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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절벽' 완화 신호탄…당국·은행권 협의 결과 주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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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요새 연애는 안 해?”라는 질문에 “굳이? 혼자가 편해”라는 답이 가장 먼저 돌아온다. 나 역시 취업 준비와 바쁜 일상 속에서 그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았기에 그 마음이 결코 남 일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내 또래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과연 이것이 그저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 변화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간경향이 보도한 한국·중국·일본·미국·스페인 5개국 청년 8,242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년의 55.4%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답해 대상국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성 청년은 60.8%, 남성 청년은 47.7%에 달했다. 이 묵직한 수치를 보며, 어쩌면 우리 세대의 ‘혼자가 편하다’는 고백은 정말 혼자가 좋아서라기보다 너무 많은 것을 견디고 난 뒤 만들어진 하나의 방어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연애 경험과 현실적 여건 사이의 아픈 고리였다. 같은 조사에서 밝힌 청년들의 경제·고용 실태 데이터에 따르면, 연애 경험이 없는 청년의 실업 비율(38.5%)은 경험이 있는 청년(12.9%)보다 확연히 높았고, 소득 하위 25% 청년층의 연애 무관심 비율(66.2%) 역시 상위 25%(37.5%)의 두 배에 달했다. 솔직히 나조차도 당장의 통장 잔고나 내일의 일상이 흔들릴 때,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꾸준히 이어갈 여유까지 내기는 쉽지 않았다. 숫자만으로 ‘돈이 없어서 연애를 안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연애는 이제 개인의 호감을 넘어 삶의 경제적·사회적 기반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무거운 일상이 되었다. 시간과 감정, 경제적 여유, 미래에 대한 안정감까지 함께 요구하는 하나의 생활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내 또래들은 정말 사랑을 포기한 걸까. 아니면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닫은 걸까. 이 길목에서 자주 언급되는 ‘회피형 애착’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게 된다. 물론 이를 20·30대의 연애 기피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정답처럼 볼 수는 없다. 다만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과 자기보호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관점은 될 수 있다. 가까워지는 관계에서 거절이나 상처를 피하기 위해 감정적 거리를 두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 연락의 속도를 신경 쓰고, 상대의 메시지 하나에 온갖 해석을 더하며 소모되던 감정 노동의 피로를 생생히 경험했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느라 숨이 차는 내게, 관계에서 오는 갈등까지 감당하는 것은 부담으로 느껴졌다. 연애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관계가 내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더 컸던 순간도 있었다.
나는 우리가 느끼는 이 경계심을 단순히 ‘회피형’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거나, 연애하지 않는 삶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나 스스로도 내 안의 불안과 방어막을 ‘쿨함’으로 포장했던 적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의 관계 방식은 하나의 유형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신뢰할 수 있는 관계와 안정적인 경험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 정작 내가 내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보았을 때 던져야 했던 질문은 “정말 혼자가 좋은가”가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내 삶을 흔들게 되는 것이 두려운가”였다.

결국 내가 느낀 지금의 20·30대는 결코 사랑을 싫어하는 세대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연애와 이별, 갈등과 실패를 미디어와 SNS를 통해 끊임없이 접하며 관계가 주는 행복만큼이나 그 위험도 이전보다 쉽게 학습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세대에 가깝다. 나를 흔들어놓을 관계의 위험 앞에서, 당장 내 삶을 지키려 문을 잠근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연애해야지”라는 사회적 당위가 아니다.
2030이 연애를 멈춘 것이 아니라, 연애가 삶을 흔들어도 감당할 수 있었던 여유가 줄어든 것은 아닐까.
필요한 것은 “왜 연애하지 않느냐”는 추궁도, “연애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어도 생계와 일상, 자존감까지 함께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안전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청년들이 사랑을 포기했는가’가 아니라, ‘왜 사랑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는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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