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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신톈디 인근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유독 많이 찾는 장소가 있다. 화려한 상권과 맞닿은 골목에 남아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

중국의 무비자 정책 시행 이후 한국인 방문객이 크게 늘면서 이곳의 누적 방문객은 500만 명을 넘어섰다. 항저우와 충칭에 남아 있는 임시정부 유적에도 단체 관광객과 유학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상하이 황푸구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중국 내 대표적인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다.
황푸구 인민정부 자료를 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해마다 10만 명을 넘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연간 방문객이 2만 명을 밑돌았지만, 재개관 이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증가 폭은 중국이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 뒤 더욱 커졌다. 지난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방문객은 35만 명에 달했고 누적 방문객도 50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인 방문객 증가는 청사 주변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황푸구 측은 임시정부 청사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인근 신톈디 상권의 유동인구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청사를 둘러본 뒤 주변 상점과 음식점 등을 이용하는 관광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한국 대통령들이 여러 차례 찾은 장소이기도 하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모두 7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전·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들도 청사를 찾았다.
이 대통령은 올해 1월 중국 국빈 방문 당시 김혜경 여사와 함께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해 청사 건립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귀국 뒤 국무회의에서도 청사를 중요한 역사 시설로 언급하며 관리와 활용 방안을 챙겨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현재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전시시설 보수를 위해 문을 닫은 상태다. 휴관 기간은 8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로 광복절과 여름방학 기간이 포함됐다. 이번 공사는 지방정부의 기존 관리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시설 정비다.
관련 보도 등에 따르면, 보수 대상은 청사의 벽면과 지붕, 문과 창문 등이다. 건물의 기존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비하고,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홍보 영상도 한국어·중국어판과 영어 자막판으로 새로 제작할 예정이다.
현재 청사는 3층짜리 벽돌 건물 일부를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부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 공간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사용한 사무실, 관련 사료를 소개하는 전시 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회의와 업무, 생활이 한 건물 안에서 이뤄졌던 당시 임시정부의 활동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청사는 한중 양국의 협조로 1993년 복원됐고 이후 건물과 전시시설을 여러 차례 정비했다. 2001년에는 건물을 전면 보수하고 전시시설을 확충했으며, 광복 70주년을 맞았던 2015년에도 휴관 후 보수 작업을 거쳐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 진행 중인 공사까지 더하면 보존과 관람 환경 개선을 위한 정비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상하이와 가까운 항저우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옛터) 기념관을 찾는 한국인 방문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 유학생과 단체 관광객의 방문이 많고, 중국 현지 매체에서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항저우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기준으로 월간 방문객이 1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도 한국과의 문화·관광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재개관 30주년을 맞은 이곳은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관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충칭 진열관 측은 이곳을 양국 우호와 민간 교류를 잇는 공간으로 평가하며 한국과 충칭 사이 문화·관광 분야 협력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상하이와 항저우, 충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실제 활동했던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상하이를 떠난 임시정부가 여러 도시를 거쳐 충칭으로 이동했던 역사가 각각의 유적에 남아 있다. 한 도시의 기념관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임시정부의 이동 과정과 활동 범위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이들 유적의 특징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을 계기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출범했다.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마련하면서 정부 조직의 틀을 갖췄다.

임시정부는 행정부 역할만 한 조직이 아니었다. 임시의정원이 의회 기능을 담당했고, 기관지인 독립신문을 발행해 국내외에 독립운동 소식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렸다. 외교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한편, 독립운동 세력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도 맡았다.
현재 관광객이 찾는 상하이 마당로 청사는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사용한 여러 건물 가운데 하나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이곳에서 업무를 수행했고,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가 이뤄지던 시기에도 임시정부 활동의 중심 공간으로 사용됐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뒤 일본의 추적이 거세지면서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야 했다. 이후 항저우와 중국 내 여러 지역을 거쳐 충칭까지 이동하면서 활동을 이어갔다. 현재 상하이와 항저우, 충칭에 각각 남아 있는 유적은 이 같은 이동 과정의 주요 장면을 보여준다.
충칭에 도착한 뒤에는 독립운동의 군사적 기반도 강화했다.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광복까지 독립운동의 정치·외교·군사 활동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하이 청사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실제 업무와 생활을 이어갔던 공간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활동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국외 독립운동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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