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도 반했다... 깊은 산속에 숨겨진 16km '거대 요새' 정체

전북 완주에는 세월의 이끼를 덮고 앉아 있는 성벽이 자리해 있다. 화려한 도심의 유적지와 달리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돼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이곳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힐링 성지로도 알려졌다.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닿는 국내 여행지를 소개한다.

완주 위봉산성(오) 위봉폭포(왼).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완주군 공식 블로그

조선 숙종 원년인 1675년부터 숙종 8년인 1682년까지 7년에 걸쳐 축성된 위봉산성이다. 이 공사는 전라감사 권대재의 주도로 전라도 내 7개 고을의 군민과 승려들이 동원돼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당시 조선 조정이 깊은 산중에 거대한 성을 쌓은 이유는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보관 중이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과 전주 이씨의 시조 위패를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부성이 농민군에 의해 함락되자, 조선 조정은 실제로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이곳 위봉산성 행궁으로 급히 피난시켰다. 비록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성내 행궁과 대다수의 시설물이 파괴됐지만, 남아 있는 성벽의 기단석과 서문의 아치형 석문은 여전히 엄숙한 기품을 잃지 않고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켜켜이 쌓인 세월이 만들어낸 독특한 축성 기법

BTS 힐링 성지로 알려진 완주 위봉산성. / 완주군 공식 블로그, AI
위봉사. / 완주군 공식 블로그, AI

성곽의 구조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축성 기술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다. 위봉산성은 계곡을 둘러싸고 주변 산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총 둘레가 16k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험준한 위봉산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방어력을 높였다.

성벽의 아랫부분인 기단석은 비교적 큰 돌을 이용해 안쪽으로 살짝 들여 쌓았고, 그 위로는 수직으로 촘촘하게 돌을 맞물려 올렸다. 겉보기에는 투박해 보이지만 오랜 세월의 하중과 비바람을 견뎌낸 축조 방식이다.

과거 성 안에는 군사들을 지휘하던 장대지와 군량미를 보관하던 군향고, 무기 창고인 군기고 등 철저한 군사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이곳의 특징은 산성에는 동문과 서문, 북문만 존재하고 남문은 아예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쪽의 험준한 절벽 지형을 천연 방어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성벽 곳곳에 뚫려 있는 총안(총을 쏠 수 있게 만든 구멍)과 평여장의 흔적들은 과거 이곳이 군사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위봉산성의 백미는 단연 서문 터다. 성의 정문 역할을 했던 서문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 있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홍예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성벽을 감싸 안은 거대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사진 명소로 통한다.

서문을 지나 성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고즈넉한 위봉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위봉사는 현재 비구니 스님들의 참선 도량으로 사용돼 경내 전체가 정갈하고 고요하다. 경내에 자리한 보광명전은 국가 보물로 지정됐으며 화려한 단청과 팔작지붕의 유려한 곡선이 돋보인다. 또 빛바랜 백의관음보살 벽화가 오랜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한여름의 비장한 절경, 위봉폭포

위봉폭포.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여름철 이곳을 방문하면 위봉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완산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위봉폭포는 높이 60m에 달하는 2단 폭포로, 숲이 우거지는 여름에 그 진가를 발휘한다. 독특한 2단 구조 덕분에 폭포는 단순한 수직 하강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기암괴석 사이를 뚫고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뚫어준다. 특히 주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목이 이루는 조화가 일품이다.

위봉산성으로 향하는 길은 전주역이나 전주공용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삼으면 된다. 전주 시내에서 완주군 소양면 방면으로 운행되는 버스를 타면 소양교나 송광사 종점에 도착한 뒤, 위봉사나 위봉마을 행 시내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다만 대중교통의 배차 간격이 다소 긴 편이라 미리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자차로 방문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익산IC나 순천완주고속도로 동전주IC를 빠져나와 소양면 소재지를 거쳐 진입하면 된다. 소양면에서 위봉산성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은 창문을 열고 달리기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산세를 따라 굽이치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창틀 사이로 싱그러운 산 내음을 맡을 수 있다.

위봉산성은 누구나 무료로 입장 가능하며, 연중무휴 운영된다. 다만 기상 여건에 따라 출입이 통제될 수 있다.

깊은 산세가 키워낸 청정 식재료

순두부찌개. / Hyung min Choi-shutterstock.com

완주 위봉산성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면서 인근의 먹거리와 전통시장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깊은 산세가 키워낸 청정 식재료와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노포들의 손맛은 여행의 깊이를 더해준다. 지친 몸을 달래줄 완주의 대표 먹거리를 만나보자.

완주군 소양면 일대는 순두부 요리의 본고장이다. 위봉산성에서 내려와 차로 10여 분만 달리면 고소한 콩 삶는 냄새가 진동하는 순두부 거리에 닿을 수 있다. 이곳의 식당들은 매일 아침 국산 콩을 맷돌로 갈아 전통 방식 그대로 두부를 만들어낸다.

혓바닥 위에서 부드럽게 무너지는 순두부의 식감은 가공 두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몽글몽글함을 자랑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부쳐낸 두부전과 새콤하게 익은 묵은지의 조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한국식 백숙. / Hyung min Choi-shutterstock.com

위봉산 주변의 깊은 골짜기들은 예로부터 토종닭 요리로 명성이 높았다. 산속에서 방목해 키운 닭을 사용하기에 일반 닭과 차원이 다른 쫄깃한 육질을 자랑한다. 주로 엄나무, 황기, 당귀 등 10여 가지가 넘는 국산 한약재를 넣고 가마솥에서 반나절 이상 푹 고아낸다.

기름기를 걷어내 맑고 투명한 국물은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가슴 속까지 뜨끈한 기운이 전해지며 여독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또 오랜 시간 고아내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지는 닭고기는 소금만 살짝 찍어 먹어도 담백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고기를 다 먹은 뒤 남은 진한 육수에 찹쌀과 녹두를 넣어 끓여내는 죽은 구수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포만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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