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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대신 골목길, 해운대 대신 이름 모를 어촌 마을.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조용히 바뀌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정해진 코스대로 빠르게 훑는 대신, 지역 주민의 일상이 묻어나는 공간을 찾아 자신만의 동선을 짜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는 게 25일 업계의 설명이다. 이른바 '인증샷 명소' 순례가 저물고, 아직 정보로 소비되지 않은 경험을 찾는 여행이 자리를 넓혀가는 모습이다.
이런 흐름은 크게 두 갈래로 나타난다. 하나는 익숙한 관광지 안에서도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골목과 오래된 상점, 로컬 브랜드를 찾아 나서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부산 같은 대도시를 아예 건너뛰고, 인구가 적은 지방 소도시 자체를 여행지로 택하는 방식이다. 두 갈래 모두 방향은 하나로 모인다. 이미 정보로 소비돼버린 장소보다, 아직 덜 알려진 경험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관광공사 관광데이터랩의 '2027 관광 트렌드 전망 및 분석' 보고서에서도 뒷받침된다. 보고서는 '지역다움(localness)'이 여행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여행지와 경험 방식, 소비 형태까지 로컬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관광데이터랩은 이 흐름을 '로컬 마이닝(Local Mining)'이라 이름 붙였다. 정형화된 관광 코스를 따라가는 대신, 지역이 품은 매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캐내려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인구 15만 명 미만 소도시를 찾은 내국인 여행객 수는 2023년 1~5월 3만8658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4만145명으로 늘었다. 지역별로는 강원 인제가 전년 동기 대비 40.3%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고, 영월(21.4%), 문경(10%), 산청(8.8%), 동해(8.2%)가 뒤를 이었다. 실제로 인제군은 곰배령 야생화 트레킹이나 여름밤 숲속 별빛 캠핑처럼, 대형 관광지 하나로 승부하기보다 계절별 소규모 체험 프로그램을 촘촘히 운영하는 방식으로 여행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정해진 코스를 도장 깨듯 도는 여행보다, 그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한두 가지 경험을 좇아 찾아가는 소도시 여행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소도시를 떠올리는 이미지 자체도 달라졌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소도시 관련 연관어로는 '여유로운', '조용한', '낭만', '고즈넉한', '특별한', '독특한' 등이 상위에 올랐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느림과 여백, 정서적인 경험을 기대하는 여행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변화를 이끈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정보 과잉이 있다. SNS로 관광지와 이동 동선, 사진 촬영 지점까지 여행 전에 다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정작 현장에서는 이미 본 적 있는 장면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기 쉬워졌다. 검색 한 번이면 비슷한 구도의 사진과 추천 코스가 반복적으로 뜨다 보니,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이 생긴 셈이다. 반면 오래된 빵집과 골목 카페, 독립 서점처럼 정보가 많지 않은 공간은 여행자가 우연히 발견하고 자기만의 동선을 짤 여지를 남긴다. 정보가 넘칠수록, 정보가 적은 공간에서 얻는 경험의 희소가치가 커지는 이유다.
사실 '로컬'이 관광업계 화두로 떠오른 건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한국관광공사는 앞서 2026년 관광 트렌드로 'D.U.A.L.I.S.M.'을 제시하면서 그 한 축으로 '로컬의 재창조(Local Re-creation)'를 꼽은 바 있다. 지역의 평범한 요소가 독창적인 관광 자원으로 재해석되는 현상을 뜻하는데, 지역 특산물이나 도시에서는 접하기 힘든 생활문화, 오래된 노포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이번에 발표된 '로컬 마이닝'은 이 흐름이 한 해 만에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더 구체적인 여행 행태로 굳어졌다는 걸 보여주는 후속 개념인 셈이다.
같은 보고서에서 관광공사가 함께 제시한 '개인 가치 스펙트럼'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여행자들이 무조건 아끼거나 무조건 쓰는 대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는 과감히 지출하고 나머지는 철저히 절약하는 이른바 'N극화' 소비를 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숙박은 최고급 시설을 고르면서 교통은 저가 항공이나 대중교통으로 아끼는 식의 소비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 로컬 마이닝 여행자들도 비슷하다. 유명 관광지 입장료나 이동 경비는 최소화하는 대신, 그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이나 로컬 브랜드 소비에는 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세대별로 여행에 기대하는 가치가 갈리는 점도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업계에서는 MZ세대에게 로컬 여행이 새로운 자극과 자기만의 서사를 만드는 감정 회복의 영역이라면, 중장년층에게는 익숙한 도시를 벗어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신체적 안정과 정서적 여유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 세대마다 소도시를 찾는 이유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정형화된 관광지 대신 자기만의 속도로 지역을 경험하려는 방향은 공통적이라는 분석이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기술과 로컬성, 콘텐츠와 감성 소비가 맞물리는 지금을 관광 생태계의 전환기로 평가하며, 앞으로는 로컬 자원을 얼마나 섬세하게 해석해 상품화하느냐가 지역 관광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이런 흐름은 반가운 신호다. 대형 랜드마크 하나 없이도 곰배령 트레킹이나 숲속 캠핑처럼 소규모 체험 프로그램만으로 여행객을 끌어들인 인제군 사례가 보여주듯, 막대한 예산을 들인 관광 인프라보다 지역 고유의 자원을 세심하게 다듬는 쪽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합친 워케이션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을 연결해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강원도와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연계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고 일정도 2박 3일부터 7박 8일까지 다양하다.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워케이션을 아예 정식 인사 제도로 도입하는 곳도 늘고 있어, 짧은 휴가로 스치듯 지나가는 여행 대신 한 지역에 머물며 일상처럼 소화하는 여행 방식이 당분간 더 확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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