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에게 GPS 달아봤더니… 놀랍게도 '여기' 위로는 절대 날지 않았다

과거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 장의 지도가 있다.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러시아 남부, 중동의 거친 사막, 아프리카 동북부까지 지구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듯한 보라색 선들이 빼곡하게 그려진 지도다. 이 지도는 처음 '한 마리의 독수리가 무려 20년 동안 비행한 궤적'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퍼졌고, 수많은 사람에게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 감동적인 사연의 절반은 번역 오류가 만들어낸 촌극이자 가짜 뉴스였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야생의 '진짜 경이로운 과학'을 담고 있었다. 과장된 소문이 걷힌 자리에 남은 진짜 팩트는 과연 무엇일까. 또 이 지도가 보여주는, 독수리가 생사를 걸고 절대 날아가지 않았던 '그곳'의 비밀은 무엇일까. 팩트체크를 통해 전 세계를 속인 이 흥미로운 비행의 전말을 파헤쳐 본다.

GPS 부착된 독수리. / Elena Schneider 페이스북

"20년을 날아다닌 독수리?" 전 세계를 속인 가짜 뉴스(?)의 시작

2019년쯤 전 세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복잡한 궤적이 그려진 한 장의 지도가 급속도로 확산했다. 게시물들은 한결같이 '위치추적기(GPS)를 단 독수리 한 마리가 20년 동안 비행한 경로'라고 설명했다. 대륙을 넘나드는 방대한 비행거리에 네티즌들은 경악했고, 해당 게시물은 수만 번 이상 공유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야생동물 전문가들과 글로벌 팩트체크 기관들이 나서서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1990년대 후반의 배터리 기술력으로는 새의 등 위에 매달아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초소형 GPS 추적기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지도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이 지도는 미국지질조사국(USGS) 소속의 야생동물 생물학자 토드 카츠너 박사 연구팀과 고(故) 예브게니 브라긴을 비롯한 카자흐스탄의 조류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생태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연구진은 2018년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에서 멸종 위기종인 '어린 초원수리' 20마리를 포획해 태양광으로 충전되는 소형 GPS-GSM 추적기를 부착했다. 그리고 이들이 약 8~10개월 동안 이동한 경로를 수집하여 하나의 지도에 합쳐 놓은 것이다. 즉, 지도 위에 그려진 수많은 보라색 선들은 1마리의 20년 기록이 아니라, 20마리의 개별적인 비행 궤적이 겹쳐져 만들어진 집단 이동의 기록이었다. 아랍권에서 처음 이 연구 결과가 공유될 때 "20마리(20 eagles)"가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20년(20 years)"으로 와전되면서 이 거대한 오해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발견된 진실의 조각

과학자들의 연구실 컴퓨터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할 이 지도가 대중에게 널리 공개된 계기는 꽤 극적이었다.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사막 지역에서 파하드 카쉬라는 이름의 남성이 우연히 모래 위에 죽어 있는 맹금류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독수리 20마리의 8-10개월 간의 이동 경로. / Elena Schneider 페이스북

죽은 독수리의 등에는 작은 기계 장치가 단단히 매달려 있었고, 장치에는 소유자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남성은 이 장치가 동물의 위치를 추적하는 GPS 기기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 안에 저장된 데이터를 확인했다. 그가 확인한 데이터에는 이 새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부터 험준한 중동을 거쳐 날아온 엄청난 장거리 비행 기록이 담겨 있었다. 남성은 이 놀라운 사실을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올렸다.

이 소식은 곧바로 화제가 됐고, 과거 카츠너 박사 연구팀이 발표했던 '20마리의 초원수리 추적 지도'와 맞물리면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비록 한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이 발단이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묵묵히 진행되던 조류학자들의 훌륭한 연구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궤적이 밝힌 진짜 과학...바다를 완벽히 빗겨간 비행

추적 기간과 개체 수에 대한 정보는 번역 오류로 잘못 알려졌지만, 이 지도가 품고 있는 가장 놀라운 시각적 팩트 하나는 100% 진실이었다. 지도의 궤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20마리의 초원수리들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절대로 위를 통과하지 않는 구역들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바로 카스피해, 흑해, 홍해, 그리고 페르시아만과 같은 '거대한 수역(바다와 큰 호수)'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카자흐스탄에서 목적지인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횡단하는 것이 직선거리상 훨씬 가깝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초원수리들의 비행 궤적은 기가 막힐 정도로 물줄기를 우회하여 육지와 해안선의 윤곽을 따라 빽빽하게 이어져 있다. 일부 개체들은 중동의 사막 지역에서 비행을 멈췄고, 다른 개체들은 아프리카 지역까지 깊숙이 내려갔다가 이듬해 다시 중앙아시아의 번식지로 돌아갔지만, 단 한 마리도 넓은 바다를 횡단하는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다.

