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물 넣지 마세요”… 출시하자마자 동났다는 ‘냉수 전용 라면’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달, 일본 라면업계에 이색적인 품절 대란이 벌어졌다.

X 캡처.

세계 최초의 컵라면을 만든 닛신식품이 뜨거운 물 대신 차가운 물을 부어 먹는 '냉수 전용' 컵누들을 전국 매장에 내놓자마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무더위에 뜨거운 물을 끓이는 것조차 꺼려지는 여름철, 상식을 뒤집은 발상 하나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 셈이다.

5년 연구 끝에 나온 '거꾸로 컵라면'

닛신식품이 지난달 20일 전국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새롭게 선보인 '차갑게 먹는 컵누들(冷しカップヌードル)'은 이름 그대로 뜨거운 물을 붓지 않는 컵라면이다. 앞서 지난 7월 13일 신제품 출시 계획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정확히 일주일 뒤인 20일 전국 매장에 실제로 풀린 것이다.

일본 IT·라이프스타일 매체 ASCII.jp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닛신식품이 이날 '차갑게 먹는 컵누들' 2종을 출시했다고 전했다. 매콤한 김치맛(ピリ辛キムチ味)과 닭소금 레몬맛(鶏塩レモン味) 두 종류로 나왔으며, 희망소매가는 세금 별도 285엔, 세금 포함으로는 307엔이다. 포장 겉면에는 '뜨거운 물 금지', '냉장고에 차게 둔 냉수 전용, 5도에서 10도 권장', '차가운 물로 5분'이라는 안내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 기존 컵라면과는 정반대의 조리법을 쓴다.

이 제품의 핵심은 찬물만으로 면을 익힐 수 있도록 개발된 특허 기법 '콜드 리하이드레이트(Cold Rehydrate)' 공법이다. 보통 컵라면은 뜨거운 물을 부어야 튀김면이 수분을 흡수하며 익는데, 이 공법은 찬물만으로도 면이 쫄깃하게 복원되도록 만들어 뜨거운 물로 면을 익힌 뒤 얼음으로 식히는 번거로운 과정 자체를 생략할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을 확립하기까지 닛신식품은 무려 5년에 걸친 연구개발 기간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시 직후 매대 동나… 일본 언론도 주목

일본경제신문의 7월 31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이 제품은 올여름 이어진 기록적인 폭염과 맞물려 출시 직후부터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현지 편의점과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추면서, 이 제품을 구하기 위해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는 소비자들의 후기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본 여행객과 구매대행 업체를 통해 소량씩 들어오는 물량에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20일 일본에서 출시된 ‘차갑게 먹는 컵누들'. / 닛신식품 홈페이지 캡처.

이번 흥행 뒤에는 닛신식품 특유의 뚝심 있는 개발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958년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1971년에는 세계 최초로 컵라면을 개발한 닛신식품은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 회장 때부터 3대에 걸쳐 "성공한 브랜드를 스스로 무너뜨려라"는 경영 철학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번 냉수 전용 컵누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컵라면의 상식이었던 '뜨거운 물'이라는 조리법 자체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닛신식품에는 실패를 오랜 시간 붙들고 다시 성공시킨 전례도 있다. 1975년 처음 선보인 즉석 컵밥은 "밥은 집에서 지어 먹는 것"이라는 당시 소비자 인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출시 1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후대 경영진은 이 아이디어를 버리지 않고 전자레인지 조리 기술 등을 접목해 개량을 거듭했고, 2010년 다시 선보인 '컵누들 고한'은 판매 며칠 만에 품절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한때 전체 즉석면 시장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던 즉석 컵밥 시장에서 닛신은 현재 점유율 약 80%를 차지하며 연 매출 200억 엔(약 1800억 원) 규모의 주력 사업으로 키워냈다.

2013년 내놓은 컵카레라이스 역시 "밥과 카레가 처음부터 섞여 있어 카레라이스라 부를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비판에 직면했지만, 닛신식품은 이를 외면하지 않고 제품명과 디자인을 전면 재창조해 '카레메시'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재탄생시켰다. 이 제품은 2025년 즉석 양념 컵밥 부문에서 세계 1위로 기네스 인증을 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닛신식품이 내세우는 '이해 불가능한 새로움'이라는 개발 철학이 이번 냉수 전용 컵누들의 흥행으로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익숙한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깨는 시도가, 실패와 성공을 오가면서도 결국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폭염이 만든 '역발상 라면'…실제 써본 소비자 반응도 긍정적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 일본 각지의 낮 최고기온은 예년보다 높은 수준을 이어갔고, 열대야가 계속되는 지역도 적지 않았다. 이런 폭염 속에서는 뜨거운 물을 끓여야 하는 기존 컵라면 대신, 실온이나 냉장고에 둔 물만으로 조리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제품을 구입해 먹어본 소비자들의 후기를 보면, 뜨거운 물로 익힌 뒤 얼음을 넣어 식히는 기존 냉라멘류와 달리 별도의 냉각 과정 없이도 꽤 쫄깃한 면발을 즐길 수 있었다는 반응이 다수를 이룬다. 국물 역시 차가운 온도에서도 김치의 매콤함과 닭 육수의 감칠맛, 레몬의 상큼함이 살아 있어 한여름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격 면에서도 307엔이라는 책정은 기존 컵누들 정규 라인업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원화로 환산하면 2800원 안팎이다.

SNS 타고 확산된 화제성…경쟁사도 촉각

이번 품절 대란은 일본 SNS를 통해서도 빠르게 퍼졌다. 냉수 전용 컵누들을 구매하지 못해 여러 매장을 돌았다는 인증 글과, 실제로 찬물만 부어 5분 만에 완성한 조리 과정을 담은 영상이 잇따라 공유되면서 화제성을 키웠다. 특정 식품이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오프라인 매대 품절로 이어지는 현상은 최근 몇 년간 일본 편의점·식품업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닛신식품의 경쟁사들도 여름철 조리 편의성을 앞세운 신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염이 일상화되는 기후 변화 속에서, 조리 시간과 열 노출을 최소화한 식품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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