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트래블] 한용운의 집, 박경리의 마을… 읽으면 가고 싶은 '국내 문학 여행지' 6곳

여름 여행이 꼭 바다와 계곡으로만 향할 필요는 없다. 오래된 골목, 강변 마을, 들판과 산자락을 걷다 보면 한 작가의 삶과 작품 속 문장이 여정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문학 여행은 장소를 둘러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곳에 머물렀던 인물의 시간, 작품이 태어난 배경, 주변 풍경과 지역 음식까지 함께 살피며 한 지역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하동 최참판댁.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책 속에 머물던 이야기는 작가가 살던 집과 작품의 배경이 된 마을, 인물들이 걸었을 법한 길 위로 이어진다. 서울 성북동의 조용한 골목부터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 평사리, 양평 소나기마을, 당진 필경사, 춘천 실레마을과 남원 사매면까지, 문학의 흔적을 따라 걷기 좋은 국내 여행지를 소개한다.

한용운 - 서울 성북동 심우장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집이다.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면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에 참여했고, 이후에도 불교 개혁과 민족운동을 이어갔다. 심우장은 한용운의 문학과 사상, 민족운동의 발자취를 마주하는 곳이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 / 한국관광콘텐츠랩

심우장은 집의 방향도 한용운의 삶과 닮아 있다. 일반적으로 한옥은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을 선호하지만, 심우장은 북향으로 지어졌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마주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남쪽을 등진 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의 이름인 심우는 잃어버린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본래의 마음을 찾는 수행의 의미와도 닿아 있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건물은 아니지만, 집의 방향과 이름만으로도 한용운의 신념을 읽을 수 있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 / 한국관광콘텐츠랩

심우장은 성북동 골목길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성북동은 도심과 가깝지만 골목의 경사가 살아 있고, 오래된 주택과 한옥, 사찰, 문학관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네다. 심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길상사와 수연산방, 성북근현대문학관 등이 있다. 길상사는 도심 속 사찰의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기 좋고, 수연산방은 한옥의 정취가 남은 찻집이다. 근현대문학관에서는 이곳 일대에 머물렀던 문인들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성북동에서는 걷는 길에 식사와 휴식을 더하기 좋다. 골목을 걷고 난 뒤 칼국수나 만두처럼 부담 없는 한 끼를 곁들이고, 전통찻집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심우장을 중심에 두면 서울 안에서도 문학과 역사, 골목 산책, 사찰과 찻집이 이어지는 반나절 여행이 가능하다.

박경리 -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바탕으로 조성된 대표 문학 여행지다. <토지>는 한 집안과 마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담아낸 작품이다. 평사리에서는 문학관과 최참판댁을 함께 둘러보며 들판과 한옥,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이 어우러진 작품의 무대를 따라갈 수 있다.

최참판댁 전경. / 경상남도 하동군-공공누리

최참판댁은 평사리 들판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조성돼 있다. 한옥 14동과 드라마 세트장이 함께 있어 조선 후기 생활상을 재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작품을 읽은 사람에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고, 작품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넓은 들판과 산자락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 경관까지 더해져 문학과 지역의 풍경을 함께 즐기기 좋다.

최참판댁. / 경상남도 하동군-공공누리

이 일대에서는 박경리문학관까지 함께 둘러보면 좋다. 문학관에는 작가의 작품 세계와 <토지>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어 최참판댁을 찾기 전후로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평사리 들판과 문학관, 최참판댁을 차례로 돌아보면 이곳이 품은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하동 나들이에서 섬진강은 빼놓을 수 없다. 강줄기를 따라 동정호, 화개장터, 쌍계사로 발길이 이어진다. 화개장터는 하동의 들머리에 자리한 전통시장으로, 정겨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쌍계사로 향하면 지리산 자락의 숲길과 고즈넉한 사찰의 정취가 더해진다.

산과 강을 둘러본 뒤에는 지역 음식으로 여정을 이어가기 좋다. 섬진강 재첩국과 참게탕은 지역색이 뚜렷한 대표 먹거리다. 식사 뒤에는 향긋한 녹차 음료나 디저트를 곁들이며 하동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황순원 - 경기 양평 소나기마을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소설 속 정서를 따라 걷는 여행지다. 황순원은 시와 소설을 두루 남긴 작가로, 단편소설 <소나기>는 여름비와 첫사랑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은 대표작이다. 황순원의 삶과 창작 세계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곳은 <소나기>의 분위기를 전시 공간과 야외 산책로에 담아냈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 경기도-공공누리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 경기도-공공누리

서종면 일대는 강과 산이 가까워 차분한 여정을 계획하기 좋다. 인근의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자 한강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다. 세미원은 두물머리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정원형 명소로, 연꽃과 물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종면 카페거리와 문호리 일대는 강변을 보며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지역 먹거리로는 양평해장국을 꼽을 수 있다. 해장국은 오랜 세월 이곳을 대표해 온 든든한 음식이다. 양평물맑은시장에 들르면 다양한 특산물과 즉석 먹거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을 다녀온 뒤 강변 풍경을 둘러보고, 시장이나 카페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면 수도권에서 당일로 다녀오기에도 부담이 적다.

심훈 - 충남 당진 필경사

충남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필경사는 심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심훈은 소설가이자 시인, 언론인, 영화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현실 속에서 민족의식과 농촌계몽의 문제를 작품으로 다뤘고, <상록수>는 그를 대표하는 소설로 꼽힌다. 필경사는 심훈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으로, 그가 당진에 머물며 집필 활동을 이어간 장소다.

