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수가 우리 동네 코스트코 소분모임에서 활동하는 것 같아요”

"저는 힙합 마니아입니다. 듀스 보컬, 작곡가, 프로듀서."

한 지역 커뮤니티 모임 프로필에 적힌 짧은 자기소개 한 줄이 온라인을 술렁이고 있다. 1990년대 한국 힙합의 문을 연 그룹 듀스, 그 듀스의 멤버인 이현도를 자처하는 인물이 동네 코스트코 소분모임에 종종 얼굴을 비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다.

이현도 / 이현도 인스타그램

이현도가 자기 동네 코스트코 소분모임에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에 20일 올라왔다. 글쓴이는 이현도로 추정되는 인물의 프로필을 캡처한 사진을 공개하며 "처음엔 가짜인 줄 알았는데 말투를 보면 볼수록 진짜인 것 같다", "회원카드는 안 만들고 소분모임에 종종 참여하신다"고 적었다.

공개된 프로필 화면에는 이용자 이름이 '이현도(x)'로 표시돼 있다. 해당 프로필의 자기소개란엔 "저는 힙합 마니아입니다 듀스 보컬, 작곡가, 프로듀서"라는 문구가 담겼다. 신뢰도를 나타내는 온도 지표는 37.8도로 표시됐고, '본인인증 완료' 표시와 함께 '궁동 인증 30회'라는 활동 지역 인증 기록도 붙어 있다. 궁동은 서울 구로구에 있는 동이다. 법정동인 궁동은 행정동 수궁동에 속해 있다. 가입일은 지난해 8월 29일, 모임 방문 횟수는 632회로 적혀 있어 꾸준히 활동해 온 흔적이 남아 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커클랜드, 델몬트 바나나 등 코스트코에서 파는 상품 사진을 올린 후기 게시글도 확인됐다.

듀스 멤버 이현도로 추정되는 인물의 프로필. / 인스티즈

프로필 속 인물이 실제 이현도 본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네티즌들은 활동 내역이 꾸준히 있었다는 점에서 대부분 이현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게시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자기소개가 솔직하다", "설마 우리 동네 코스트코일 줄 몰랐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화제의 중심에 오른 듀스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팀이다. 듀스는 이현도와 김성재 두 사람이 1993년 결성한 2인조 힙합·뉴잭스윙 그룹이다. 두 사람은 가수 현진영의 백댄서 팀 '와와'에서 춤을 추던 댄서 출신이다. 힙합을 전면에 내세운 팀을 표방하며 듀스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팀 안에서 이현도가 작사·작곡을 맡고 김성재가 안무와 코디네이션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1993년 4월 발표한 1집 '듀스(DEUX)'의 타이틀곡 '나를 돌아봐'가 크게 인기를 끌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전성기 시절의 듀스.

같은 해 내놓은 2집 '듀시즘(DEUXISM)', 1994년 '리듬 라이트 비트 블랙', 1995년 3집 '포스 듀스(FORCE DEUX)'까지, 듀스는 2년 남짓한 짧은 활동 기간에도 '우리는', '여름 안에서', '굴레를 벗어나', '사랑하는 이에게' 등 굵직한 히트곡을 남겼다. 특히 2집 '듀시즘'과 3집 '포스 듀스'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꼽힌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듀스는 단순한 인기 그룹을 넘어 한국 힙합의 물꼬를 튼 팀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가요계에 처음으로 이른바 '100% 랩곡'이 등장한 것도 듀스의 음반을 통해서였다. 2집 수록곡 '무제'는 국내 최초의 순수 랩 곡으로 기록돼 있다. 세련된 흑인음악 사운드와 완성도 높은 안무, 감각적인 패션까지 앞세운 듀스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9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끌었다. 오늘날의 아이돌 팬덤 문화가 자리 잡기 한참 전 이미 '듀시스트'라 불리는 열성 팬층이 형성됐을 정도였다. 지금도 여러 후배 힙합 뮤지션이 듀스와 이현도를 한국 힙합의 뿌리 가운데 하나로 언급한다.

이현도는 듀스에서 작사·작곡과 프로듀싱을 도맡으며 팀의 음악적 방향을 설계한 사실상의 두뇌였다. 정식으로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 초 현진영의 앨범에 자작곡 '너에게만'을 실으며 작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고, 이후 김성재와 함께 듀스를 만들며 가수 겸 프로듀서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현도 / 이현도 인스타그램

듀스는 1995년 해체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팀의 또 다른 축이었던 김성재가 세상을 떠났다. 솔로 데뷔 무대를 선보인 바로 다음 날인 1995년 11월 20일 김성재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을 둘러싼 의문은 지금까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연예계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홀로 남은 이현도는 이후 가수보다 프로듀서와 작곡가로서 존재감을 키웠다. 2000년 솔로 음반 '완전힙합'을 내놓으며 힙합·뉴잭스윙으로 돌아왔다. 이후 국내 뮤지션들의 곡을 만들고 다듬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동안 여러 방송과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특유의 입담과 음악 이야기로도 눈길을 끌었다.

이현도 / 뉴스1

그렇다면 코스트코 소분모임은 무엇일까. 소분모임은 코스트코, 이마트 트레이더스 같은 창고형 대형마트의 대용량 상품을 여러 사람이 함께 사서 인원수대로 나눠 갖기 위해 결성된 모임이다. 대용량이라 값은 상대적으로 싸지만 혼자서는 다 쓰기 어려운 제품을 필요한 만큼만 나눠 사서 부담을 던다는 것이 모임의 목표다.

이런 모임이 늘어난 배경에는 고물가와 1인 가구 증가가 있다. 창고형 마트 상품은 한 번에 사기엔 양이 너무 많아 자취생이나 1~2인 가구는 사놓고도 다 먹지 못해 버리는 일이 잦다. 많이 사면 싸다는 판매 구조와 적게 먹는 소비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방식으로 소분모임이 자리 잡은 셈이다. 실제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삼겹살처럼 대용량으로 파는 제품을 시중 마트보다 저렴하게 나눠 살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새로운 이웃과 정보를 주고받는 재미까지 더해지면서 소분모임은 절약형 소비를 넘어 하나의 동네 커뮤니티로도 굴러가고 있다.

코스트코 / 뉴스1

운영 방식은 단순하다. 모임 채팅방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에 사고 싶은 품목과 장 볼 날짜를 올려 참여자를 모은다. 정해진 날 매장에서 만나 함께 장을 본 뒤 계산대나 매장 입구, 푸드코트 등에서 물건과 비용을 나눈다. 영수증을 확인하고 각자 자기 몫만큼 입금하면 거래가 끝난다. 소분 품목은 고기·연어 같은 신선식품부터 빵, 치즈, 소스,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소분모임은 코스트코 회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하나의 통로가 된다. 코스트코에선 연회비를 내고 회원카드를 만들어야 구매할 수 있다. 회원권이 없는 이웃이 소분모임이나 대리구매를 통해 원하는 상품을 나눠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스티즈 글쓴이가 프로필 주인공을 두고 "회원카드는 안 만들고 소분모임에 참여한다"고 적은 대목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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