독수리와 GPS. / Elena Schneider 페이스북

그렇다면 독수리들은 왜 그토록 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굽이굽이 육지로만 날아다녔을까. 물에 빠질까 봐 무서워서였을까. 이 질문의 해답은 대형 맹금류의 독특한 비행 방식과 지구의 대기과학이 정교하게 얽힌 생존의 비밀에 숨어 있다.

투명 엘리베이터, '열 상승기류'의 마법

초원수리를 비롯한 대형 맹금류는 체격이 크고 날개가 넓으며, 몸무게도 수 킬로그램에 달한다. 이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며칠, 길게는 몇 달에 걸쳐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극한의 고난이다. 만약 작은 참새나 까마귀처럼 쉴 새 없이 날갯짓(Flapping)을 하며 날아간다면, 맹금류는 며칠 가지 못해 에너지가 고갈되어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장거리 이동 시 에너지를 극도로 절약하기 위해 대자연이 제공하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바로 '열 상승기류'다.

낮 동안 태양열이 땅을 강하게 내리쬐면 지표면이 뜨겁게 달궈진다. 이때 지표면과 맞닿아 있는 공기 역시 데워지며 주변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하늘 위로 빠르게 솟아오르는 기둥 형태의 강한 상승 바람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열 상승기류다.

독수리는 넓은 날개를 활짝 펴고 이 상승기류 기둥 속으로 유유히 진입한다. 그리고 날갯짓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기류를 타고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돌며 수백, 수천 미터 상공까지 공짜로 솟아오른다. 충분한 고도에 도달하면 기류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미끄러지듯 활공한다. 고도가 다시 떨어지면 또 다른 열 상승기류를 찾아 타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상승'과 '활공'의 무한 반복이 바로 거대한 몸집의 독수리들이 지치지 않고 험난한 대륙을 횡단할 수 있는 유일한 비행 비법이다.

바다 위는 '죽음의 함정'

바로 이 지점에서 지도의 미스터리가 명쾌하게 풀린다. 생명줄과도 같은 이 '열 상승기류'는 태양에 의해 쉽게 달궈지는 '육지' 위에서만 주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광활한 바다.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바다나 거대한 호수 같은 물은 비열이 커서 육지처럼 태양열에 의해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바다 위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위로 솟아오르는 열 상승기류가 거의 발생하지 않거나 매우 약하다.

만약 초원수리가 지름길을 택하겠다며 호기롭게 넓은 카스피해나 홍해 위로 날아오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육지에서 얻은 고도로 활공을 시작하겠지만, 바다 상공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고도는 뚝뚝 떨어진다. 자신을 다시 하늘 높은 곳으로 올려줄 '상승기류 엘리베이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바다 한가운데서 고도를 완전히 잃은 독수리는 자신의 근력만으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야 한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넓은 바다를 오직 날갯짓만으로 건너는 것은 상상 이상의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구한다. 결국 에너지가 바닥난 독수리는 더 이상 날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그대로 차가운 바다로 추락해 익사하거나 탈진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즉, 대형 맹금류에게 열 상승기류가 없는 넓은 바다 위를 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독수리의 DNA에는 수만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이 무서운 생존의 법칙이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바다를 철저히 피해 상승기류가 풍부하게 발생하는 육지를 따라서만 이동하는 것이다. 지도의 궤적이 카스피해와 페르시아만의 해안선을 따라 절묘하고 날카롭게 꺾여 있는 이유는, 이 새들이 지구의 공기 역학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순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 모든 물을 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독수리들은 물 한 방울이라도 있으면 절대 건너지 못하는 '물 공포증'에 걸린 것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맹금류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최대 활공 거리로 한 번에 통과할 수 없는 거대한 면적의 수역'이다. 폭이 좁은 해협이나 일반적인 강, 작은 호수 정도는 육지에서 얻은 상승기류의 고도와 초기 추진력만으로도 충분히 활공하여 넘어갈 수 있다. 비행 중 추진력이 다소 부족해지면 잠시 날갯짓을 섞어 위기를 극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스피해나 홍해처럼 폭이 수십,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바다는 활공의 한계 거리를 아득히 벗어난다. 따라서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중동 지역의 좁은 육지 병목 구간인 수에즈 지협이나 바브엘만데브 해협 같은 특정한 틈새를 찾아 비행한다. 이동 시기가 되면 이 좁은 길목에 수백, 수천 마리의 맹금류 무리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동하는 이른바 '병목 현상'이 관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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