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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시장과 횟집 앞에 어김없이 걸리는 문구가 있다. '가을 전어'다. 값을 따지지 않고 사 먹는 생선이라는 뜻에서 이름조차 돈 전(錢) 자를 써 '전어(錢魚)'라 불렸을 정도로, 예로부터 그 맛을 인정받아 온 생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철이 돌아왔다.

전어는 사실 한겨울을 빼면 일 년 내내 잡히는 생선이다. 그런데도 유독 가을 전어를 최고로 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봄에 부화한 전어가 여름 내내 몸집을 불리다, 산란을 앞둔 가을이 되면 지방을 몸속에 잔뜩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전어는 살에 기름기가 올라 고소한 맛이 절정에 이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전어를 두고 "돈이 아깝지 않은 물고기"라고 적었고, 그의 또 다른 저서 '임원경제지'에는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머릿속 기름기가 참깨를 뿌린 듯 고소하다는 뜻으로, 가을 전어의 맛을 예찬한 옛 문헌 속 표현이다.
가시가 억센 것도 가을 전어의 특징 중 하나다. 봄과 여름을 지나며 뼈가 단단해지기 때문에, 가을 초입에는 살이 연해 회로 먹기 좋고 가을이 깊어질수록 가시가 억세져 구이로 먹기에 적당해진다는 게 미식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뼈째 먹는 생선인 만큼 오히려 이 억센 가시 덕분에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배가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역에 따라서는 전어가 본격적으로 살이 오르는 시기를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남해와 서해 일대에서는 9월 초중순을, 서울과 수도권 시장에서는 이보다 조금 늦은 9월 말에서 10월 초를 전어가 가장 맛있는 시기로 꼽는 경우가 많다.
영양학적으로도 전어는 손에 꼽히는 가을 보양식이다. 뼈째 먹기 때문에 칼슘과 인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적이고, DHA와 EPA 같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두뇌 건강과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살이 오른 가을 전어는 지방 함량이 높아지면서 특유의 고소한 맛이 두드러지는데, 이 지방 성분이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주는 불포화지방산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전어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로 꼽힌다.
가을 전어 하면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를 맡으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다. 이 표현의 원형은 중국과 일본에서 전해 내려온 전어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학계 설명이다. 중국에서는 산에서 도를 닦던 장모가 사위가 구워주는 전어 냄새를 맡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속세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선의 삶조차 포기할 만큼 전어 맛이 뛰어나다는, 미식을 예찬하는 성격이 강한 설화다. 일본에는 딸을 지키기 위해 관 속에 전어를 함께 태워 화장하는 척 위장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전어를 뜻하는 '고노시로(コノシロ)'라는 이름이 시신을 태울 때 나는 냄새와 연결돼 불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설화가 한반도로 전해지며 한국식으로 각색된 것이 지금의 속담이다.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다 집을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시어머니가 죽어 화장하는 줄 알고 반가워하며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세월이 흐르며 앞뒤 맥락은 사라지고 "전어가 너무 맛있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홍보성 문구로 단순화됐다는 게 국립민속박물관 등의 설명이다. 원래는 다소 씁쓸한 고부 갈등 설화였지만, 지금은 그만큼 가을 전어 맛이 뛰어나다는 뜻으로만 남아 매년 가을 전어 상인들의 단골 홍보 문구로 쓰이고 있다. 전어라는 이름 자체에도 비슷한 맥락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 있다. 값을 따지지 않고 사 먹을 만큼 맛있는 생선이라는 뜻에서 '돈 전(錢)' 자를 붙였다는 유래담이 함께 전해지는데, 결국 이름과 속담 모두 같은 메시지, 즉 가을 전어의 맛이 그만큼 특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전어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회와 구이로 나뉜다. 가을 초입처럼 가시가 아직 억세지 않은 시기에는 뼈째 썰어 먹는 세꼬시나 회무침으로 즐기기 좋다. 비늘과 머리, 내장을 제거한 뒤 뼈째 얇게 포를 떠, 채 썬 무와 배, 풋고추, 깻잎, 쪽파 등을 넣고 초고추장으로 무치면 새콤달콤한 전어회무침이 완성된다. 다만 회로 먹을 때는 반드시 신선도가 확인된 활어나 급랭 처리된 제품을 이용하고, 위생적으로 손질된 곳에서 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 날생선에는 기생충 감염 위험이 있는 만큼, 가정에서 직접 회를 뜰 때는 손질 도구와 도마를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

구이는 손질이 한결 간단하다. 비늘을 꼬리에서 머리 방향으로 긁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한 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이후 굵은 소금을 골고루 뿌려 20~30분 정도 재워두면 살이 단단해지고 밑간이 배어든다. 너무 오래 절이면 짜질 수 있어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소금물에 헹궈 짠기를 덜어낸 뒤 물기를 제거하고, 달군 팬에 기름을 둘러 처음엔 센 불로 겉면을 익힌 뒤 중강불로 낮춰 타지 않게 노릇하게 굽는다. 전어 자체에서도 기름이 배어 나와 촉촉하게 잘 익는데, 마무리로 들기름을 한 스푼 둘러주면 비린내를 잡고 고소한 풍미를 더할 수 있다.
뼈째 먹는 생선인 만큼 속까지 완전히 익도록 충분히 구워야 씹는 맛이 살아난다는 게 미식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전어는 크기가 작아 손질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통째로 구워 머리부터 꼬리까지 뼈째 먹는 것이 정석으로 통한다. 실제로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바삭하게 구운 전어 머리를 따로 즐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을 전어는 흔히 회와 구이 외에도 조림이나 튀김, 젓갈로도 즐긴다. 굵은 뼈까지 씹어 먹는 세꼬시나 통구이가 부담스럽다면, 전어를 통째로 밀가루에 묻혀 튀긴 뒤 매콤한 양념에 버무리는 튀김 요리도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최근에는 바다 수온이 오르면서 전어 서식지가 북상하고, 정작 가을에는 어획량이 줄어드는 이상 현상도 보고되고 있다. 전어가 서식하기 알맞은 수온은 15도에서 18도 사이인데,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서 여름철 어획량은 늘고 정작 제철인 가을 어획량은 줄어드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전어의 진짜 제철이 가을에서 여름 쪽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서늘한 바람과 함께 상에 오르는 노릇한 전어구이 한 접시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가을을 실감하게 하는 계절 음식으로 남아 있다. 값을 따지지 않고 먹었다는 옛 이름처럼, 살이 오른 가을 전어 한 상이 올 가을 밥상에도 반가운 손님으로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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