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도 아닌 한국 바다서 이런 물고기들이 잡히다니... 그것도 뜰채로

알록달록한 나비고기와 두동가리돔 파랑돔이 한 화면에 뒤엉켜 헤엄친다. 오키나와나 필리핀의 산호초 바다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 풍경이 담긴 곳은 국내 남해안의 한 방파제 안쪽이다. 깊은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간 것도 아니고 항구 안에서 뜰채 하나로 건져 올린 결과다.

유튜브 채널 'TV생물도감'을 운영하는 김준영씨가 지인들과 최근 열대 해수어를 채집하기 위해 남쪽 바다를 찾아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김씨는 그동안 나비고기와 두동가리돔을 노리고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눈으로만 확인하고 채집에는 실패했다. 올해 이 물고기들이 국내 바다에 유독 많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채비를 꾸렸다.

유튜버 김준영과 일행이 채집한 물고기들. / TV생물도감' 유튜브

뜰채에 담긴 열대 바다의 손님들

촬영 당일은 폭염 경보가 내려질 만큼 무더웠다. 김씨는 뜨거워진 바닷물 덕분에 오히려 진기한 생물이 많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채집 방식은 단순하다. 방파제 직벽에 뜰채를 대고 해초가 붙은 벽면을 살살 긁어 은신한 생물을 몰아내는 식이다.

첫 뜰채부터 해마가 걸려 나왔다. 말 머리를 닮아 '바다의 말'로 불리는 해마는 실고깃과의 실구조 생물로 직립 수영을 하며 꼬리로 해조류를 감아쥐는 독특한 습성을 가졌다. 수컷이 배에 있는 보육낭(육아낭)에서 알을 품어 부화시킨 뒤 새끼를 낳는 독특한 생태적 특성으로 유명하다. 흔히 희귀종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국내 연안의 해조류 군락지에서도 그렇게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다만 몇 해 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터라 함부로 잡거나 담아 두면 안 된다. 김씨 일행은 우연히 들어온 해마를 곧바로 놓아줬다.

해마 / 'TV생물도감' 유튜브 채널

돌돔의 어린 개체도 모습을 드러냈다. 돌돔은 성체가 되면 암갈색으로 변하며 단단한 치판과 강한 턱 힘으로 성게 소라 전복 같은 딱딱한 피복 생물을 깨먹는 바다의 폭군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유어 시기에는 노란 바탕에 선명한 7개의 검은 세로 줄무늬가 뚜렷하게 남아 있어 관상용 열대어 못지않게 아름답고 화려하다. 이 역시 수산자원보호법상 잡을 수 있는 크기가 정해진 금지 체장 대상이라 곧바로 다시 풀어줬다.

주의해야 할 생물도 있었다. 등지느러미 가시에 강한 독선(毒腺)을 지닌 미역치다. 미역치는 연안의 암초나 구조물 주변에 주로 거주하며 수줍음이 많아 바위틈에 숨어지내지만 위협을 느끼면 지느러미 가시를 뼛속까지 세워 강력한 신경독을 주입하는 무서운 생물이다.

김씨는 "미역치에 쏘이면 극락 간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함께 채집에 나선 지인은 과거 한 번 쏘인 뒤 세 시간 동안 손 전체가 통증과 함께 부어올라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알레르기 반응이나 국소 부종이 심하면 응급실까지 가야 할 수 있는 만큼 작더라도 절대로 손대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겨울 오면 죽는 '사멸회유어'란

이날 김씨가 노린 나비고기와 두동가리돔은 모두 사멸회유어(死滅回遊魚)에 해당한다. 사멸회유어는 본래 열대와 아열대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알이나 치어가 난류를 타고 엉뚱한 곳까지 흘러온 경우를 가리킨다. 스스로 해류를 거슬러 헤엄칠 힘이 없는 알과 갓 태어난 새끼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쿠로시오 해류에 휩쓸려 국내 해역까지 올라오는 것이다.

수온이 높은 여름과 가을에는 이 물고기들이 국내 바다에서도 그런대로 살아간다. 문제는 겨울이다. 수온이 떨어지면 열대 출신 물고기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저수온에 의한 기능 마비로 그대로 죽는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회유가 아니라 도착지에서 생을 마감하기에 '사멸회유'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는 회유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효분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번식이 불가능하고 죽음에 이르러 종의 진화나 생존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흐름은 지구온난화로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매년 반복돼 왔다. 다만 최근 들어 수온 상승 속도가 빨라지면서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겨울에도 폐사하지 않고 남해안이나 제주도의 따뜻한 바위틈에서 살아남는 개체가 종종 확인되고 아예 국내에 정착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씨가 이날 잡은 꼬리줄나비고기가 대표적이다. 꼬리줄나비고기는 노란색 몸통에 눈을 지나는 검은 띠와 꼬리 자루 부분의 주황색 테두리가 특징인 나비고깃과의 해수어로 국내 연안에 출현하는 나비고기 가운데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종이다. 원래는 여름에 왔다가 겨울에 사라졌지만 요즘은 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눈에 뜬다. 정착 여부를 두고는 학계의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꼬리줄나비고기 / 'TV생물도감' 유튜브 채널

