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선 보트 모터 망치는 쓰레기인데… 한국인들이 전 세계 물량 쓸어 담는 '수산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바다는 단순한 지형적 특징을 넘어 풍요로운 텃밭의 역할을 해왔다. 봄이 오면 산에서 나물을 캐듯 우리 선조들은 바다에서 미역과 다시마, 톳, 모자반을 거두어 아침저녁 밥상에 올렸다.

제주시 우도면 '홍조단괴 해변' / 뉴스1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김은 한국인의 식탁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는 단골 반찬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고, 매년 찾아오는 생일마다 미역국을 먹는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 해초를 이처럼 일상적이면서도 친근하게 소비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실제로 한국은 국민 1인당 수산물과 해조류 소비량에서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생산량 150만 톤 돌파… 한국인의 유별난 김·다시마·톳 사랑

한국인의 해조류 사랑은 소비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국내 해조류 연간 생산량은 150만 톤을 웃돌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국내에서 소비된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김은 연간 생산량이 100억 장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인 소비량을 자랑한다. 이는 전 국민이 매일 두 장 이상의 김을 먹어야 가능한 수치다.

국물을 낼 때 필수적으로 쓰이는 다시마 역시 한국 식문화의 뿌리다. 국물용 육수뿐 아니라 생다시마를 쌈으로 싸 먹거나 말려서 튀긴 다시마 부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밥상에 오른다. 국내 한 유명 라면 제품에 다시마 조각이 통째로 들어간 점도 한국인의 유별난 다시마 선호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바다의 불로초로 불리는 톳 역시 남해안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채취돼 밥을 지을 때 함께 넣는 톳밥이나 두부와 함께 버무리는 톳나물 무침 등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칼슘과 철분이 풍부해 과거에는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기도 했을 만큼 영양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식재료다.

서구권의 외면 '바다의 잡초'… 아시아인의 장내 미생물 비밀

반면 서구 사회에서 해조류는 오랜 기간 '시위드(Seaweed)', 즉 바다의 잡초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외면받았다. 해안가에 지저분하게 밀려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골칫거리거나, 고기잡이배의 모터에 감겨 운항을 방해하는 장애물 정도로 여겨졌다. 영어권에서 해초를 뜻하는 독자적인 단어가 발달하지 못하고 그저 잡초라는 범주로 묶어 부른 것 자체가 이 물질을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김을 구매하고 있다. / 뉴스1

북유럽 일부 추운 지역에서 겨울철 비상 식량으로 저장해 먹거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기 위한 비료로 쓴 예외는 있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구권에서 해조류는 아이스크림이나 젤리를 단단하게 굳히는 응고제나 화장품을 만드는 가공 산업의 원료로만 소비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수백 년간의 식문화 차이가 인간의 신체 구조까지 바꿔놓았다는 사실이다. 인류학자와 과학자들은 해조류를 대를 이어 섭취해온 아시아인의 장 내부에서 해조류 고유의 다당류 성분을 분해하는 특수한 장내 미생물이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긴 세월 동안 반복된 식습관의 결과로 인간의 장내 생태계 자체가 바다가 주는 영양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진화한 셈이다.

다시마 자료사진 / sungsu han-shutterstock.com

영양학적 관점에서도 해조류의 가치는 높게 평가된다. 지금도 전 세계 인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아이오딘 결핍으로 인한 갑상선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법적으로 소금에 아이오딘 성분을 의무적으로 섞어 판매한다. 일부 서구권 국가의 약국에서는 한국에서 만든 조미김이 아이오딘 보충 치료제로 진열돼 판매될 정도다. 반면 삼시 세끼 해조류를 자연스럽게 섭취하는 한국인은 오히려 아이오딘의 과다 섭취를 염려해야 할 만큼 풍족한 환경에 살고 있다.

이러한 효능이 알려지면서 최근 글로벌 식품 시장과 첨단 푸드테크 업계는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를 해결할 강력한 대안으로 해조류를 꼽기 시작했다. 해조류는 바닷속 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데다 인공 비료를 전혀 주지 않아도 바다 환경에서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단백질과 미네랄 성분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 미래 식량으로 손색이 없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 역시 전라남도 완도군 일대의 대규모 해조류 양식장을 위성 사진으로 촬영해 분석한 뒤 담수와 비료가 필요 없는 가장 친환경적인 식량 기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검은 반도체'로 우뚝 선 한국 김… 글로벌 스낵 시장을 흔들다

이에 과거 바다의 잡초라 불리던 해초들은 이제 '바다의 채소(Sea Vegetables)'라는 세련된 명칭으로 탈바꿈해 전 세계 미식가들을 공략하고 있다. 유럽의 유명 요리사들은 해초를 섞은 버터나 다시마 성분을 넣은 소금을 최고급 요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비건 식품 시장에서는 한국산 김을 감자칩을 대체할 새로운 슈퍼푸드 스낵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처럼 전 세계가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미래 식량의 해답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일상적인 밥상 위에서 매일 소비해왔다. 특히 한국산 김은 전 세계 120여 개국으로 불티나게 수출되며 수출액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검은 반도체'라는 독보적인 별칭까지 얻었다.

미국의 대형 마트인 트레이더조에서 한국산 냉동 김밥이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해외 어린이들이 학교 도시락 반찬이나 건강 간식으로 조미김을 챙겨 먹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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