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수 가던 외국인들이 왜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 쓸어 담는 '의외의 시장'

서울 종로구 동묘 일대가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새로운 필수 방문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명동이나 성수처럼 이미 잘 알려진 쇼핑 명소를 벗어나, 값싼 빈티지 의류와 옛 물건들을 직접 발굴하는 재미를 좇아 동묘 벼룩시장과 인근 신흥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동묘 일대. / Onestockimages-shutterstock.com

조선시대 사당 앞에서 시작된 시장

동묘는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 세워진 동관왕묘의 줄임말로, 삼국지의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보물로 지정된 이 사당 주변에 장이 서던 자리는 1980년대 들어 중고품 만물상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상권을 형성했다. 이후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터전을 잃은 황학동 벼룩시장 상인들이 유입되며 규모가 한층 커졌고, 지금은 동묘 벼룩시장과 신흥시장, 인근 골동품 거리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중고품·구제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은 크게 구제 옷거리와 골동품 거리로 나뉜다. 구제 옷거리에는 의류, 신발, 가방 등이 길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골동품 거리에서는 손목시계, 필름 카메라, 라디오, 재봉틀, 도자기 등 세월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옷가지 대부분은 아파트 단지 재활용품 수거함에 모인 물건을 상인들이 1㎏당 250~300원에 사들여 되파는 구조라 물건값이 저렴한 편이다. 일반 의류는 1000원 안팎이 흔하고, 모피나 가죽 제품은 1만원대, 상태가 좋은 명품은 10만원을 넘기도 한다.

니트 공장의 부활, 해방촌 신흥시장

동묘가 값싼 구제 시장이라면, 신흥시장은 정반대의 매력을 지녔다. 용산구 해방촌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이 시장은 최근 몇 년 새 "서울에서 가장 예쁜 시장"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신흥시장의 원래 이름은 해방촌시장으로, 1953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1950년대에는 담배 제조로, 1960년대에는 니트(편물) 제조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만큼 번창했지만 이후 제조업이 침체되며 30여 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폐허에 가까웠던 이곳이 부활의 기지개를 켠 것은 서울시가 2015년 해방촌 일대를 도시 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하면서부터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대신 투명한 아케이드 '서울챙'을 설치해 날씨와 관계없이 방문할 수 있게 됐고, 옛 니트 공장의 흔적이 남은 좁은 골목에는 감각적인 카페와 레스토랑, 소품샵, 사진관이 들어섰다. 오래된 간판과 색바랜 타일, 벗겨진 페인트 같은 옛 흔적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뉴트로(New+Retro) 공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남산 뷰가 보이는 루프탑 카페와 와인바도 인기가 높으며,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면서 한층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활용되며 젊은 세대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해방촌 일대는 광복 이후 귀환 동포와 월남민,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로, 오늘날에는 여러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인과 함께 거주하며 이국적인 생활문화와 도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녹사평역에서 남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외국인이 운영하거나 외국인 손님이 많은 카페와 식당들이 자리해, 신흥시장 방문객들은 시장 구경과 함께 이국적인 골목 분위기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다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카페나 식당 물가가 일반적인 한국 시세보다 다소 높은 편이라는 점은 참고할 부분이다.

세대와 국적 뒤섞인 진짜 ‘로컬 시장’

한때 중장년층의 추억의 장소로만 여겨졌던 이곳은 최근 20~30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세대와 국적이 뒤섞인 공간으로 변모했다.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도 최근 외국인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등에는 동묘를 서울의 대표 빈티지 쇼핑 명소로 소개하는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며 입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SNS 샤오홍슈에서도 동묘는 이미 추천 빈티지 쇼핑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신흥시장. / 뉴스1

방문객들의 소비 행태도 다양하다. 옷과 액세서리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사이즈를 맞춰보고 상인과 흥정을 즐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골동품 거리에서 오래된 카메라나 시계 같은 희귀 아이템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시장 골목 풍경 자체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며 여행 콘텐츠로 소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새벽 시간대에 열리는 이른바 ‘새벽 장’을 노리고 방문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정보도 SNS를 통해 퍼지면서, 주말 새벽에도 시장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용 정보와 방문 팁

동묘 벼룩시장은 지하철 1호선·6호선 동묘앞역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으며 노점은 대체로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해방촌 신흥시장은 6호선 녹사평역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고, 오르막 골목이 많아 편한 신발을 추천할 만하다. 두 시장 모두 걸어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서울의 옛 정취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쇼핑 명소와는 다른 매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다만 중고 물품 특성상 정품 여부나 제품 상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는 점은 유의할 부분이다. 특히 의류나 액세서리는 흠집이나 손상 여부를 직접 확인한 뒤 구매하는 것이 안전하며, 고가의 골동품이나 시계류는 진위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금 결제를 선호하는 노점이 많은 만큼, 소액권을 미리 준비해 두면 거래가 한결 수월하다.

외국인 카드 소비, 이미 월 2조원 돌파

이 같은 흐름은 외국인 관광객의 전반적인 소비 증가 추세와도 맞물린다. 한국관광공사가 한국관광 데이터랩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5월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카드 소비액은 2조122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달(1조2702억원)보다 67.1% 증가한 규모다. 올해 1~5월 누적 카드 소비액도 7조984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3% 늘었다. 관광공사는 이를 2023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세라고 설명했다.

SNS에 신흥시장을 검색하면 다양한 콘텐츠들이 등장한다. / 유튜브 캡처

이번 소비 증가를 이끈 것은 중국 관광객으로, 중국인 카드 소비는 올해 들어 매달 증가 폭을 키우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명동이나 강남 등 전통적인 쇼핑 명소뿐 아니라, 동묘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지역 상권까지 외국인 소비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는 외국인 관광객의 관심이 대형 면세점이나 백화점 중심 쇼핑에서 벗어나, 저렴하면서도 한국인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골목 상권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과도 맥을 같이한다.

명동과 면세점 중심의 전통적인 쇼핑 관광에서 벗어나, 지역의 고유한 분위기와 문화를 직접 경험하려는 체험형 관광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동묘·신흥시장 일대는 당분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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