김씨는 낮에 채집을 감행한 이유도 밝혔다. 나비고기류는 낮에 활동하며 시각에 의존해 먹이를 찾는 주행성 어류라 민첩하여 잡기가 훨씬 어렵다. 야간에 노리면 색이 옅어진 채 바위틈에서 잠을 자므로 한결 수월하지만 물고기 본연의 화려한 색감을 온전히 화면에 담으려면 밝은 낮에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씨는 양쪽에서 뜰채로 몰아붙이는 기술을 동원해 꼬리줄나비고기를 잇달아 건져 올렸다.

해마부터 거북복까지 다 나왔다

압권은 여러 열대어가 한 화면에 모여든 장면이었다. 두동가리돔과 파랑돔 무리 꼬리줄나비고기가 좁은 공간에 뒤섞여 헤엄쳤다.

두동가리돔은 흔히 '배너피시'로 알려진 물고기다.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대담한 사선 줄무늬에 길게 신장된 네 번째 등지느러미 가시가 마치 돛이나 깃발(Banner)처럼 살랑거리는 화려한 생김새가 특징이다.

파랑돔은 몸 전체가 프리즘처럼 영롱하고 강렬한 푸른빛을 띠며 햇빛을 받으면 지느러미 끝이 미세하게 반짝이는 담수어 칼라테트라 이상의 독보적인 색감을 자랑한다. 김씨는 "이 색이 말이 되나 싶다"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파랑돔은 수온 상승에 따라 여름철 속초 등 동해안 위쪽에서도 발견될 만큼 분포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거북복의 어린 개체도 뜰채에 담겼다. 네모난 정육각형 모양의 몸통이 상자를 닮아 '박스피시'로 불리는 거북복은 포식자에게 위협을 받으면 피부 표면에서 '파후톡신'이라는 강력한 점액질 유독 물질을 분비하는 자화 방어 체계를 지녔다. 피부 밑이 융합된 단단한 단단골질판으로 덮여 있어 마치 뼈로 된 딱딱한 갑옷을 두른 듯한 형태가 특징이다.

거북복 / 'TV생물도감' 유튜브 채널

이 밖에 표면에 미세한 망사 같은 독특한 그물 패턴을 가진 그물코쥐치와 주둥이가 뾰족하게 나오고 몸이 납작하며 지느러미 축이 짧은 새양쥐치도 잡혔다. 새양쥐치는 보통 수심 20m 이상 깊은 암초나 산호초 수역에 서식한다. 평소 다이빙이나 스노클링에서나 관찰되는 수심 깊은 곳의 종이라 항구 연안 뜰채 채집으로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새양쥐치 / 'TV생물도감' 유튜브 채널

국내 토종 생물도 함께 걸렸다. 중층에 떠서 천천히 헤엄치며 측면에 뚜렷한 흰 세로줄을 지닌 흰줄망둑은 유영 모습이 우아해 관상 가치가 높다. 그와 가까운 친척인 일곱동갈망둑 역시 몸 측면에 7개의 선명한 검은색 동갈 무늬를 두르고 무리 지어 잡혔다.

비늘베도라치 / 'TV생물도감' 유튜브 채널

머리 위에 왕관 같은 벼슬 모양 피질 돌기가 발달한 비늘베도라치는 바위 표면에 배를 붙이고 지내는 특이한 습성을 지녔고 물속에서 길쭉한 다리처럼 생긴 관족을 굽혀 뛰어다니듯 빠르게 움직이는 거미불가사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거미불가사리 / 'TV생물도감'

유어 시기에 측면에 밝은 주황빛 점무늬로 화려하게 치장하다 성체가 되면 어두운 색으로 변하는 납작돔과 낚시인들에게 특유의 손맛과 고급 회감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감성돔 떼까지 항구 안에서 확인됐다.

김씨는 화려한 종만 골라 통에 담았다. 나비고기 세 마리와 거북복 등이 어우러진 통은 그 자체로 작은 열대 해수어 어항 같았다.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잡힌 게 맞나 싶을 정도"라며 "크든 작든 정말 나비 같다"고 했다.

납작돔 / 'TV생물도감' 유튜브 채널

다만 나비고기는 자연 상태에서 폴립(산호충)만을 골라 먹는 까다로운 식성을 지녀 인공 사육 시 사료 적응이 매우 어렵고 장기 사육이 까다로운 예민한 물고기여서 데려가지 않고 모두 놓아줬다. 폭염으로 물 온도가 오르는 바람에 채집통 안의 산소가 부족해져 생물들의 상태가 나빠지자 중간중간 방류한 개체도 많았다.

이날 끝내 잡지 못한 목표도 남았다. 두동가리돔은 여러 차례 발견했지만 긴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순간적으로 바위틈 깊숙이 숨어드는 특유의 경계심과 민첩함 때문에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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