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사장님들만 가던 곳인데...주말마다 2030 줄 서기 시작하며 환골탈태한 '이곳'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골목 안 수십 년 된 상점들 사이로 접시와 찻잔, 와인잔이 층층이 쌓인 그릇상가가 활기를 띠고 있다.

남대문시장 전경. / Chiara Sakuwa-shutterstock.com

과거 주로 식당 업주들이 대량으로 기물을 구매하기 위해 찾던 이 공간은 최근 자신만의 확고한 식성을 시각화하려는 20대와 30대 소비자들의 새로운 아지트로 탈바꿈하는 추세다. 온라인으로 클릭 한 번이면 물건을 살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젊은 구매자들이 다시 전통시장 골목으로 향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무광과 자연스러운 질감의 강세… 세트 대신 '조합'하는 소비

최근 식기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제품군은 반짝이는 유광 식기보다 차분한 멋을 풍기는 무광 식기다. 크림색이나 회색 계열을 바탕으로 돌이나 흙의 자연스러운 표면 질감을 그대로 살린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매끄러운 형태보다는 마치 손으로 직접 빚어낸 듯한 투박한 도자기류나 세련된 카페 브런치 전문점에서 쓰일 법한 이색적인 식기들이 매대 전면에 배치되는 양상이다.

소비 방식에서도 세대 변화가 읽힌다. 과거처럼 모든 구성품이 통일된 하나의 그릇 세트를 통째로 장만하는 문화는 흐려졌다. 대신 작은 반찬 그릇부터 와인잔, 소주잔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용도와 필요에 맞춰 각기 다른 디자인의 제품을 하나씩 수집하고 조합해 자신만의 식기 스타일을 구축하는 매치 소비가 주류를 이룬다.

숏폼 릴스가 키운 '플레이팅' 열풍… 보여주는 미식 문화의 정착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숏폼 동영상 플랫폼을 중심으로 확산한 미디어 트렌드도 젊은 층을 전통시장으로 이끄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감각적인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내는 과정을 촬영해 공유하는 영상 콘텐츠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남대문 시장에 진열된 그릇들. / SUNGMOON HAN-shutterstock.com

소셜미디어에서 '#홈쿡', '#온더테이블', '#플레이팅' 등의 해시태그를 단 영상들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시각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 투박한 손맛이 느껴지는 도자기 접시에 요리를 얹거나, 크림색 무광 식기에 디저트를 배치하는 감성적인 연출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화면을 통해 타인의 세련된 식탁을 접한 소비자들이 나만의 독창적인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개성 있는 기물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는 남대문시장으로 향하게 된 셈이다.

집밥 플레이팅과 홈술 문화가 이끈 '나를 위한 리추얼'

이처럼 젊은 층이 그릇에 주목하는 원인은 홈술과 홈카페 문화의 정착과도 맞닿아 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혼자 술을 마시더라도 제대로 갖춰놓고 마시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어떤 잔과 접시에 음식을 담느냐가 일상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집밥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에이터 / SNS 캡처

여기에 배달 음식의 편리함 이면에 쌓이는 일회용기 쓰레기와 자극적인 맛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늘어난 점도 한몫을 했다. 신선한 식재료를 골라 손수 조리하고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내는 일련의 과정이 지친 하루 끝에 스스로를 대접하고 위로하는 일종의 의식, 즉 리추얼로 자리를 잡았다. 같은 음식이라도 시각적 즐거움과 심리적 만족감을 더해주는 식기에 담았을 때 기분 전환 효과가 크다는 인식이 젊은 층 사이에서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남대문시장이 이처럼 젊은 방문객들로 붐비는 현상은 식기류의 인기 외에도 최근의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개성 있는 소비를 추구하려는 젊은 세대의 성향이 전통시장 특유의 감성과 맞아떨어졌다. 화면으로는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그릇의 실제 무게감이나 빛의 각도에 따른 색감을 눈으로 확인하고, 발품을 팔아 현금 할인을 받는 일련의 과정이 온라인 장바구니 쇼핑이 주지 못하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대문시장만이 가진 먹거리와 특유의 이국적인 골목 분위기도 집객 효과를 높이는 일등 공신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갈치조림 골목이나 칼국수 골목 등은 소셜미디어상에서 젊은 세대의 필수 맛집 탐방 코스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그릇 쇼핑을 마친 뒤 노포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수입 구제 의류나 빈티지 소품, 카메라 골목까지 함께 둘러보는 당일치기 문화 여행 코스로 소비되는 양상이다. 생필품을 조달하던 과거의 재래시장이 이제는 젊은 세대의 취향과 감성을 채워주는 매력적인 오프라인 체험 공간으로 거듭나며 시장 전체의 방문객 수가 예년보다 대폭 불어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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