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34도 '사우나 폭염'도 못 막았다… 평일 낮부터 외국인들로 미어터지는 '이 지역'

지난 7일 경주 곳곳에서는 한 손에 캐리어, 다른 손에 경주빵과 금관 키링 같은 기념품을 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서양권에서 온 흰 피부와 푸른 눈의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고,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황리단길에는 수십 명의 20대 외국인들이 무리 지어 쇼핑을 즐기는 모습도 포착됐다. 최고기온 34도, 습도 78%에 이르는 '사우나 날씨'를 보인 평일이었지만, 어디서나 외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주 황리단길 자료사진. / Saejun Ahn-shutterstock.com

'문화의 도시' 경주가 밀려드는 외국인 관광객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인접국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에서 온 손님까지 늘면서 관광 소비와 명소 방문객이 동시에 증가하는 모습이다. 수도권과 대도시가 아닌 지역 소도시를 관광 거점으로 키울 기회라는 기대도 나온다.

5월까지 외국인 57만명... 전년 대비 18.3%↑

수치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된다. 경주시가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경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57만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8만여 명)보다 18.3% 늘었다. 1~2월이 경주 여행 비수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에는 이 증가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경주시 관계자는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주를 방문하려는 국제 수요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인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서구권 손님의 증가세는 특히 반가운 대목이다. 이들은 체류 일수가 길고 인접국 관광객에 비해 소비 규모도 상대적으로 커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K콘텐츠의 기반이 되는 전통문화를 소비하려는 외국인이 늘면서, 과거 내국인 관람객 증가세가 뚜렷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외국인 관람객의 증가폭이 훨씬 가팔라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 유네스코 유산만 다섯 지구

경주가 이처럼 서구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배경에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촘촘하게 남아 있는 신라 유적이 있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대릉원지구, 월성지구, 남산지구, 산성지구, 황룡사지구 등 다섯 개 지구로 나뉘며, 각 지구마다 천년 신라의 흔적을 품고 있다.

동궁과 월지 자료사진. / vansa pha-shutterstock.com

시내 중심에 자리한 대릉원은 신라 왕과 왕비, 귀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가운데 천마총은 1973년 발굴 당시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가 출토돼 이름 붙여졌으며, 현재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분이다. 대릉원 인근의 첨성대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높이 약 9m에 27단으로 쌓은 원통형 구조가 특징이다. 국보 제31호로 지정돼 있다.

신라 왕자가 머물던 별궁터인 동궁과 월지는 야경 명소로 특히 유명하다. 연못에 비친 누각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저녁 무렵 풍경을 보기 위해 입장 마감 시간에 관광객이 몰리는 일이 잦을 정도다. 시 외곽에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종묘, 팔만대장경과 함께 한국에서 처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경내에 국보 7점과 보물 6점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몇 해 전부터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 공방이 들어서며 유명해진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가장 젊은 거리로 꼽히며, 전통 유적과는 다른 매력으로 20~30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관광업계에서는 일본처럼 지역 소도시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간 4000만 명의 외국인을 유치하는 일본은 교토와 도쿄 외에도 지역 소도시에 수백만 명이 방문하기 때문에 전체 관광시장의 규모 자체가 커질 수 있었다. 인구 10만~20만 명 수준의 소도시까지 인구의 몇 배가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일본 관광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경주를 비롯한 지역 도시를 살리는 것이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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