필경사 전경.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심훈은 1932년 서울을 떠나 부모가 살던 당진으로 내려왔다. 이후 장편소설 <직녀성>을 연재해 받은 원고료로 필경사를 지었다. 필경사라는 이름에는 붓으로 밭을 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글을 쓰는 일이 현실과 동떨어진 작업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바꾸려는 실천일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심훈은 이곳에서 <상록수>를 짧은 기간에 탈고해 신문사 장편소설 공모에 응모했고, 작품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필경사와 함께 심훈기념관을 찾으면 인물의 생애를 더 차분하게 살필 수 있다. 기념관에서는 심훈의 문학 활동과 독립운동, 당대의 시대 배경을 함께 볼 수 있다. 필경사가 집필의 현장이라면, 기념관은 그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무엇을 문제로 삼았는지 정리해 보는 곳이다. 당진 문학 여행은 집의 이름과 위치, 집필 배경을 따라가며 한 작가가 글을 통해 붙잡으려 했던 현실을 살피는 여정이다.

필경사 내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대사아카이브

당진 여행은 서해안 풍경과 역사 공간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삽교호 관광지는 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고, 신리성지는 조선 천주교 박해사의 흔적을 품은 장소다. 면천읍성과 합덕성당, 아미미술관도 함께 들러볼 만하다. 바다 쪽으로 이동하면 장고항과 왜목마을이 있다. 장고항은 실치로 알려진 항구다. 우렁쌈밥이나 간재미무침 같은 지역 음식도 필경사 방문 뒤 곁들이기 좋다.

김유정 - 강원 춘천 김유정문학촌

강원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에 있는 김유정문학촌은 작품 속 마을을 직접 걷는 듯한 문학 여행지다. 김유정은 짧은 생애 동안 30편 안팎의 단편소설을 남긴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농촌 마을의 생활감과 해학, 인물들의 생생한 말맛이 담겨 있다. <봄봄>과 <동백꽃>은 지금도 널리 읽히는 대표작이다. 김유정문학촌에서는 이런 작품 세계를 작가의 고향 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김유정문학촌.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문학촌에는 김유정 생가와 전시관, 야외 공간이 갖춰져 있다. 방문객은 생가를 통해 작가의 생활 배경을 보고, 전시관에서 작품과 관련 자료를 살핀 뒤 실레마을 일대를 걸으며 작품의 배경을 떠올릴 수 있다. 실레이야기길은 문학촌과 마을을 잇는 산책로다. 전시관 안에 머무르기보다 마을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는 여정이 더 잘 어울린다.

김유정문학촌 생가터. / 연합뉴스
김유정문학촌.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김유정문학촌은 대중교통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수도권 전철 경춘선 김유정역과 가까워 당일치기 여정으로 계획하기 좋다. 역 이름 자체가 작가 이름을 품고 있어 이동 과정부터 문학 여행의 분위기가 이어진다. 문학촌을 본 뒤에는 의암호와 소양강 스카이워크, 춘천 도심, 구봉산 카페거리 등으로 동선을 넓힐 수 있다.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소양강 위를 걷는 체험형 시설이며, 의암호 일대는 물길을 따라 산책하기 좋다.

춘천 여행의 식사는 닭갈비와 막국수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춘천을 대표하는 닭갈비는 물론이고, 막국수 역시 지역을 대표하는 별미다. 문학촌과 김유정역, 호수 산책, 닭갈비와 막국수까지 한 흐름으로 묶으면 춘천 당일 여행을 알차게 채울 수 있다.

최명희 - 전북 남원 혼불문학관

전북 남원시 사매면에 있는 혼불문학관은 최명희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공간이다. 최명희는 대하소설 <혼불>을 통해 전라도 마을의 삶과 언어, 공동체의 기억을 세밀하게 담아낸 작가다. 작품은 한 집안과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그 안에는 지역의 풍속과 말, 사람들의 관계가 촘촘하게 들어 있다. 혼불문학관은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문학 세계를 남원 사매면이라는 실제 장소에서 마주하는 곳이다.

혼불문학관 전경. /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
혼불문학관.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혼불문학관은 작가의 생애와 <혼불>의 세계를 살핀 뒤, 작품의 배경과 맞닿은 주변 마을과 들녘으로 발걸음을 이어 가기 좋다. 사매면 노봉마을 일대는 작품의 배경과 연결돼 있어 문학관 관람 뒤 함께 둘러볼 만하다. 가까운 서도역은 오래된 기차역의 정취를 간직한 장소로, 남원 여행에서 자주 찾는 명소다. 청호저수지와 요천 산책로까지 더하면 남원 북부와 도심을 잇는 동선이 만들어진다.

남원 여행은 광한루원과 남원예촌으로 이어질 때 특유의 색채가 한층 짙어진다. 광한루원은 남원을 대표하는 전통 누원으로, <춘향전>의 고장이라는 지역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장소다. 남원예촌은 한옥 숙박과 전통 경관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문학관을 둘러본 뒤 하루를 머물기에도 알맞다. 혼불문학관이 전라도 서사의 깊이를 보여준다면, 광한루원과 남원예촌은 남원이 쌓아 온 고전문학과 전통 경관을 함께 품고 있다.

광한루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황성훈)

대표적인 먹거리로는 남원 추어탕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남원에는 추어탕거리가 조성돼 있으며, 추어탕은 오래전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별미로 자리 잡았다. 산채정식과 한정식은 지리산권 여행과 어울리는 식사이며, 흑돼지 요리도 든든하게 즐길 수 있다. 혼불문학관은 작가의 문장과 마을의 기억, 남원의 전통 경관까지 함께 아우르는 문학 여행지다.

문학 여행은 책을 펼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가 머문 집과 작품의 배경이 된 마을을 따라가다 보면 지역의 풍경과 음식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바다와 계곡이 익숙한 7월에는 책 속 문장을 따라 조금 다른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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