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이런 날이…요즘 편의점 품절대란으로 난리 난 '빵'의 대반전 정체

편의점에서 빵 하나 사려다 매장 재고 확인 앱이 먹통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정작 빵보다 그 안에 무작위로 들어있는 책갈피 한 장에 더 열광하고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가 출판사 민음사와 손잡고 내놓은 이른바 '민음사빵'이 중장년층까지 회자되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GS25 편의점. / shufilm-shutterstock.com

GS25는 지난 21일 민음사 협업 베이커리 '사랑에 대하여'(모카번 커스타드맛)와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깨찰빵 솔티밀크맛) 2종을 처음 선보였다. 이 두 제품은 전날까지 10만개가 팔려나갔고 GS25 전체 빵류 매출 1위와 2위에 나란히 올랐다. 모바일 앱에서는 재고가 뜨자마자 사라지는 이른바 '품절 대란'이 벌어졌다. 인기가 이어지자 GS25는 26일 '오만과 편견'(모카번 우유크림맛)과 '나쁜 소년이 서 있다'(깨찰빵 커스타드맛) 2종을 추가로 내놨다.

이 빵들에는 총 20종의 책갈피가 무작위로 하나씩 들어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작품을 활용한 책갈피 15종과 시집 작품을 활용한 책갈피 5종으로 구성했다. 빵을 사는 순간 어떤 작품의 책갈피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수집욕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앱 검색량 20만건, 오타까지 쏟아졌다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우리동네GS 앱에서 '민음사 빵' 관련 누적 검색량은 약 20만건에 달했다. 정확한 이름 대신 '사랑에대허요', '믿음사깨찰빵'처럼 오타가 섞인 검색어까지 대거 올라왔을 정도로 실시간 검색 경쟁이 치열했다.

GS25 '민음사 빵'. 민음사빵은 세계문학전집 책갈피를 무작위로 넣은 편의점 콜라보 상품으로, 짧은 영상에 지친 젊은 세대가 종이책과 문학을 취향으로 소비하는 '텍스트힙' 트렌드를 타고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 GS리테일 제공

소비자들은 매장을 일일이 돌아다니기보다 앱에 재고가 뜨는 순간을 포착해 곧바로 주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21일부터 24일까지 전체 판매량의 약 46%가 앱을 통한 픽업 주문으로 팔려나갔다. 독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재고를 새로고침하다 상품이 뜨자마자 매장으로 달려갔다는 후기, 매장에서 재고를 찾지 못해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한꺼번에 여러 개를 시켰다는 경험담이 잇따라 올라왔다. 첫 출시작인 '사랑에 대하여'와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는 입고 물량의 약 95%가 팔려나갈 정도로 실제 매대에서 물건을 구경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빵값은 3000원인데 책갈피는 5000원

품귀 현상은 중고거래 시장으로까지 번졌다. 출시 직후부터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특정 작품의 책갈피를 서로 맞교환하거나 낱장으로 판매하는 게시물이 줄줄이 올라왔다. 빵 가격은 3000원 안팎이지만 원하는 책갈피 한 장이 5000원에 거래되는 사례까지 나왔다. 정가보다 비싼 값에 낱장이 팔리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구체적인 거래 수치는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출시 이후 관련 검색량과 판매·교환 게시물이 단기간에 눈에 띄게 늘었다고 밝혔다. 편의점에서 산 빵으로 얻은 책갈피가 원하는 종류를 찾기 위해 다시 중고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2차 수집 시장'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당근에서 '민음사 빵' 검색한 화면.

왜 하필 '책'이었나

이러한 방식의 랜덤 굿즈 마케팅이 낯선 건 아니다. 과거 '포켓몬빵'에 들어있던 '띠부띠부씰'이 전국적인 품절 사태를 일으킨 전례가 있다. 다만 당시에는 캐릭터 스티커가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문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책 표지 자체가 하나의 수집 아이템이자 취향을 드러내는 소재로 떠오른 것인데, 그 배경에는 글을 읽는 행위 자체를 개성과 취향으로 즐기는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가 자리한다.

책을 직접 읽지 않더라도 문학 작품의 표지나 문장을 소장하고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흐름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서점가에서는 표지 디자인이 화제가 된 소설이나 시집이 역주행하는 사례가 잇따랐고, 온라인상에서는 문장을 캡처해 공유하는 게시물이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편의점 빵과 문학 굿즈의 결합은 이런 흐름이 소비재 시장까지 확장된 결과로 볼 수 있다.

GS25 관계자는 최근 확산하는 텍스트힙 트렌드에 맞춰 민음사와 협업해 상품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문학 콘텐츠와 소장 가치가 있는 굿즈를 결합한 점이 고객들의 관심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자녀 세대 트렌드, 부모 세대까지 옮겨붙나

이 현상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 주체가 2030세대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나 조카를 통해 이 열풍을 접한 중장년층 소비자들도 손자녀나 자녀에게 선물하기 위해, 혹은 직접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향수로 빵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유통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실제로 세계문학전집은 과거부터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려온 만큼,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에 익숙함을 느끼는 40대 이상 소비자층도 상당하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이런 협업 상품이 단순히 한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향후 다른 출판사나 문화 콘텐츠와의 협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GS25가 추가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이 같은 방식의 시리즈 확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물량 조절 실패로 인한 품절 반복이나 중고 거래 시장의 웃돈 거래가 과도해질 경우 소비자 피로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텍스트힙' 독서 열풍. / 뉴스1

'텍스트힙'이란 대체 무슨 뜻인가

이번 민음사빵 열풍의 배경으로 꼽히는 '텍스트힙(Text Hip)'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개성 있고 멋지다는 뜻의 '힙(Hip)'을 합친 신조어다. 과거에는 값비싼 명품이나 화려한 여행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읽는 모습이나 카페에서 시집을 펼쳐둔 장면,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친 사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취향을 드러내는 흐름이 자리 잡았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자기표현 수단으로 통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책'으로 눈을 돌린 이유

이런 흐름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처럼 1분 안팎의 짧고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면서,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종이책이 오히려 새로운 휴식처로 주목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건도 결정적 계기로 꼽힌다. 문학을 읽고 이야기하는 행위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문화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남들과 똑같은 옷이나 소품을 소비하는 대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이 더 개성 있는 자기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책 읽는 방식도 달라졌다

요즘 젊은 세대는 책을 혼자 조용히 읽고 끝내지 않는다. 대형서점 대신 골목에 자리한 소규모 '독립서점'을 찾아가 주인의 취향대로 큐레이션된 책을 구경하고 서점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이 늘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자신이 읽은 책 사진이나 마음에 든 문장을 직접 손글씨로 옮겨 적은 '필사' 사진을 올리며 소통하는 '북스타그램' 계정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인끼리 모이던 예전 독서모임과 달리, 비용을 지불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지정 도서를 읽고 토론하는 유료 독서모임도 인기를 끄는 중이다. 편의점 빵 안에 무작위로 들어간 책갈피 하나를 두고 이토록 치열한 수집 경쟁이 벌어진 배경에는 이 같은 텍스트힙 트렌드가 자리하고 있다.

'민음사 빵' 인스타그램 검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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