메시지를 반드시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이지영이 수험생들에게 반드시 기억하라고 조언한 단 하나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 반드시 먼저 그의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그 의지를 시험한다고. 이지영은 이 구절을 자신의 삶에 그대로 대입한다. 반지하 월세방, 부모의 암 투병, 옥상 위의 공포, 피가 나도록 자신을 몰아붙인 수험 생활. 그 모든 고난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깊이와 무게감을 가진 강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이 대목에서 궁금해하는 것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다. 이지영의 답은 명확하다. 고난의 크기가 클수록 그것이 포장하고 있는 선물의 무게도 크다는 것. 다만 포장지를 뜯기 전까지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이지영 본인이 그 증거다. 수능 국어 분야에서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켜온 그의 강의가 단순히 기술과 노하우만으로 구성되지 않는 이유는, 강의 곳곳에 삶 자체에서 건져 올린 언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이 성적이 아닌 삶의 태도로 그의 강의를 기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지영은 수험생들이 가장 무너지기 쉬운 순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공부 스트레스에 가정 불화, 경제적 위기, 건강 악화가 한꺼번에 겹칠 때다. 그 상황에서 많은 수험생이 우울증을 겪고 극단적인 생각에 다다른다.
이지영은 이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반응이라고 말한다. "왜 감정 컨트롤을 못 하니"라며 자책하는 순간, 몸이 이미 한계 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태에서 더 깊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비유는 단순하면서도 정확하다. 영하 23도의 추위에 독감에 걸린 사람에게 "왜 감기 따위에 걸리냐, 당장 뛰라"고 다그치는 사람은 없다. 몸이 아프면 따뜻한 이불 속에서 쉬는 것이 치료다. 마음이 지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은 마음이 걸린 감기일 뿐이며, 그 감기에 걸린 스스로를 다독이고 쉬게 해주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다.
이지영이 수험생들에게 오늘 밤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에게 건네라고 권한 말은 이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의 역설,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 마음의 감기에 대한 너그러움. 이지영이 수십만 수험생 앞에서 꺼낸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동기부여 강의가 아니다. 옥상 끝에서 살아 내려온 사람만이 꺼낼 수 있는 언어다.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리는 순간이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리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관점이 존재한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작은 실패에 극도로 취약하며, 자기혐오와 자기애가 동시에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삶의 기준이 높을수록 현실과의 간극을 견디는 힘이 약해지고, 그 간극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스스로를 향한 분노로 터져 나온다.
주변에서 "힘들다",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말을 단순한 푸념으로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혼자 삼켰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오히려 말을 완전히 잃은 침묵이 더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
이지영이 조언한 핵심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포크로 허벅지를 찌르며 밤을 버텼던 수험생이 수십만 명의 인생에 닿는 강사가 됐듯, 지금 이 고난이 어떤 형태의 선물을 포장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버티는 것 자체가 이미 강하다는 증거다. 고난의 포장지가 두꺼울수록, 그 안의 선물을 꺼낼 자격을 갖춰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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